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에 그냥

제천의 9월 풍경

鄕香 2015. 9. 4. 22:57

가을이 성큼 다가섰나 보다 파란하늘에 흰 구름이 새털처럼 가볍고 청순함마저 준다. 이런 날에 집에서 뒹굴면 안 되지 싶어 사진기를 둘러메고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섰다. 오늘은 목적 없이 마음 이끌리는 대로 페달을 밟기로 했다. 이곳은 제천시 서부동 제천여고 북쪽 동네인데 똑 같은 크기에 같은 모양의 일본식 건물들이 나란히 집성을 이루고 있다, 짐작으로 보건데 일제강점기에 철도국에 종사하는 일본인들이 살던 곳이 아닌가 싶다. 그 후 서부시장이 형성되었는데 市場은 오간데 없고 지금은 명칭만 살아있다. 제천역 인근에도 이와 같은 집들이 이십여 채가 2열로 줄지어 집성을 이루고 있는데 크기와 모양이 똑같다. 지금도 철도청 관사로 남아있는 것으로 안다. 

 

 

본디 일본집은 벽도 나무판자를 엇물려 지었는데 오랜세월에 삭아서 시멘트로 벽을 발렀다. 내 어린 시절 서울 성동구 율원동 (지금은 신당9동)에 살 때 옆 동네 유락동에도 일본주택들이 많았는데 당시 그 집들을 적산가옥이라고 불렀던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내고 60년을 살아온 서울, 그 서울의 옛 모습을 이 제천에서 볼 수 있어 내가 제천에 살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제천시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다. 이래뵈도 있을 건 다 있어서 없는 것은 못 봤다. ^^

 

 

이 거리 옆 골목은 제천에서 가장 큰 재래장터인 내토시장이 있다. 먹거리도 다양하고 많다. 서울의 명동처럼 이 거리의 洞이름도 명동이다. 길 가운데 촌부들이 텃밭에서 키운 호박이나 오이, 가지, 파, 콩 등을 들고 나와 팔고 있다. 과일도 보인다.

 

 

문화회관이 있는 곳이라 문화의 거리라는 이름을 붙였는가보다.

 

 

제천시내 중심도로의 풍경이다. 서울로 비견한다면 종로라고나 할까! 아파트를 제외하면 건물은 거의 다 8층 미만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아담함에 끌리고 어린 시절 꿈을 키웠던 서울의 옛 모습을 옛 추억을 되살릴 수가 있어 즐겁다. 

 

 

제천역 뒤편의 전기기관차 검수고로 들어가는 문 앞에 길가 가정집 벽을 털어내고 차린 이발소다. 일제강점기 이 후 해방이 되고 6.25전쟁이 끝난 후 생활이 어렵던 시절 길가주택들이 이처럼 길가의 벽을 헐어내고 쌀가게, 해장국집, 이발소, 잡화점 등 생활의 방편으로 가게를 내거나 세를 주던 서울의 50~60년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옛 추억을 더듬고 향수에 젖어들게 한다.

 

 

제천은 예나 지금이나 기차교통의 요지이다. 삼척이나 단양의 석탄이나 시멘트 운송이 빈번함에 따라 기관차수리창이 들어섰고 따라서 철도직원이 많아 제천역 인근에 관사들이 많았던 것이며 제천지역 경제에도 영향을 주었다. 전기를 동력으로 하는 기관차를 검수 즉 이상여부를 점검하거나 수리하는 건물과 수리나 검차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기관차들이 보인다. 이외에도 300여m 떨어진 곳에 디젤기관차 수리창이 있다.

 

 

가을은 풀씨에게도 어김없이 결실을 준다. 제천시 남쪽  큰 냇가 건너 벌에는 요즘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고 있다. 북쪽은 고대 수리시설인 의림지와 농경지가 아우러지고, 이어 獨峰으로 이루어진 7개의 봉우리가 북두칠성의 형태로 제천 시내에 솟아있어 자연스레 문화적 소산 역할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니 개발이 쉽지도 않지만 개발이 되어서도 안 된다. 그러서 자연 아파트는 남쪽 벌을 차고 들어왔다. 큰 냇가 둑에 강아지풀이 발그레 물이 들고 있다.  

 

 

제천시 동쪽 외곽에 신라 말기 전탑이 있는 장락사지가 있는 곳이다.

<장락사지(長樂寺址)全景>

장락사지는 충청북도 제천시 장락동65-2번지 일대에 위치한 옛 절터이다. 안내게시판에 의하면 2003년에서 2008년까지 시굴조사와 세 차례의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34개 동(棟)의 건물터와 담장터, 보도시설, 우물을 학인하였고, 기와류, 토기류, 자기류, 흙거푸집, 글씨 없는 비석(白碑), 쇠솥, 쇠못, 쇠자물쇠, 청동 숟가락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출토된 각 유물의 종류와 성격으로 볼 때 장락사지는 삼국시대에 창건된 이래 조선 중기까지 존속하다가 17세기경에 폐사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발굴조사에 의하면 장락사지는 창건 이후 다섯 차례에 걸쳐 중창불사가 이루어졌고 가장 번성했던 때는 고려시대로 조사지역 전역에서 유구가 확인되었으며 유물 또한 가장 많은 양이 출토되었다고한다. 장락사지 발굴조사의 가장 큰 성과는 제천 지역에서는 최초로 확인된 삼국시대 불교유적이라는 점과 발굴된 연화문수막새와 새끼줄무늬 및 직선문이 새겨진 기와 등은 제작시기가 서울릐 아차산성, 여주의 파사산성, 단양의 온달산성, 적성산성 등에서 발굴된 와당과 같은 것들이 출토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5세기 후반~6세기경으로 확인되고 있어 고대의 문화 흐름의 경로와 이 지역의 고대 역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되는 유적이다.

 

 

 

또한 이 사지에서 으뜸격인 보물 제459호 장락7층모전석탑은

회흑색의 점판암(粘板岩)으로 쌓은 모전탑(模塼塔)으로 높이가 9m는 족히 되며 건립연대는 탑의 형식이나 돌 가공 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 말기로 추정된다. 자연석으로 단층 기단을 쌓고 그 위에 사각형 화강암기둥을 네 모퉁이에 세우고 동.북쪽면에는 다시 화강암 문틀과 각각 2장의 판석으로 문을 두고 기둥돌과 문틀 사이 여백은 점판암전돌로 쌓아 채웠으며 서.남쪽 벽면은 전면(全面)을 전돌로 쌓았다. 또한 1층 지붕돌부터 7층 지붕돌 까지 몸돌과 지붕돌을 모두 모전돌로 쌓았는데 특히 지붕 밑은 내물림 방식으로 위는 들이물림으로 상하 맞물림으로 지붕위와 밑이 똑같은 비율을 준 모양으로 1.2.3층은 몸신으로부터 중심판을 제외한 상하 같은 모양으로 9단에서 1단씩 줄여나가 중심판(상하 공용 1단)인 지붕 끝단에 이르도록 두께를 조절해 층단을 이루었다. 4.5층은 탑신에서 8단으로 시작하여 지붕 끝머리(1단)에 이르도록 같은 방법으로, 6.7층은 탑신에서 7단으로 시작하여 추녀 끝단(중심판)인 1단에 이르기를 위와 같은 방법으로 지붕 두께와 폭을 조절해 절묘한 비율로 칠층에 이르는 높은 탑을 상.하층의 크기를 두어 1,200년 세월의 모진 풍파에도 견뎌올 수 있도록 신기에 가까울 지혜와 솜씨로 조형미가 아름답고 장중하고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한국 전쟁으로 무너지기 직전의 것을 1967년 해체 복원하였는데 이때 7층 지붕돌 위에서 꽃모양이 새겨진 청동편이 발견되어 상륜부(相輪部)는 청동으로 만들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농촌에 알곡이 여물어가는 가을이면 어김없는 불청객이 떼거리로 찾아온다. 얼마나 영악해 졌는지 허수아비를 세워도, 바람이 흔들어 소리내는 설렁줄을 설치해도 무용지물이다. 여기 궁여지책으로 가장 키가 큰 수수목에 매를 달아 놓았지만, 이 매가 얼마만큼 효과를 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냥 재치있는 뉘앙스로 보여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쫓아도 막무가내인 이들의 염치에 그만 어쩔 수 없이 그들에게 절반을 양보하는 자신과의 타협을 한다. '너 반 먹고 나 반만 달라고...'

  

 

이 수수는 엄청 키가 크다. 늘씬한 묘령의 미인을 보는 듯 청순한 끌림이 있다. 우리 어려서 보던 토종 수수가 아닌가 싶다. 아직 덜 영글었는지 빛깔조차 연록색이다.

 

 

탐스럽게 익은 수수알곡 끝에 잠자리가 고즈넉이 앉아 더욱 가을를 풍만하고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다. 

 

 

제천시 서남 외곽도로에서 빙 돌아 동북방향에서 시내를 통과하여 제천 벌로 들어섰다. 농로를 따라 가에 심어 놓은 코스모스가 아름답다.

 

 

 뒤뜰방죽에서 백곡산과 용두산 그리고 의림지를 향해 바라본 제천벌의 평화로운 녹색장원입니다.

 

 

뒤뜰방죽에서 남쪽 방향의 제천 시내와 소백산 줄기의 연화봉과 아파트 단지 뒤 낮은 구릉에 위치해 있는 죽령고개가 관망된다.

 

 

새롭게 확장공사를 마친 1구간의 '삼한농경길' 한 쪽에 풍치 있게 이엉으로 지붕을 올린 옛 원두막을 닮은 쉼터가 파란하늘아래 한가롭다.  

 

 

의림지에서 독송정까지 일직선으로 뚫린 농로와 수로가 1차는 지난해에 완성되었고, 2차 구역은 한창 공사 중이다. 큰 나무 좌측 뒤로 농토에 흙을 돋아놓은 모습이 보인다. 앞쪽 논은 벼이삭이 고개를 숙여가니 수확이 끝나야 공사를 진행할 수 있겠지..

 

 

자줏빛 꽃은 가지 꽃, 노랑꽃 피운 것은 오이꽃. 노랑은 노랑이어서 곱고 자주는 자주여서 곱지 않은가! 어느 빛깔이 더 곱다 할 수 없으리..

 

 

이브의 탐욕에 나는 아담이 되었다. 그래도 나는 이브의 사과를 물릴 수가 없다.

 

 

강아지풀을 보면 더욱 어린 꼬마시절의 왕십리가 떠오른다. 옆집 봉자와 소꼽놀이 할 때 강아지풀을 반으로 갈라 코 아래 인중에 붙이고 수수캉으로 안경을 만들어 쓰고 할아버지 흉내를 내던 그 소박한 시절이 그리움으로 떠오른다. 그 봉자 지금은 할머니가 되어 나처럼 그 때를 떠올리고 있을까! 

 

 

의림지아래 농경지를 산책하면 이렇게 예쁜 결실들을 볼 수 있는데 하나 둘 보는 즐거움이 도시의 찌든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효과가 참 좋다. 고추가 붉게 익어간다. 붉은 고추는 활력소가 풍부하다고한다. 특히 남성에게 좋다. 빨강색의 열매는 심장에 아주 좋고 녹색 풋고추는 간에 좋다고 다. "고추의 붉은 열매 익어가는 밤을 그대여 부르라 나는 마시리,"

 

 

<뒤뜰방죽>

제천벌 서쪽에 위치하며 의림지로부터 물을 받아 저장하여 필요에 따라 서쪽 벌 농경지에 용수를 공급하며 생태공원으로서의 역할도 한다. 

 

 

한 낮 30℃가 넘는 무더위에 청개구리가 더위를 피해 기둥에 자연으로 생겨 있던 구멍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다. 이 매끄러운 기둥을 손톱만큼 작은 녀석이 어떻게 올라왔는지 신기해서 가까이 들여다보니 구멍안에 두 녀석이 더 있다. 한 가족이 피서를 온 모양이다.

  

 

제천 백곡산 줄기와 뒤뜰방죽.

 

 

멀리 감악산 봉우리가 보인다.

 

 

<뒤뜰방죽>

 

 

<솔방죽>

솔방죽은 뒤뜰방죽과 함께 의림지로 물을 공급 받아 유사시에 제천벌 동쪽 농경지에 물을 공급한다. 또한 야생화, 수생식물, 곤충 등을 관찰할 수 있는 자연 학습장과 치유의 공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갈대가 무성하여 수면을 잠식하고 있다.

 

 

가을이 깊어지면 갈대와 억새꽃이 수면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곳이다.

 

 

갈대가 호수를 뒤덮고 있다. 한마디로 오리들의 요람이다. 지금도 합창이 울려 퍼져 갈대숲을 뒤흔들고 있다.

 

 

솔방죽 옆 연잎들이 꽃만큼이나 예쁘다.

 

 

솔방죽 동쪽 입구입니다. 정자에 한 중년 여인이 스마트폰 삼매경에 젖어 있습니다. 파란색 자전거는 18년된 저의 애마1호 Black Cat 입니다.

 

 

<의림지>

남쪽 풍경입니다. 의림지에 대해서는 따로 사진과 함께 올린 글이 여럿 있어 생략합니다.

 

 

용두산을 배경으로 의림지 북쪽 풍경입니다.

 

 

의림지에서 1.5km 상류에 있는 비룡담입니다. 백곡산 까치봉과 제천의 진산인 용두산 사이 계곡에 위치합니다. 여름내 가뭄으로 저수량이 많이 줄었습니다. 비룡담에서 흘러내린 물은 의림지로 흘러들어갑니다.

 

 

2015년 9월 4일 <鄕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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