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금관(金冠) 중 가장 화려한 것인데 곱은옥[曲玉]과 달개[瓔珞]가 가득 달려있습니다.
구조는 넓은 관테[臺輪]에 3개의 나뭇가지모양장식[出字形立飾]과 2개의 사슴뿔장식[鹿角形立飾]을 접합한 것입니다.
관테에는 상하 가장자리에 2줄의 점열무늬[點列文]와 파상무늬[波狀文]가 장식되어 있는데 파상무늬 사이사이에
관테에는 상하 가장자리에 2줄의 점열무늬[點列文]와 파상무늬[波狀文]가 장식되어 있는데 파상무늬 사이사이에
원권무늬[圓圈文]가 찍혀 있고 부문과 달개[瓔珞]는 금령총(金鈴塚)과 마찬가지로 3열이며 나뭇가지모양 장식의 작은 가지도
4단이며 각 단마다 경옥제 곡옥과 달개가 매달려 있습니다.
작은 가지의 좌우가 90도에 가깝게 각지며 솟음장식[立飾]의 가장자리에도 2줄의 점열무늬를 장식하였습니다.
전면(前面)에는 2줄의 수하식(垂下飾)을 매달았는데 금령총과 더불어 세환에 코일상의 중간식과 펜촉형수하식을 장식하였습니다.
이 금관도 발굴당시 황남대총북분(皇南大塚北墳)이나 금령총(金鈴塚) 금관처럼 고깔모양을 띠고 있었으며 관테가 턱부근까지
전면(前面)에는 2줄의 수하식(垂下飾)을 매달았는데 금령총과 더불어 세환에 코일상의 중간식과 펜촉형수하식을 장식하였습니다.
이 금관도 발굴당시 황남대총북분(皇南大塚北墳)이나 금령총(金鈴塚) 금관처럼 고깔모양을 띠고 있었으며 관테가 턱부근까지
내려와 있었습니다. 무게가 1kg이 넘고 관테가 약해 흔들거리는 점 등으로 보아 행사나 실용적인 것이 아니라 부장품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신라의 금관이 활발하게 만들어진 시기는 불교가 공인되는 6세기 이전이라는 것이 학계의 중론입니다. 내물(奈勿), 눌지(訥祗), 자비(慈悲), 소지(炤知), 지증(智證)이 대를 이어 마립간(麻立干)이라는 무속적 칭호를 쓰던 기간으로 당시 신라왕들은 모두 김씨였습니다. 김씨 왕족들이 금관과 금제 장신구를 선호한 이유는 그들의 조상이 알타이 지방과 관련이 있고 알타이인들이 금을 숭배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알타이'라는 말은 금을 뜻하는데 그래서 김(金)이 씨족의 족명이 되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앞과 옆의 山字 모양은 나무를 상징하며 뒤의 두 개는 사슴뿔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며 이는 시베리아 북쪽 알타이에서 순록과 나무를 귀하게 여겼던 전통 문명이고 그 뿌리에 대한 숭배적인 의미입니다. 무수한 나뭇잎 모양의 영락을 달아 이를 뒤받침 합니다. 또한 수 많은 곡옥을 달았는데 이는 태아의 형태이며 이는 종족의 번성과 국가의 번영을 바라는 주술적 의미를 가집니다.
이 금관은 기본적으로는 황남대총 북분 출토관의 계보를 잇고 있으나 연대적으로는 금령총 출토 금관과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천마총금관(天馬塚 金冠) 국보87호》
韓國 新羅 / (上右)慶北 慶州 出土(皇南大塚北墳) / 高32.7cm / 國立慶州博物館 所藏
참고문헌 : 국립경주박물관 1997년 도판 21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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