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에 그냥 523

장지뱀(도마뱀)

청주근교 목령산가는 길에 반가움이 ~  내 소년 시절(14세) 왕십리 무학 여중 뒷산(지금은 온통 아파트단지)에서 흔히 보던 장지뱀을 48년 만에 청주근교 오창과학단지 인근 야산(목령산 줄기)에서 보았다. 어린 시절을 생각할 적마다 참 보고 싶던 장지뱀! 그 시절에는 서울 야산이면 어디서든지 볼 수 있던 많은 곤충이나 파충류들이 전 국토가 도시화 산업화로 멸종되어 가는 안타까움이 크다 생물이 없는 곳에 사람인들 살 수 있을까..    2006년 10월26일

百濟 개로왕蓋鹵王의 죽음과 아차산峨嵯山 유적 石槨墓의 見解

삼국유사에 의하면, 『 475년 고구려 제20대 장수왕에 의해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이 함락되자 개로왕(백제의 제21대)은 수십명의 기병과 성문을 나서 피신하다가 고구려의 장수 '재증걸루'와 '고이만년'에게 생포 되었다. 再曾桀婁와 古爾萬年은 백제에서 죄(?)를 짓고 고구려로 도망한 백제인이기에 개로왕을 알아봤으며 말에서 내려 절을 하고는 왕에게 침을 세번 뱉었다. 』이는 개로왕의 얼굴을 알아본 상황에서 표출된 분노의 표현이겠습니다. 다른 측면에서 생각할 때 재증걸루가 개로왕의 얼굴에 침을 세 번씩이나 뱉었고 그의 죄를 따졌다고 하는 것을 볼 때 개로왕에 대한 私感이 깊었음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사병을 거느리던 시대에 개로왕의 왕권강화를 위한 숙청이나 사병제도를 약화 시키는 정책에 반감을 가졌거나 ..

한 무덤에 두 종중이 상존하는 < 파주 서곡리 고분벽화(坡州 瑞谷里 古墳壁畵)>

1989년  어느 날, 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에 한 통의 제보가 왔다. 민통선 안에 있는 고분 안에 벽화가 있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미 도굴된 무덤에 벽화가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한반도 이남에는 벽화고분이 흔치 않은 일이어서 귀중한 문화적 사료적가치가 있는 중요한 일이다. 민통선 안이고 정확한 위치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렇게 1년이 지난 어느 날 제보자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파주 서곡리 야산이며 비석도 있는데, 한상질의 묘라고 했다.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장' 한병삼 선생도 청주 한씨였으니 관심은 더욱 컸다. 그 당시 제보를 접한 정양모 학예연구실장은 어렵게 청주 한씨 종중을 설득하여 승낙을 얻어 1991년 3월20일, 정양모 실장과 나는 1차적으로 답사를 위해 관계 군부대에 협조 공문를 띄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