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새면의 중심부에 ″낙랑예관″이라는 글자를 하나씩 도드라지게 새겨 넣고 주위에 구름무늬[雲氣文]를 채운 문자기와 입니다.
전체적으로 보아 문양의 구도가 비교적 안정감을 이룹니다. ′낙랑예관′은 당시 낙랑군에 예관(禮官)이라는 관직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자료입니다. 이밖에 ″낙랑부귀(樂浪富貴)″, ″천추만세(千秋萬歲)″ 와 같이 관청 이름이나 장수를 바라는 글자나 연호를 새긴 기와도 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길상어구는 당시 왕조의 치세(治世)와 깊은 관련성을 가집니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기와가 제작된 것은 한(漢)이 위씨조선(衛氏朝鮮)을 멸망시키고 평양 일대를 낙랑군이 지배하던 시기부터이며, 이 시기의 기와는 중국의 한대(漢代) 기와들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집니다.
평양 시내에는 낙랑군시대(기원전 108-기원후 313)의 기와들이 다량 발견되며, 이들 기와는 무늬의 형태나 제작기법 면에서 모두 중국 내륙의 것과 동일합니다.
′낙랑예관′이 새겨진 수막새(′樂浪禮官′銘圓瓦當)
한국(韓國)-낙랑(樂浪) / 토제(土製) 지름 15.7cm / 국립중앙박물관所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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