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시대(新羅時代)/신라 유물(新羅 遺物)

신라 유리그릇.(琉璃容器)

鄕香 2009. 3. 4. 14:43

 

우리나라에서는 초기철기시대에 처음 등장하는 유리는 원삼국시대에 구슬 형태로 다량 제작되어 주로 꾸니개로 이용되었으며, 신라에 와서  왕릉급 대형고분에서 유리구슬 외에도 잔.병 등의 유리그릇이 출토되고 있습니다. 유리그릇이 고구려.백제.가야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은 반면에 신라고분에서 주로 출토되고 있는 것은 신라문화의 성격을 살피는데 주목할 점의 하나입니다.

 

황남대총 남분에서 출토된 봉수형(鳳首形) 병과 북분에서 출토된 굽다리잔을 비롯해 유리그릇이 출토되고 있으나 이들 유리그릇들은 대부분 남러시아.지중해주변.근동지방에서 출토되는 로마유리(Roman-Glass)류와 그릇의 형태와 제작수법이 유사하기 때문에 이들 유리그릇이 중앙아시아의 초원(Steppe)지역을 통해 우리나라에 전해졌응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지만 유리그릇 가운데에는 독자적인 특색과 제작기법을 가진 것들도 있어 서방풍(西方風)으로 제작된 신라제품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 여러 모양의 신라 유리그릇 >

 

 

 

 

 황남대총은 경주 지역의 고분 중 가장 규모가 큰 고분으로 남분과 북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발굴이 시작된지 만 2년이 지난 1975년 7월에 드디어 22m가 넘는 봉토의 흙과 자갈돌을 걷어내고 남분의 피장자가 누워 있는 심충부에까지 도달하여 피장자의 머리맡에 있는 부장품 수장곽 속에소 많은 유물들과  섞여 바스러진 채 흩어져 있는 유리조각들을 핀셋으로 주워 모았습니다. 당시 현장에서는 이 유리 파편들이 전혀주목의 대상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실에서 복원을 마쳤을 때, 세인들을 낌짝 놀라게 할 유리병 하나가 새롭게 탄생하였던 것입니다. 탄생의 주인공인 이 병은 물을 따르는 주구부(注口部)가 봉황머리같이 생겼다고 해서 중국에서는 '鳳首形甁'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정작 중국에는 아직까지 이런 유리기물이 출토된 적이 없습니다. 본래 그리스 陶器의 명칭에서 유래한 '오이노코에'라고 하는 이 유리병은 시리아를 중심으로 한 로마제국에서 4세기 말경부터 생산되어 동쪽으로 확산된 실크로드의 상징과도 같은 중요한 물건입니다. 아마도 북쪽 초원지대의 스텝루트를 통해 전파되었을 것입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이 병의 손잡이 부분이 金絲로 감겨 있었던 점입니다. 취약한 부분을 금사로 보강하려 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시 신라인들이 유리를 얼마나 귀하게 여겼는지를 잘 들어내는 대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남분과 北墳에서는 이런 '후기 로만 글래스'(4세기 말에서 5세기 후반까지의 로마제국에서 만들어진 유리제품)가 10개나 더 나왔습니다. 그런데 보다 중요한 것은 북분에서 출토된 로만 글래스 중에 신라産으로 보이는 것이 있다고 하는 새로운 평가가 근년에 나오고 있어 주목되는 점입니다.

 

 

 

손잡이달린병(把手附甁)

 新羅 5世紀/慶州市 皇南大塚 98號南墳 出土 /國寶第193號 / 高24.7cm口俓6cm,底俓6.5cm /國立慶州博物館 所長  

 

 

 

깊은 바리모양 유리병(深鉢形琉璃甁)

 新羅 5~6世紀/慶州市 皇南洞 天馬塚155號出土 /寶物第 620 號 / 高 7.4 cm, 口俓 7.8 cm /國立慶州博物館 所長  

 

 

 

 

굽다리있는유리잔(臺附琉璃杯)

 新羅 5世紀/慶州市 皇南大塚98號北墳出土 /寶物 第624 號 / 高 7 cm, 口俓 10.5 cm /國立中央博物館 所長  

 

 

유리완(琉璃)

 新羅 5~6世紀/ 慶北月城郡 安溪里4號墳 出土 / 高 6.5 cm, 口俓 10 cm /國立中央博物館 所長 

 

 

 

유리완(琉璃)

 新羅 5~6世紀/ 慶州市 路西洞 金鈴塚 出土 / 高 6.9 cm, 口俓 10.3 cm /國立中央博物館 所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