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六一帖》은 전 16권의 서첩으로 조선시대 서가들의 필적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으며 이와 아울러 중국의 명서가들의 필적도 한 권에 수록해 놓은 첩입니다. 유물카드에는 1911년 윤근수(尹瑾秀)로부터 130엔에 구입하였으며, 견저(絹苧:비단.모시), 지본묵서(紙本墨書), 감지금니서(紺地金泥書). 김생(金生), 비해다(匪懈堂), 석봉(石峯), 자암(自庵) 등 七十七人筆 書簡 및 詩文, 佛經 등 七百枚를 取集하여 16책에 帖付한 것 입니다.
이 '61첩' 1책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이 한 생각에... 人於一念...) 능히 앞의 사람의 한량없는 세월의 생각들을 알고 능력의 차이 (諸根差別)를 아는바 이와 같이 널리 제 10번째 남서북방사유상하(시방)를 설할지라도 또한 다시 이와 같으니 불자야, 이 시방세계 모든 중생의 제근차별의 한계를 알 수 있나니라. 보살이 처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할 적에 공덕선근을 능히 얻지 못하였어도 그 한계를 아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보살이 다만 그러한 세계의 중생만의 ...을 안다는 제한이 없기 때문이니라.
해동서성(海東書聖)으로 불린 김생( 金生 711성덕왕10년~791 원성왕7년)은〈삼국사기〉에 따르면 한미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어려서부터 서도에 정진해 예서·행서·초서에 따를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안동 문필산(文筆山), 경주 경일봉(擎日峰) 석굴(石窟) 같은 곳에서 글씨를 힘써 공부하고, 충주 북진애(北津崖)에 있는 절에서 중이 되어 두타행(頭陀行)을 닦았습니다. 고려 사신 홍관(洪灌)이 송(宋)의 변경(汴京)에 체류할 때 김생의 글씨를 가져다 보이자 송의 한림대조(翰林待詔) 양구(楊球)와 이혁(李革)이 왕희지(王羲之)에 비길 만한 천하의 명필이라고 격찬했다고 하며 그뒤부터 중국 사신들은 김생의 필적을 매우 귀하게 여겨 얻어갔다고 기록되었습니다. 〈동국여지승람 東國輿地勝覽〉이나 〈미수기언 眉叟記言〉에 문필산·김생굴(金生窟)·김생사(金生寺) 등 그와 관련된 풍수유적이 전합니다.
그의 서첩으로 전해오는 것은〈전유암산가서 田遊巖山家序〉가 있으며, 〈해동명적 海東名蹟〉·〈대동서법 大東書法〉에도 몇 점의 글씨가 실려 있습니다. 이밖에도 〈백률사석당기 栢栗寺石幢記〉·〈백월서운탑비 白月栖雲塔碑〉가 있습니다.
전 김생 필 해서 육일첩 전16책 중 제1책(傳金生筆楷書六一帖中第一冊)
통일신라시대(711-791년) / 사경(寫經) 30.5×634.0cm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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