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퀴 3

『흥인지문-혜화문 /興仁之門-惠化門』刻字城石

『한양도성(漢陽都城)』 한양도성은 조선왕조 도읍지인 한성부의 경계를 표시하고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된 城입니다. 북악산(白岳)을 주산으로 우측에 인왕산(仁王), 좌측에 낙산(駱駝), 정면 남쪽에 木覓山(남산)이 옹성처럼 둘린 盆地 수도 한양을 품고 있는 4개의 산 정상과 능선을 아우르며 백악과 인왕 2곳에 曲城을 두었고 봉우리 요소에 5개의 雉를 구축하였으며 4방위에 4개의 큰 門 흥인지문 · 돈의문 · 숭례문 · 숙정문을 세우고 그 間마다 4개의 소문, 즉 광희문 · 소의문 · 혜화문 · 창의문을 두었고 그 사이 적정한 곳에 9개의 암문과 두 개의 수문 그리고 바라보는 앞 木覓山에 봉수대를 설치하여 築城한 전체 길이 약 18,600m에 평균 높이 6~8m의 한국 고유 축성기법과 집단의 장인들이 ..

『한양도성(숭례문-소의문-돈의문-창의문)/漢陽都城 (崇禮門~昭義門~敦義門~彰義門) 』

『한양도성(漢陽都城)』 한양도성은 조선왕조 도읍지인 한성부의 경계를 표시하고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된 城입니다. 북악산(白岳)을 주산으로 우측에 인왕산(仁王), 좌측에 낙산(駱駝), 정면 남쪽에 木覓山(남산)이 옹성처럼 둘린 盆地 수도 한양을 품고 있는 4개의 산 정상과 능..

남한산성 . 봉암성 . 옹성/南漢山城·蜂巖城·甕城

일반적으로 우리가 남한산성이라 하면 병자호란 때 인조가 피신한 조선시대의 산성으로만 생각하기 싶지만, 남한산성은 조선시대 뿐 아니라 삼국시대부터 천연의 요새로 중요한 역할을 하던 곳입니다. 백제의 시조인 온조의 왕성이었다는 기록이 있고, 나당전쟁이 한창이던 신라 문무왕 12년(672년)에 한산주에 쌓은 주장성이라는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기록도 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몽고의 침입을 격퇴한 곳이기도 하고 일제 강점기에는 항일운동의 거점이 되기도 한 곳입니다. 그러나 남한산성은 주로 병자호란으로 인해서 가장 기억되는 산성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조선 인조 14년(1636년)에 청나라가 침략해오자 인조는 이곳으로 피신하여 항전하였으나 왕자들이 피신해 있던 강화도가 함락되고 패색이 짙어지자 세자와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