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 없는 박달재에 홀로 앉아 혼신의 힘을 다해 붉게 물들이는 낙조를 봅니다. 그 옛날 '박달'이 낙방거사가 되어 돌아왔을 때 이미 세상을 달리한 '금봉'을 그리워하며 시름없이 앉아 저 붉게 타는 노을을 바라볼 때 그 석양빛을 타고 오는 뜻한 금봉의 환영을 쫓아가다 절벽으로 떨어져 금봉을 만났다는 전설이 애달음으로 안겨옵니다. 저 처절하고 아름다운 빛과 그 여운이 다하면 어쩌나 싶어 이리 붙잡고 또 잡아봅니다. 오늘도 끊임없이 흐르는 구성지고 절절한 저 박달재의 노랫가락처럼... - 鄕 -
<박달재의 유래>
산 높고 골 깊은 이 고개는 그 이름을 모르는 이 없을 박달재(朴達峴 /해발 453m)>, 치악산의 맥을 뻗어 백운산이 되고 그 줄기가 다시 남으로 달려 구학산, 박달산, 시랑산을 이루니 이 박달재는 동서로 봉양과 백운을 잇고 멀리는 제천과 충주를 잇는다. 1216년 고려의 김취려<金就礪> 장군이 거란의 대군을 여기서 물리쳤고 1268년 고려의 이 고장 별초군<別抄軍>이 또한 여기서 몽고의 군사를 막아냈다. 영남땅 도령 박달과 이 재 아랫마을 처녀 금봉의 사연이 전해오기도 하고 박달은 태고적부터의 유래를 지닌 白山의 뜻이라고도 하나 이 오랜일들을 오늘날 뉘라 소상히 알 수 있으리오.
<박달재의 의미>
박달재는 조선조 중엽까지 이등령이라고 불리어졌다. 이는 천등산 지등산이 연이은 嶺마루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에는 인등산도 함께 있어 天, 地, 人이 모두 갖추어진 유일한 곳이다. 박달재는 아득한 옛날 우리민족의 시원과 함께 하늘에게 天祭를 올리던 성스러운 곳이다. 박달은 순수한 우리말로 한자 자체가 가진 의미는 없다.
박은 밝다, 크다, 하얗다, 높다, 성스럽다 등의 여러가지 의미를 갖고 있는데 이것이 한자어로 차용이 되면서 <朴, 白, 弗, 不, 發>등으로 쓰였다.
달(達)은 산이나 언덕등을 나타내는 알타이어의 고어이며 단군신화 속에서 나타나는 아사달, 금미달 등이 그것이다. 특히 고구려에서는 지명에 많이 쓰였다. 그러므로 박달은 白山으로 풀이 되는데 이 백산은 태백산, 백두산등과 동일한 의미와 기능을 갖고 있다. 단군조선을 세우신 단군왕검의 壇은 흔히 박달나무 단자로 이해되고 있으나 이는 박달 즉 백산을 의미한다. 따라서 단군왕검은 백산 또는 태백산의 임금을 말하는 것이다. 단군이래로 우리민족이 천제를 올리던 백산은 여러곳에 있다. 그리고 그 산들중의 하나가 바로 이곳에 있는 천등산 박달재인 것이다.
< 박달재의 전설 〉
영남의 과거도령 박달은 과거 합격이라는 청운의 꿈을 갖고 한양을 찾아가다 평동마을의 한 농가에서 유숙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여난을 조심하라는 가훈을 가슴에 지닌 박달도령의 늠름하고 준수한 태도에 그집의 딸 금봉이는 그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박달도령도 금봉이의 절절하고 연연한 자태에 넋을 잃고 말았으니, 양인심사는 양인지라. 뜻과 뜻이 맺어지고 마음과 마음이 이어져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달빛이 호젓한 밤 두 청춘남녀는 사랑을 맹세하고 장래를 약속하며 밀회로 밤을 새웠다. 그러나 이들은 이별이란 말 아래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정성을 다해 몰래싸준 도토리묵을 허리춤에 달고 박도령은 눈에 어리는 금봉이의 모습을 애써 지워가며 이등령 아흔 아홉구비를 꺽어돌며 눈물을 뿌렸다. 한양에 도착한 박달이는 만사에 뜻이없고 오로지 자나깨나 금봉이 생각뿐이었다. 연연한 그리움을 엮어 벽에 걸고 과거를 보았으나 결과는 낙방이었다.
며칠을 두고 고민하는 날이 계속되었다. 그리움 내키는 대로 평동을 가자니 낙방의 초라한 모습을 금봉에게 보일 수 없어 가슴을 태웠다. 한편 박달을 보낸 날부터 성황님께 빌고 빌기를 석 달 열흘, 끝내 소식이 없자 금봉이는 아흔아홉 구비를 그리운 박달의 이름을 부르며 오르고 내리다 마침내 실신하여 상사의 한을 안고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박달은 금봉의 삼우제날 평동에 도착하여 금봉이의 허망한 죽음 앞에서 실의와 허탈감에 그만 의식을 잃고 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뜬 박달의 앞에 금봉이가 애절하게 박달을 부르며 앞으로 지나갔다. 앞서가던 금봉이가 고갯마루 정상벼랑에서 박달을 부르며 몸을 솟구치는 찰라, 박달은 금봉아! 한마디를 부르며 금봉이를 잡았으나 이는 허상일 뿐 벼랑에서 떨어지는 몸이 되었다. 봄이면 두 남녀의 이루지 못한 애절한 사랑을 대변하듯 연붉은빛 진달래꽃이 아름답게 피고 진다.
<울고 넘는 박달재>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 물 항라 저고리가 궂은비에 젖는 구려
왕거미 집을 짓는 고개마다 구비마다 울었소 소리쳤소 이 가슴이 터지도록,
부엉이 우는 산골 나를 두고 가는 님아 돌아올 기약이나 성황님께 빌고 가소
도토리묵을 싸서 허리춤에 달아주며 한사코 우는 구나 박달재의 금봉이야,
박달재 하늘고개 울고 넘는 눈물고개 돌 뿌리 걷어차며 돌아서는 이별 길아
도라지꽃이 피는 고개마다 구비마다 금봉아 불러보나 산울림만 외롭구나.
반야월 작사, 김교성 작곡 박재홍 노래.
2012년9월23일 제천 박달재 고개마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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