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先史)/원삼국 三韓時代(馬韓.辰韓.弁韓

원삼국시대 토기.原三國時代 土器 (嶺南地方)

鄕香 2007. 7. 27. 12:47

 

이 시기 한반도는 중국으로부터 새로운 토기제작기술을 받아들여

이전의 토기문화전통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즉 물레의 사용으로 토기제작이 빨라 졌으며

지붕있는 가마(登窯)의 도입으로 소성燒成온도를 높일 수 있게 되어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종래의 무문토기가 계속 사용되면서 한편으로는 새로이 연질軟質.瓦質토기가 등장하여

이 시기의 대표적인 토기가 되고

또한 삼국시대의 전형적인 회청색灰靑色 경질硬質토기도 후기에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의 토기는 새로운 야철.토기제작기술이 도입되는, 즉 선사시대에서 역사시대로 이행하는 과도기란

특수한 환경에 의해 토기의 양상도 지역에 따라 많은 차이를 나타냅니다.

서북지방에서는 화분모양 토기와 회백색의 단지모양(壺形)토기가 세트를 이루며

무덤유적에서 발견되고 있고 이후 낙랑토기로 이어집니다.

중부지방에서는 소위 중도식中島式의 경질무문토기와 삿무늬 등의 두드림무늬(打捺文)토기가 주류를 이루며

동남부지방에서는 회색의 이른바 와질토기가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원삼국시대의 토기문화는 자체내의 제작기술과 외부의 새로운 기술의 영향으로 3~4세기를 전후한 시점에서

회청색 경질토기문화단계로 넘어가면서 본격적이고 다양한 삼국시대 토기문화가 전개되게 됩니다.

 

 

<嶺南地方의 原三國時代土器>

영남지방의 원삼국시대토기는 瓦質土器로 대표됩니다.

와질토기는 회색위주에 회흑색.흑색 등의 색조를 띠며 단단하기가 기와와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회청색 경질토기보다 굽는 온도가 낮기 때문에 경도가 약하여 흡수성이 강하며 바탕흙은 매우 고운 진흙을

사용하였습니다. 아직 가마터가 발견되지 않아 확실히 알려진바 없지만 색깔이 회색계통인 것으로 보아

밀폐된 가마에서 구워진 듯합니다. 형태는 중국 漢의 목기.토기와 비슷한 요소가 보이며

전기에는 前時代의 목이긴 검은간토기에서 출발한 목항아리가 주류를 이루는데

그릇의 형태는 아가리가 나팔형으로 바라진 둥근바닥의 조합식 쇠뿔잡이토기와 항아리가 기본적입니다.

후기에는 무늬가 다양해지며 굽다리(臺脚)와 뚜껑이 있는 항아리로 변화해 가는 한편

굽다리접시.화로모양토기.새모양토기 등이 새러이 등장합니다.

주로 널무덤(木棺墓)과 덧널무덤(木槨墓)에서 출토되고 있어 껴묻거리용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이나

생활유적에서도 간혹 출토되기도 합니다.  

  

 

주머니壺

昌原 茶戶里 20-69號墳 高14.5 cm (國立中央博物館)

 

 

 주머니壺

昌原 茶戶里 65號墳 高12.8cm (國立中央博物館)

 

 

주머니壺

昌原 茶戶里 62號墳 高 27.1cm (國立中央博物館)

 

 

臺附주머니壺

昌原 茶戶里 62號墳 高 27.1cm (國立中央博物館)

 

 

臺附주머니壺

昌原 茶戶里 67-69號墳 高 16.8cm (國立中央博物館)

 

 組合式牛角形把手附

昌原 茶戶里 68 號墳 高 30.4cm (國立中央博物館)

 

組合式牛角形把手附

昌原 茶戶里 67 號墳 高 24.9cm (國立中央博物館)

 

우각형파수부호(牛角形把手附壺)

昌原 茶戶里 62 號墳 高 25.5cm (國立中央博物館)

  

우각형파수부호(牛角形把手附壺)

昌原 茶戶里 31 號墳 高 23.5cm (國立中央博物館)

 

 

 우각형파수부호(牛角形把手附壺)

昌原 茶戶里 31 號墳 高 24.5cm (國立中央博物館)

 

 칠도파수부호(漆塗把手附壺)

昌原 茶戶里 15 號墳 高 11.7cm (國立中央博物館)

 

 

무문토기두(無文土器豆)

昌原 茶戶里 55 號墳 高 20.7cm (國立中央博物館)

 

 

첨저양이대옹(尖底兩耳附甕) 

昌原 茶戶里 36 號墳 高 74.2cm (國立中央博物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