《영주 순흥의 선비촌(榮州 順興 士林村)》
소수박물관을 나오니 선비촌이라는 곳이 있네요. 이 지방 여러 곳에 있는 宗宅이나 이름 있는 선비가 살던 집을 옮겨다 놓은 관광지입니다.
초입에 12支神像이 일렬로 기립해 맞아줍니다.
아주 잘 생긴 십이지신들입니다.
십이지신은 잘 아시겠지만, 십이지라는 개념은 중국의 은대(殷代)에서 비롯되었으나, 이를 방위나 시간에 대응시킨 것은 대체로 한대(漢代) 중기의 일로 추측됩니다. 다시 이것을 쥐[子]·소[丑]·범[寅]·토끼[卯]·용[辰]·뱀[巳]·말[午]·양[未]·원숭이[申]·닭[酉]·개[戌]·돼지[亥] 등 열두 동물과 대응시켜 시각을 정한 것이지요. 이는 훨씬 후대의 일입니다. 한국의 경우는 호석(護石)에 십이지신상을 조각한 경주 괘릉(掛陵)이나 김유신묘(金庾信墓)가 최초의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방위을 지키는 신으로 응용이 된 것입니다. 예를 들면 쥐(鼠)는 子時로 23時~01時 사이 방위에 접근하는 잡귀를 막는다는 의미를 준 것입니다.
멋진 亭子가 그림같이 아름답습니다. 특히 소나무와 어우러져 우리의 고유적인 미를 창출하지요.
한옥의 정경을 보노라면 선조들의 그 심미안과 과학적 감각에 넋을 놓습니다.
우리나라의 조경은 자연을 살려 자연스럽게 자연에 융합되는 아름다움입니다. 관상목도 주변에 있는 수종을 그 모습대로 살려 꾸밈이 없습니다. 건물을 보세요. 초석과 주춧돌 위에 그린 듯이 올려지어 밑이 습기 차지 않게 통풍이 잘 되도록 했고 또한 연못이나 수로를 돌려 건조함을 예방하여 화재를 미연에 방지하며 동시에 주변의 운치를 더해 아름다운 정원으로 건물에 위배됨이 없습니다. 흙과 나무로 조화를 이룬 집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또 그 얼마나 따스한가요. 그립습니다. 우리의 것들이...
연못에는 어김없이 蓮이나 수련을 띄어 德을 쌓고 물고기를 키워 가정의 화목과 부부의 금실을 지피며 주위에 소나무와 梅 . 蘭 . 竹을 심어 절개와 忠孝를 담았습니다.
水蓮... 보면 볼 수록 마음이 평온에 잠깁니다.
물잠자리(명주잠자리)라도 앉아 있었으면.. 하는 욕심을 가져봅니다.
비단잉어가 수면에 금빛으로 비칩니다. 물고기는 多産과 繁榮.和睦.豊饒를 상징합니다. 이런 염원적 바람을 옛 사람들이 민화나 도자기 등의 문양의 소재로 그린 여러 吉祥文 중 그 하나지요.
물위에 비친 소나무가 浮草인지 수련이 부초인지 ...
이런 조화로움이 아름다운 세상, 우리의 정원 우리의 정신세계가 아닐까요.
우리 고유의 전통가옥들도 눈여겨봐야겠습니다.
엄청난 지붕의 솟을 대문 옆에 붙어있는 작은 수복방이 신분의 격차를 보는 뜻하여 헛기침이 나옵니다.
호젓한 길가 초가집 돌담에 핀 꽃이 보기에 참 좋았습니다.
무슨 꽃인지 모르지만 참 곱고 예쁜 것에 매료되어 근접해 담아봅니다. 쌍떡잎의 구성과 모양이 완두콩잎 비슷한 것 같습니다.
호박벌처럼 큰 벌이 날아들기에 담으려니 어찌나 부지런한지 잠시도 가만있질 않습니다. 그야 말로 오직 꿀과 꽃가루 채취에만 열중하는 것에서 우리 생활주변을 돌아봅니다. 우리도 무언가 자기 일에 몰두해야 합니다. 미치지 않고는 이룰 수 없지요. 저 꿀벌과 같이 미치게 일한 세대가 있어 戰亂의 폐허에서 오늘을 일궈냈건만 요즘은 왠 요구가 그리 많고 파업이 많은지.. 가득이나 어렵다는데.. 오늘 일간지에 인권위란 곳에서 집시법 개정안 상정에서 복면하는 것. 통고한 뒤 촬영하는 것. 위해물품을 집회 시위에 사용할 목적으로 제조. 보관. 운반하는 행위금지, 소음규제 강화 규정, 과료 삭제 및 벌금액 상향, 등의 삭제를 권고 했다는군요. 이유는 폭력시위물품 금지가 집회자유를 제한한다는 괴변 아니겠어요. 불법시위에 화염병을 던지고 쇠파이프로 경관을 때리고, 시설물을 파괴 하고 이런 폭동은 자유고 민주랍니다. 허 참! 별개다 자유네요. 서로 머리 맞대고 묘안을 찾아야 하는데... 이거 제가 삼천포로 빠졌네요. 미안합니다. 사람이 곤충만도 못한 것 같아서 말입니다.
이 지방에 산재해 있던 宗宅이나 이름 있는 선비들이 살던 가옥들을 원활한 보존과 관광자원으로 옮겨와 한 마을을 꾸몄습니다. 마침 내부는 창호나 여러 가지 家具나 전시물 등을 수리 정리하는 중이어서 번다하기에 사진에 담질 않고 외부만 담았습니다.
한옥들이 그림처럼 들어선 동네모습이 정갈하고 호젓함에, 보는 내 마음이 옛 조선시대로 들어선 느낌입니다.
보신 분들 안 그러신가요?
이 집은 솟을대문 옆 머슴방이 둘씩이나 있고 담벼락에서 옹벽 같은 느낌에 근접하기 조차 꺼려지도록 근엄하고
위압적 느낌마저 듭니다. 이런 집 보다는 싸리문 살짝 밀고 들어서면 포근함이 느껴지는 초가집이 나는 좋아요.
사는 이 숨결도 부드러울 것 같고요.
보세요. 초가집 정겹고 사람 사는 재미가 굴뚝의 뽀얀 연기처럼 폴폴 나지 않나요. 좋죠?
그런데 집집마다 안에서는 작업이네요. 사진기 들이댈 수도 없고 그냥 나옵니다.
도랑물을 논에 퍼 올리는 기구 같은 것이 벽에 기대어 있네요. 이름을 아시는 분 가르쳐주세요.
처마 밑에 걸린 것은 싸리가지로 엮어 만든 여치집입니다.
조선일보 사회면에서 읽었는데 한옥이 밀집한 성북구 동소문동 일대 재개발 지역 한옥에서 20년을 살아온 미국인 '바돌로뮤'씨가 재개발 사업추진 절차에 하자가 있다며 서울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여 승소를 했답니다. 그 분의 말씀, '왜 멀쩡한 옛 한옥 부수고 새 한옥 짓나요" 유럽 선진국은 작은 고택 하나도 함부로 헐지 않는다며...
이렇게 운치 있고 아름다운 우리 고유의 생활환경을 버리고 아파트가 다 뭔지.. 우수하고 뛰어난 우리의 전통 고유건축미술을 살려 관광자원화 할 수 있는 한옥의 맥은 주-욱 이어 번성해야한다는 저의 생각입니다.
닭이나 토끼를 기르던 닭장이 아닌가요. 옛 생각이 폴폴 납니다.
역시 초가가 마음에 듭니다.
지붕의 이엉을 바꿀 때면 헌 이엉에서 꿈틀거리는 고단백의 하얀 굼벵이 좀 징그럽지만 그 굼벵이 까지도 마음에 듭니다.ㅎㅎ
옹기 밑을 뚫어 올린 굴뚝이 아담하고 어울리네요.
연자매(硏子-)라고도 하며 소나 말을 이용해 맷돌을 돌려 벼를 찧는 방아 '연자방아'라고 하지요.
居無求安이란 말이 있지요. 사는데 있어 편함을 추구하지 않는다. 뭐 대충 그런 뜻이지요.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선비나 애초에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초야에서 자연과 풍류와 글을 벗 삼아 살면서도 불의에는 부러질지언정 휘지 않는 곧은 선비정신이겠지만, 저는 이리 생각합니다. 생활이 편하면 몸이 망그러지고 병이 생긴다는 뭐 그런 거 아닌가요. 현대인의 병은 편한 것에서 그 해법을 찾아야겠지요. 아파트 참 편하지요, 부지깽이로 이 아궁이 저 화덕에 밥 하랴 국 끓이랴 요즘과 옛 주부 비교해 보세요. 스스로 자신의 몸을 못살게 굴어야 병이 없어요. ^^ 저의 생활방식이기도 합니다.
둘러보다 우물이 있기에 들여다보니 물고기가 있어요. 사진으로 담았는데 그늘져 안 보입니다.
중류층이 살던 가옥이라는데. 안에는 창호와 여러 작업으로 인부들이 일하느라 어수선하여 들어다 보질 않했습니다.
보이는 건물은 규모로 보아 관아인 것 같습니다.
<곳집>
곳집은 상엿집이라고도 하며 상여와 그에 딸린 장례용 기구들을 넣는 오두막이지요. 보통 마을 옆의 외딴 곳에 짓습니다. 곳집은 초상이 났을 때 마을 사람들이 서로 협조하여 장례를 치르기 위하여 지어진 것으로 마을 공동으로 운영되었고 그 마을의 형편에 따라 초가나 기와로 소박하고 간결하게 지어졌습니다. 상여는 초상 때 시신을 장지로 운반하는 葬具로 조금 긴 가마형태이나 각종 목각과 비단장식으로 화려하게 치장하였습니다. 몸채 좌우에는 밀채가 앞뒤로 길게 뻗어 있고 중간에 일정한 간격으로 멜방망이를 좌우로 끼워 사이사이에 이어 엮은 광목끈을 어깨에 메고 이동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상여틀은 대개 분해. 조립할 수 있도록 만들며 마을마다 상여 한틀을 공동으로 마련하여 사용하였습니다.상여를 메는 사람을 상여꾼 . 상두꾼 . 향도꾼이라 하며, 한양에서는 대개 천민들이 메는 것이 상례였으나 지방에서는 상포계 . 상여계에서 주민들이 동원되어 번갈아 봉사하였습니다.
디딜방아 아시지요. 집에서 작은 량의 곡식을 빻거나 찧는 방아지요.
반가의 사랑채로 할아버지나 아버지의 생활공간입니다. 외부의 손님을 접대하거나 친구를 맞아 학문을 논하고 식사 침전 서재 등 다양한 쓰임의 건물이지요.
농촌 민가와 같은 작은 규모의 주택에서는 사랑을 두지 않거나 두더라도 접객의 기능이나 교육 기능보다 밤이나 겨울철의 농경이나 가내공업 등의 작업공간이나 남자들이 모여 한담을 즐기는 마을휴식처로서의 의미가 큰 공간이 되었지요. 중류 민가에는 안채에 연결되어 대문에 가까운 부분에 설치됩니다.
사랑채가 독립된 건물은 부농이나 중·상류계급의 주택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안채와 분리된 대문과 외부와의 동선을 직접 연결시켜주는 권위성 건물이 됩니다. 안채와 이어지는 사랑채인 경우에는 시각적으로 분리되도록 고려하는데, 이것은 우리나라의 민가가 대가족제도와 유교사상으로 인하여 큰사랑 · 작은사랑 · 익랑채 · 별당채 등으로 가족간의 지위와 남녀생활권의 구별을 엄격히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채는 보통 사랑방 · 툇마루 · 대청마루로 구성되며, 상류주택에서는 사랑방 옆에 특별히 넓은 대청마루가 마련되어 있어 주택의 대외적인 의식을 치르는 장소가 됩니다. 누마루는 접객 장소로 쓰이는데 누마루의 유무에 따라 상류 주택과 중류 주택을 구분하게 됩니다. 성격으로 보아서는 안채와 행랑채의 중간이 되며, 실제로 안채와 행랑채의 중간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행랑채에서 사랑채와 안채 사이에는 담을 두고 따로따로 중문을 마련하여 서로 출입을 구분합니다. 사랑채는 독립하여 짓는 경우도 있으나 대개는 안채와 연결하여 지으며, 안채의 한 끝에서 행랑채에 면하여 짓습니다. 사랑채의 앞에는 사랑마당이 따르는데 사랑마당과 안마당은 반드시 담이나 행랑으로 서로 구분합니다. 이것은 주택 내에서 집안사람들의 생활과 외래객들의 출입을 철저히 분리하고자 한 것입니다. 사랑채는 정실(淨室)이 있어 가묘(家廟)가 없는 집에서 신주를 모실 수 있도록 구조되기도 하는데, 이는 조선시대에서만 장려되던 공간이어서 고려시대 이전의 상대(上代)에는 없었습니다.
2009/6/4 香
외래종인 것 같은데.. 참 예쁘죠?
고맙습니다.
2009년 6월4일 <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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