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에 그냥

으름

鄕香 2012. 9. 30. 12:32

 

암자색으로 핀 으름 꽃, 그 빛깔을 보노라니 정숙한 여인의 저고리 색을 떠올리게끔 정갈스럽다. 으름은 긴 잎자루 끝에 타원형의 작은 잎이 다섯 장 씩 모여 하나의 잎을 이룬다. 꽃은 한 꼬투리에 암꽃과 수꽃이 함께 핀다. 암꽃은 수꽃보다 큰 편이고 꽃잎이 뒤로 젖혀진다. 암꽃의 암술머리에는 끈적끈적한 액체가 묻어 있어 쉽게 수꽃가루가 묻는다. 꽃잎은 없고 3장의 꽃받침잎이 꽃잎 같으며 두껍다.

봄철 뻗어 가는 어린 줄기는 나물로 먹을 수 있는데, 부드러운 싹을 따서 끓는 물에 소금을 적당히 넣고 살짝 대친 것을 찬물에 헹궈 요리를 하거나 물기를 짜서 냉장고에 보관한다. 어린잎과 꽃은 그늘에서 말려 茶로 하면 좋다. 4~5월에 피는 연한 보라색 꽃은 달콤한 향기가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는다. 옛날에는 이 꽃을 그늘에 말려 향낭에 넣어 몸에 지니고 다녔다. 으름 열매는 약리실험에서 이뇨작용과 이질균, 폐결핵균에도 저항성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장기간 복용하면 신장기능 이상이 오거나 신부전증에 걸릴 수도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한방에서는 줄기를 통초(通草)라고 하고 열매는 목통(木通)이라 한다. 겨울철 낙엽이 진 뒤에 채취한 통초는 소염성 이뇨제, 요도염, 소변통에 쓴다. 또 진통, 진경, 인후통에 귀중한 약재로 쓰인다. 또한 산모의 젖을 잘 나오게 하고 불면증, 정신신경 안정제로 널리 쓰인다. 목통은 중풍을 다스리고 피를 잘 돌게 하며 루머티즘, 소변불통, 허리 아픈데 쓴다. 좋은 약재이지만 금기사항도 많다. 몸이 허약하여 땀을 많이 흘리는 사람이나 설사, 비위가 약한 사람은 쓰지 않는 것이 좋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임산부에게는 유산 위험이 있으므로 반드시 의사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 

의성(醫聖) 허준(許浚)은 그의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 “으름(木通)은 정월과 2월에 줄기를 잘라 껍질을 벗기고 말려서 쓰는데 12경락을 서로 통하게 한다. 그래서 통초(通草)라 한다.”고 적고 있다. 이시진(李時珍)의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목통은 맺힌 것을 풀어서 편안하게 하고 이수(利水)작용을 한다.”고 했다.

 

 

가을에는 긴 타원형의 긴 열매가 암자색으로 익는데 마치 성숙한 여인의 깊은 속내처럼 벌어진다. 줄기에 매달린 채 익어서 껍질이 벌어진 모습이 여자의 음부 같다고 하여 임하부인(林下婦人)이라는 별명을 얻었다니 보는 이의 생각이 얼추 같은가 보다.  " 아은 땐 조쟁이 되곡 어룬 되민 보댕이 되는 것 뭇고?"  제주도에서 아이들이 놀이 삼아 주고받는 수수께끼인데, 이는 '어릴 때는 고추이지만 어른이 되면 달라진다는 말로 으름을 빗대 말한 것이다.

과육 속에 섞인 씨는 모아 식용기름을 짤 수 있다고 하니 옛날에는 비교적 흔한 山果였던가 보다. 으름은 식용,약용,공예용,관상용으로 널리 쓰인 까닭에 지방마다 서로 조금씩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으름, 얼임, 우림, 으흐름, 어름나물, 어름넌출, 어름나무라 한다. 제주 방언으로는 유름, 졸갱이, 목통여름이라고도 부른다. 한자로는 목통(木通), 팔월찰(八月찰), 팔월찰(八月紮), 야향초(野香樵), 예지자(預知子), 야목과(野木瓜) 등 여러 가지 이름을 갖고 있다.

또한 으름은 잎 모양이 독특하고 제멋대로 휘감긴 덩굴 줄기가 아름다워 장식품이나 꽃꽂이 재료로 많이 쓰인다. 관상 가치가 있어서 정원에 심기도 하고 화분에 심어 밑으로 늘어뜨린다. 산지에서 채취한 줄기는 바구니를 엮는데 쓰인다. 껍질을 벗기고 정교하게 가공한 것은 대를 물려 쓸 수 있다.

 

식물백과에 으름덩굴과의 덩굴식물로 되어 있는 으름은 다래, 머루와 더불어 산에서 얻을 수 있는 3대 과일이라고 한다. 열매는 바나나처럼 길쭉하고 둘 내지 4개씩 붙어서 아래로 매달린다. 열매의 속은 부드럽고 맛이 달다. 얼음처럼 맛이 차갑다 하여 얼음이 으름으로 전음 되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으름은 다른 나무를 타고 오르는 덩굴식물로 우리나라 산지의 자생 수종이다.

지난 1984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 참가국을 대표하는 나무를 그 곳 올림픽공원에 심었는데 그 때 한국을 대표하는 5종의 자생수종으로 심은 것 중 하나가 '으름'이라고 한다. 

 

 

으름나무가 무성한 그늘 속에 들어가면 캄캄할 정도로 다른 나무를 온통 뒤덮는다. 산의 계곡 큰 바윗돌이 많은 곳에서 다래덩굴, 노박덩굴, 할미밀망이나 사위질빵 등 덩굴성 식물과 엉켜 자란다. 이렇게 뒤엉킨 덩굴성을 빌어 속내를 비친 노래가 바로 "어랑타령"이다. 

'산수갑산 머루 다래 언클어 선클어 졌는데, 나는 언제 임을 만나 언클러 선클러 지느냐 어랑어랑 어허랑 어허야 더허야 내 사랑아"

다래와 머루는 중요한 산과일이면서 어느 나무나 잘 감아 오른다. 머루와 다래는 다정하게 얽혀 있는데 우리 님은 곁에 없으니 언제 품에 안겨 볼 수 있을까. 조선 시대 여인들의 외로운 마음을 실은 애절한 노래이다.

 

 

2012년9월22일 괴산군 유정리 뒷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