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朝鮮時代)/옛 (佛畵 . 佛像 . 鐘 . 佛具 )

- 석조 아미타여래입상(石造 阿彌陀佛立像)

鄕香 2009. 3. 8. 15:36

 

 이 신라 석불은 아미타 여래입상입니다.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는 모든 衆生을 구제하여 서방극락정토(西方極樂淨土)로 往生케 하는 부처입니다. 북인도에서 大乘佛敎가 성립되면서 제일 먼저 나타난 超越的 神格인 아미타 여래는 무한한 진리의 빛을 상징하여 무량광여래(無量光如來)라고 불렸으며, 중국 北魏 시대에는 道敎의 불로장생(不老長生) 신앙과 결부되어 무량수여래(無量壽如來)라고도 하였습니다.

아미타신앙은 아미타여래가 過去佛인 석가여래(釋加如來)나 미래불인 미륵불(彌勒佛)과는 달리 현재에도 극락 세계에서 중생을 빠짐없이 구원하고자 하는 念願을 지니고  기다리고 있다는 교리와 念佛만으로도 구원될 수 있다는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석가여래신앙을 능가할 정도로 널리 파급되었습니다. 더욱이 중생 구원의 의미를 지닌 觀音 신앙과 결합하여 觀音을 보처(補處) 보살로 삼으면서 더욱 성행하였습니다. 아미타여래는 단독상인 경우 시무외인(施無畏印) . 여원인(與願印)의 입상과 설법인(說法印)의 座像을 취하기 때문에 석가여래와 구별하기 힘들지만, 관음(觀音)과 대세지(大勢至)를 협시(脇侍)로 하여 삼존불(三尊佛)을 이를 경우에는 구별이 쉽습니다.   

 

경상북도 월성군에 있는 감산사는 신라 성덕왕 18년(719)에 김지성이 부모의 명복을 빌고, 국왕과 왕족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창건한 사찰로써, 창건 후 그는 어머니를 위해 미륵보살을, 아버지를 위해 아미타불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석조아미타불입상은 전체적으로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인체 비례에 가까운 사실적 표현을 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불상의 얼굴은 풍만하고 눈·코·입의 세부표현도 세련되어 신라적인 얼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신체는 비교적 두꺼운 옷 속에 싸여 있어서 가슴의 두드러진 표현은 없지만, 당당하고 위엄이 넘쳐 부처님의 모습을 인간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의도가 보입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온 몸에 걸쳐서 U자형의 옷주름을 나타내었고, 목에는 한번 뒤집힌 옷깃을 표현했는데 이는 신라 불상의 특징으로, 불상의 전체적인 형태와 함께 불상을 박진감있게 보이게 하는 요소가 됩니다.
불신 뒤의 광배(光背)는 배(舟) 모양이며 가장자리에는 불꽃이 타오르는 모양을 새겼습니다. 광배 안에는 3줄의 선을 도드라지게 새겨 머리광배와 몸광배로 구별하고 있으며, 몸광배 안에는 꽃무늬를 새겨 넣었습니다. 불상이 서 있는 대좌(臺座)는 맨 아래가 8각이고, 그 위에는 엎어 놓은 연꽃무늬와 활짝 핀 연꽃무늬를 간략하고 큼직하게 새겨 있습니다.
통일신라시대의 이상적 사실주의 양식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예일 뿐 아니라, 광배 뒤의 기록에 의해 만든 시기와 만든 사람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불상으로 우리나라 불교 조각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석조 아미타여래입상(石造 阿彌陀佛立像)

통일신라/719년/甘山寺/높이290cm/국보82호/국립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