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야는 《삼국사기(三國史記)》지리 고령군조(地理 高靈郡條)에 기록되기를 "대가야국은 시조 이진아시왕으로부터 도설지왕까지 무려 16대, 520년에 이르렀다.(大加耶國自治祖伊珍阿豉王至道設智王凡十六世五百二十年)"고 한다. 三韓때까지 半路國으로 불린 고령지역의 정치세력은 주변 지역과 동일한 문화 기반 위에 있었다. 고령 盤雲里遺蹟의 瓦質土器가 영남지방의 다른 지역에서 출토된 것과 같은 점에서 이러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4세기대에 접어들면서, 고령의 세력은 冶爐面 일대의 鐵鑛을 개발하고 힘을 키워 가야의 하나로 성장하였다. 서기400년 신라의 요청을 받아 내려온 고구려 廣開土王의 군대가 가야를 공격하였는데, 금관가야를 비롯한 낙동강 하류의 가야세력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이 틈에 낙동강 중류의 내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