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에 그냥

한라산 2 (백록담~삼각봉대피소~구린굴~탐라계곡~관음사탐방안내소)

鄕香 2012. 11. 2. 21:45

 

정상을 둘러보고 앉아 김밥을 꺼내 두어 개 먹고 있는데 갑자기 주머니에서 '알퐁소 도데'의 희곡에 '비제'가 붙인 曲 '아를르의 여인(L'Arlesinne)"의 매혹적인 음악이 울린다. 이 무슨 어울리지 않는 조화일까 김밥에 모던 클레식이라니 당치도 않은 일이지 허겁지겁 김밥을 삼키고 물 한 모금으로 잠긴 목을 트고 그 아름다운 음률의 여운을 음미하며 아주 천천히 폰을 열고 '전화 고맙습니다. 저 鄕입니다' 하니 대뜸 친구 왈 너무 일찍 내려오지 말고 천천히 볼거리 다 보고 내려오랍니다. 나는 기록적으로 빨리 내려갈 참이었는데 코드가 맞질 않네. 예전에야 속말로 산에서 나르는 사람으로 자자했으니 그 실력?을 아는 친구가 일찍 내려와서 무료하게 기다릴 것을 염려한 것이겠지 싶습니다. 그 새 흘러간 세월이 얼만데 아직도 이 몸이 그 시절인 줄 아시는가 허참, 그 친구! 공연한 염려는 허길 왜 해서 꿀맛 같던 김밥 모래알김밥을 만들기는 왜 만들어 주는지 친구라는 동무가 도무지 도움이 돼야 말이지. 도로 배낭에 집어넣고 친구의 당부를 상기하며 이곳에서 시간을 좀 더 보낼 생각으로 다시 둘러보지만, 정상의 물 없이 메마른 백록담은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 같아 더 머물 일 없고 이리저리 둘러봐도 뿌연 연무에 시야도 흐려 보이는 전망도 없고 어쩌겠습니까 할 수 없이 조선시대 양반걸음으로 변속을 해서 관음사탐방관리소를 향해 떠나야 하겠지요. 시각은 11시 35분,

  

 

한라산 정상에는 전망대와 통행로를 나무로 설치하는 작업을 하느라고 주변이 어수선 합니다.  

 

 

남벽에서 본 제주시와 바다 그리고 몰려들기 시작한 구름

 

 

한라산 백록담 남벽에는 유난히 까마귀가 많습니다. 바위 위마다 앉아 있습니다.

 

 

대장 까마귀 같습니다. 부리의 위용 좀 보세요.  

 

 

북쪽 백록담


 

백록담 북벽에 이어진 능선


 

하산 초입에 내려다 본 구릉

 

 

제주시가 한눈에 조망되는 하산초입의 풍경과 나무계단


 

좌측에는 백록담 북벽에서 이어진 능선 모습


 

하얀 고사목들

 

백록담 북벽에서 내리 이어진 장구목


 

탐방로 옆 바위에 달린 고드름.


 

조망대에 탐방객들이 제주시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좀 더 가까이서 바라본 백록담 북벽


 

장구목으로 불리는 펑퍼짐한 능선이 이채롭습니다.


 

백록담 북쪽 외벽 뒤에서 본 장구목 능선 정면모습


 

백록담 북쪽 외벽 위 모습


 

아래서 본 백록담 북쪽 외벽


 

모진 삭풍에 가지는 모두 잃고 몸줄기만 하얗게 드러낸 모습이 애처롭습니다.  

 

 

가파르고 험한 길을 가다 고개를 들어 보면 보이는 능선 하나.. 


 

절벽으로 이루어진 웅장한 능선


 

쳐다보니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연두빛 봉우리의 빛깔이 은은합니다.


 

주목과 하얀 고사목 아래 어느새 조릿대가 무성하게 자리 잡고 있네요.

 

 

백양목과 고사목, 주목과 조릿대가 짝을 이루어 사중추를 이룹니다. 

 

가지의 절지와 구성이 환상적입니다.

 

 

시야를 가리던 나무들이 뜸하니 시가지가 반깁니다.

 

 

탐방객이 보이는 저 곳 草地 있는 곳에서 쉬어갈 만 하겠습니다.

 

 

표석이 해발1,700m 임을 알려줍니다.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내려올 만하네요.


 

주변이 정원처럼 꾸며진 듯하고 헬기장도 있는 비교적 너른 곳에 볕이 따습고 아늑함마저 듭니다.

 

 

계단 한쪽 끝에 걸터 앉아 쳐다본 앞산.


 

말목 같다는 느낌이 오는 저 능선을 줄곧 좌측에 끼고 내려왔는데 지나고 보니 삼각봉에서 끝나더군요.

  

 

우측을 보니 6 단계로 하늘,바다,시가지,능선,森木,조릿대 순으로 보입니다. 시가지는 제주시이겠지요. 

 

 

골짜기정면에 뾰족뾰족 솟은 저 봉우리가 일명 왕관바위로 불리는 곳인가 봅니다. 안내판 위치상으로 이 근처이거든요.


 

연록색은 마음을 편안하게 안정을 줍니다. 저만 그런가요? 자연 특히 녹색은 우리의 심성을 순화시키는 힘이 있음을 느낍니다.

 

 

따사롭고 멋진 백양목 한그루 있는 저 바위 사이 풀밭에서 좀 쉬고 싶었는데, 다른 분들이 먼저 그 옆에서 식사를 하시기에 방해될 것 같아 마음을 접었지요.

 

 

삼각봉 대피소까지 1.4km 45분 거리라고 합니다. 30분이면 갈 수 있겠다싶습니다. 그 곳에서 맛도 없고 전화 때문에 못다 먹은 김밥을 먹을 참입니다. 아참! 친구가 천천히 내려오라고 했지! 그럼 1시간으로 늘립니다. ㅎㅎ

 

 

평행이다 싶은 등성이와 암벽, 그 밑에 V자 모양의 선단(線段)을 이룬 능선들 그리고 연록과 짙은 녹색, 갈색과 치자색의 이파리 등이 아름다운 화음처럼 조화를 이루어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것보다 더 감동을 줍니다. 

 

 

내려온 길을 뒤돌아보는 재미도 참 좋더라고요, 뒤에 오는 사람 없을 때 말입니다.

 

 

성판악에서 오를 때 백록담 전에 오르던 나무계단은 정말 힘들다 생각했는데 지금은 풍금을 두드리는 기분입니다. 가볍게 톡톡 타박타박 한 계단 내려딛고 옆 한번 쳐다보고..

 

 

풍금을 치듯 내려오던 나무계단이 끝나고 돌계단이 시작인데 엄청 가파른 비탈입니다. 이곳으로 오르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의 숨이 나옵니다.

 

 

 

 

 

<옛 용진각 자리>

이 자리(해발1,500m)에 있었던 용진각대피소는 1974년 건립이후 30여년 동안 한라산을 찾는 탐방객들의 아늑한 쉼터로서 보금자리 역할을 했왔던 추억의 산장이었답니다. 한라산 정상인 북벽과 장구목, 삼각봉, 왕관릉으로 둘려싸여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이곳은 히말라야를 연상케 하는 수직의 암벽이 있어 산악인들의 동계훈련 장소로 손꼽히는 곳이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난 2007년 우리나라를 강타한 태풍 "나리"의 영향으로 한라산 지역에 폭우가 쏟아지면서 백록담 북벽에서부터 암반과 함께 급류가 쏟아져 내려 인근 계곡의 지형이 크게 변하고 수십 년 된 고목들이 뿌리채 뽑혔으며 오랜 추억을 간직한 용진각 대피소는 그 때 아쉽게도 흔적없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옛 용진각 자리에서 본 풍경 1

 

 

옛 용진각 자리에서 본 풍경2



옛 용진각 자리에서 본 풍경3



옛 용진각 자리에서 본 풍경4 우측 능선입니다.



용진각 자리에 있는 안내판

 

용진각 현수교가 저 만치 보입니다.

 


용진각현수교 앞에 있는 조형물

<용진각현수교>

 

 다리를 건너서 돌아서서 본 봉우리입니다.  


 

안내판에 표시되어 있던 '샘물'입니다.


 

샘터는 용진각현수교 북단 바로 앞에 있고 그 바로 앞에 짧지만 가파른 나무계단이 있습니다. 삼각봉 대피소는 600m 정도 가면 되겠습니다.

 

 

50도 정도 각진 산허리에 나무를 깔아 놓은 좁은 길입니다.


 

 

길 위 좌측 봉우리 입니다. 백록담 북벽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온 능선줄기의 끝자락인 것 같습니다. 

 

 

 

하얀 나뭇가지들의 구성이 어쩜 저리 멋스러울까요.


 

<삼각봉대피소 전경>

 

삼각봉대피소는 관음사를 들머리로 출발해서 백록담을 오를 때 규정한시각이후의 탐방객의 안전을 위해 출입을 통제하는 곳입니다.

 

 

한라산에서는 흔치 않은 삼각형의 봉우리입니다.


 

삼각봉대피소를 나서서 관음사탐방안내소로 가는 출발지입니다. 여기서부터는 길이 가파르고 험한 길이 2km 가 넘습니다.  

 

 

침목을 깔아 놓은 길이 있는가 하면,

 

 

이렇게 허리에 차는 조릿대가 길가 양편에 군사참호를 잇는 비밀통로처럼 뚫린 길에 검은 곰보진 현무암을 깔아 놓은 길도 있습니다. 성판악의 울퉁불퉁한 현무암을 깔아 놓은 길보다는 편평하지만 오히려 걷기에는 성판악 돌멩이길이 훨씬 덜 피로하고 재미를 주었습니다. 

  

 

 

낙엽송은 아닌 것 같고 삼나무인지 아님 전나무인지 모를 곧게 오른 나무들이 빽빽하게 나를 에워싸고 피톤치드를 마구 날립니다.

 

 

하산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맞이한 단풍으로 물든 이파리에 마음이 산뜻해집니다.

 

 

오, 여기에는 제가 참 좋아하는 덩굴이 있습니다. 바로 망개나무입니다. 다른 이름으로 청미래 덩굴이라고도 하던가요? 이 녀석을 왜 좋아 하느냐고요? 망개나무는 그 줄기의 지그재그로 뻗은 그 흐름도 멋지지만 꺾여 솟은 마디마다 빨갛게 달린 송이열매가 참 예쁘고 열매와 줄기와 마른 잎이 참으로 조화롭고 아름다워 한자 쯤 절지해서 벽에 걸어 놓으면 그 운치 있는 모습을 두고두고 음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망개나무/청미래덩굴>

 

정상(백록담)1,950m에서 어느새 해발 1,000m 까지 내려왔습니다.

그래서인지 낙엽관목이 차츰 많아지고 단풍으로 물든 이파리들로 예쁘게 치장을 하고 있습니다.

 

 

참나무들이 노랗게 물을 들이고 있네요.

 

 

 

<탐라계곡대피소>

탐라대피소는 외관상으로는 창고 같은 모습입니다. 이제 3.2km의 거리에 1시간이면 종착지 관음사탐방안내소에 도착할 수 있다니 이제 힘들고 험한 길은 없나봅니다.  

 

 

대피소에서 계곡으로 내려서는 나무계단에 멈춰서 내려다 본 계곡의 주변은 곱게 단풍들어가는 이파리들로 이제까지 검은 현무암과 주목의 검푸른 잎으로 긴장하고 칙칙해졌던 마음을 단숨에 밝게 물들여 주었습니다.

 

 

가파르지만 나무계단이라 내려가는 데에는 어려움은 없습니다. 관음사탐방길로 정상을 오르려면 좋은 체력과 많은 지구력이 필요하겠습니다. 지속적인 오름에 2/3는 가파른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 길로 오르지 않고 하산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계단을 내려오다 중간에서 바라본 계곡 건너편 풍경입니다. 참 예쁘죠?

 

 

<탐라계곡목교>

 

 

이 계곡에 들어서니 낙엽관목들의 화려하게 물든 이파리로 인해 이제까지 검은 돌과 백색의 고사목에 물든 눈에 화들짝 놀람을 줍니다. 곱게 물든 활엽수의 잎이 마치 안평대군의 꿈처럼 깊은 산중을 헤매다 발견한 무릉도원인양 아늑한 편함마저 들게 합니다. 죽어 뼈대만 앙상한 고사목이 즐비한 고산지대를 벋어났음을 실감케 합니다.

 

 

단풍든 나무에 마음 이끌려 계곡을 내려다보고 돌아서서 올려다보아도, 시선 가는 곳마다 꽃보다 고운 단풍들이 환한 웃음을 안겨줍니다.

 

 

활짝 웃는 것만 같은 단풍에 저절로 미소가 번집니다.


 

 

 

온통 마음을 단풍으로 물들이고 있는데 난데없이 계단이 앞을 막아섭니다. 길지 않은 오름이지만, 이제 더 이상의 오름은 달갑지가 않습니다.

 

 

이제까지 오색처럼 고운 색깔에 화려해진 내 마음을 시샘하는 것일까? 아님 무슨 조짐이라도 있는 것일까! 비교적 몽돌마냥 둥글고 흰빛마저 돌던 계곡의 돌은 온데간데없고 땅위로 드러난 나무뿌리처럼 하늘에 먹장구름 몰려오듯 온통 검은 돌바닥이 나타났네! 여름철 검은 구름을 연상시키는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개울바닥이 어쩜 이리 구름무늬처럼 생겨났는지 계곡에 들어서면서 단풍으로 밝아진 마음에 다시 긴장과 칙칙함으로 감쌉니다. 

 

 

점점 크고 험해진 바위들이 계곡을 덮었습니다. 

 

 

내려 갈수록 평평해야할 계곡의 흐름 또한 고르지 않고 단을 쌓은 듯이 층을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안내판 뒤에 접근 방지를 위한 목책이 있기에 안내판 뒤로 가 보니 평지에 푹 꺼진 웅덩이가 입을 벌리고 있습니다. 이곳은 옛날에 어름창고로 사용했다는 '구린굴' 과 인접한 곳으로 지면이 현무암으로 이루어져 있고 옆에 있는 계곡도 평범한 계곡과는 달리 깊은 웅덩이들이 연이어서 계곡을 형성하고 있는 위험한 지역입니다.  

  

 

그 평온했던 단풍으로 치례한 계곡은 더 이상 볼 수 없고 구름모양의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계곡바닥이 암시하였던 것이 이제 드러내고 있습니다. 평지에 움푹 꺼져있는 우물처럼 생긴 웅덩이로 안 다닥부터는 굴처럼 땅 밑으로 뚫려 뻗어있을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구린굴>

이 굴의 길이는 442m로 입구의 너비는 대략 3m 정도되는 천연 동굴로 안내판에 의하면 옛 선인들이 얼음 창고로 활용했던 선인들의 지혜가 보이는 유적이라고 합니다. 이 구린굴은 특별하게 얼음을 저장하는 석빙고로 활용되었다는 내용이 문헌에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구린굴 밖의 주변을 살펴보면 선인들이 남긴 집터와 숯가마터 흔적도 보인다고 합니다.

 

 

깊게 패인 계곡 벽에 구린굴의 입구가 있습니다. 

 

 

아직도 나뭇잎은 이리 고운데, 계곡은 점점 험해져만 갑니다.

 

 

벌레 먹던 잎은 또 다른 모습과 빛깔로 아름다운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무거운 침묵을 머금은 저 골짜기는 더 이상 우리와 친근하게 놀던 어릴 적 그런 계곡이 아닙니다. 악마의 굴처럼 요소마다 큰 입을 벌리고 있는 검은 마왕이나 있을 두려운 암굴입니다. 

 

 

자 보세요. 감히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저 두려운 모습을.. 이 모습이 개울 바닥의 모습입니다.

 

 

상어의 날카로운 이빨보다도 더 질리게 하는 커다란 입을 벌리고 있는 검은 입들이 서로 앞을 다투어 층을 이루고 먹잇감인양 나를 흘기고 있었습니다.

 

 

이런 동굴 같기만 한 모습에다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음흉한 웅덩이들은 무섭게 입을 벌린 채 10분을 걸어 내려오도록 연이어 줄서서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관음사 날머리 입구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이 웅덩이는 물를 머금고 있어 속을 감춘 채 그나마 순한 양 인양 험한 모습을 감추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연출하시는 오직 한 분이신 그 님께 오늘 탐방을 안전하게 이끌어 주심을 믿고 엎드려 감사드립니다.

 

 

성판악에서 오를 때는 거리상으로도 1Km 정도 길고 오름인데도 3시간30분이 소요되었는데, 대다수 분들도 그렇겠지만 오름보다는 수월한 내림 길에 거리상으로도 1km 정도 짧은 거리를 4시간12분이 소요되었으니 42분이나 더 걸린 것을 견주어볼 때 성판악코스보다 관음사코스가 어렵고 힘든 곳임을 알 수 있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12년 10월 24일 - 鄕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