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불상은 1963년 7월16일 경상남도 의령군 대의면 하촌리 마을 밖 도로공사에 품팔이를 나온 이 마을 주민 강갑순(40세)와 장남 전병철(17세)군 母子가 산비탈의 돌무더기를 파헤치다가 땅속의 넓은 평석을 드러내자 네모반듯한 공간이 있었고 그 안에 누워 있던 금빛 찬란한 불상을 발견하게 된 것으로 현존하는 우리나라 불상 중 가장 오래된 제작 연대를 지닌 불상입니다.
불상의 광배(光背) 뒷면에는 47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연가(延嘉) 연간의 일곱 번째 해인 기미(己未)년에 고구려의 수도 평양에 있던 동사(東寺)라는 절에서 만들어 유포한 천불(千佛) 중 하나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 延嘉七年歲在己未高麗國樂良, 東寺主敬第子僧演師徒卌人共, 造賢劫千佛流布第卄九因現義, 佛比丘法穎所供養 』
「 연가7년인 기미년(539) 고려국(高麗國: 고구려)의 수도 낙양(樂良: 평양)에 있던 동사(東寺)의 주지스님 경(敬)과 그 제자 승연(僧演)을 비롯한 사도 40인이 함께 현겁천불(賢劫千佛)을 조성하여 유포하기로 하였는데, (이 불상은) 제29불인 인현의불(因現義佛)로 비구 법영(法穎)이 공양합니다.」
「연가 칠년」이 새겨진 부처(「延嘉七年」 銘 金銅 佛 立像) 국보(國寶)119호/경상남도 의령군 대의면 하촌리 산 40 출토
한국(韓國)-고구려(高句麗) 《539년》 / 금동(金銅) / 높이 16.2cm / 공립(公立) / 국립중앙박물관所藏
이 불상의 발견자 강갑순 씨와 토지 소유자가 이듬해 12월 보상금을 받기위해 상경한 소식이 신문에 대서특필 되기도 하였습니다. 강갑순씨는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하여 자신이 발견한 '금동연가7년명금동여래입상'을 친견하는 모습입니다. 강씨는 농토라곤 가진 것 없이 70고령의 시어머니와 5남매를 날품팔이로 어렵고 힘든 살림을 꾸려 왔다고 합니다. 받은 포상금(1963년 당시 20만원) 중 빛 5천원을 갚고 나머지 돈으로 전답을 사야겠다.'면서도 "단 한푼도 헛되이 쓸 돈이지만 시어머니에게 고기 한 근이라도 사다 드려야겠다"고 밝힌 효부 였습니다.
자신(강갑순)이 발견한 불상(연가7년금동여래입상)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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