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에 그냥

마음의 여로

鄕香 2011. 7. 13. 09:50

 

 

 

세찬 비바람에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오솔길을 덮고 있습니다.

자연은 자연스럽게 질서를 유지하며, 나무는 스스로 가지치기를 합니다.

 

 

아침 눈을 뜨자 창밖을 보니 하늘은 회백색이다.

며칠 째 장마에 태풍이다 해서 골바람 몰아치고 먹장같은 구름은 이곳저곳 기웃대며 물을 들어붓더니

오늘은 저도 지쳤나보다 자욱한 안개만 뿜어내며 숨을 고루고 있다.

하지만 당장이라도 양동이로 들이 쏟아부을 기세로 성이 차서 잔뜩 찌푸리고 있다.

나는 이도저도 아닌 흐리멍텅하게 올동말동 이런 것에 우울해진다.

다시 나의 책방에 벌렁 누워 창밖 희뿌연 하늘을 쳐다보며 생각을 지핀다.

며칠만에 비도 머뭇거리는 날,

무언가 해야만 할 것 같아 좀이 쑤신다.

따뜻한 구들장도 아닌 방바닥에 누워 있자니,

습한 공기로 인한 해묵은 책의 퀴퀴한 냄새만 난다.

이렇게 이런저런 생각이 백열등 30촉처럼 희미하게 머문 자리,

아, 차라리 이런 날이 나로서는 산행하기에는 좋은 날이지!

순간, 몸이 스프링처럼 솟아 오른다.

어제 롯데마트에서 사온 빵이 있었지, 요구르트도 한 병, 사진기와 책 한 권에 비상컵

(빈 우유팩 위를 예쁘게 잘라내어 평상시에는 접어서 주머니에 넣고 약수 마실 때 컵 대용 )

그리고 간편한 은박자리끼를 배낭에 챙기고

바람막이를 걸치고 방을 나섰다.

아파트단지를 끼고 흐르는 맑은 도랑물이 폭포수처럼 우렁찬 소리를 지르며 곤두박질 한다. 

내달리는 투명한 물줄기를 보노라니  

옛 어린 시절 일요일이면 가끔 동생을 데리고 왕십리에서 용두동을 거쳐 돈암동 아리랑고개를 넘어

정릉골짜기에서 함께 고기 잡으며 놀던 때의 아련한 그리움이 한 순간 스쳐 간다.

그 당시 전화기에는 발전기가 달려 있었는데, ( 내 것은 군대전화기에 달린 발전기)

그 발전기를 서울 황학동 고물가게에서 구입해서 

(+)극과 (-)극에 각각 전화선을 연결해 그 선 끝에 하나는

철사로 엮어 만들어 팔던 조리를 구해 연결하고,

다른 한 선에는 굵은 구리철을 연결한 다음 각각 적당한 길이의 막대기에 붙여서

 냇가 물 속 바윗돌 밑 한 쪽에는 조리를 다른 한쪽에는 구리철 끝을 대고

동생이 발전기를 돌리면 돌 밑에 숨었던 물고기가 전기에 기절해서 물에 뜨면

조리채로 건져올려잡던 추억이 어느새 맑은 물방울 같은 그리움으로 그렁그렁 고인다.

 이런 저런 생각을 애써 떨쳐내고,

더없는 팔자걸음으로 휘휘 한 줄 모르게 오솔길로 들어섰다.

이제는 손바닥 손금 보듯

어느 곳 하나 접해보지 않은 곳이 없건만..

올적마다 느낌이 다르고 보는 재미 다른 곳이 하소뒷산이다.

 

 

 

송림 아래 우거진 잡초 사이 호젓한 길로 접어드니,

지난날 뒤뜰 같던 아차산이 떠오른다.

아기자기하고 예쁘고 잘 생기고 특색이 있고

요모조모 어느 한 구석 흥미롭지 않은 곳이 없었고,

멋들어지게 굽어 틀어진

기기묘묘한 소나무 숲 사이사이 걸터앉기 좋은 섬섬 바윗돌

소슬바람이 갈참나무 잎들을 쏴아 스치고 다시 풀잎을 희롱하고,

좌측 봉우리 정상가는 길은 가볍게

그러나 쉽게 볼 수만도 없는 암벽에 손맛도 있고,

그 아래에는 고인돌이 수천 년을 누워 손짓하고

건너 편 아차산성에서는 뻐꾸기란 놈이 청아한 음절로 노래하면

아늑한 시골마을 동구 밖 큰 미루나무의 한가로움을 회상시켜주었지, 

돌아서서 구비구비 흐르는 강물을 보면 회색빛 하늘의 우울함도 씻기듯 떠내려갔다.

다시 대성암을 바라보고 "다비 터"(스님들의 장례의식 터)를 지나

산초나무 무성한 숲길을 지나 진달래 샘에서 맑고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이면

몸 안에 온갖 부산물이 씻겨 내리듯 오장이 즐거웠고,

음률처럼 흐르는 고요함을 흩트리고 싶지 않은데,

작은 까투리나무 사이에서 범나비 한 쌍이 바람을 희롱하며 고요의 바다에 파문을 던졌었지.

다시 동편 암벽을 타고 오르면,

넓은 암석봉우리에 삼국초기의 특이한 석곽분이 정상을 지키고 있다.

이천 년의 세월을 지키고 있었을 저 주인의 혼백은 몇 번의 윤회를 하였을까..

혹시 지금의 나는 아닐까..

흘러가는 강물에 생각을 흘려본 지난날의 회상이여, 그리움이여,

그렇다 지난 것은 다 아름답고 

그립고 아쉬운 것이다. 슬펐던 것은 더욱 그렇지...

 

끝없을 상념을 떨치고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발걸음은

울창한 참나무와 멋들어진 소나무 숲길을 지나고 있다.

우측을 돌아보니 용두산 자락이 운무에 싸여 마법의 천금성처럼 아득하다.

갈림길에서, 오른쪽 현진에버빌아파트방향 능선을 버리고,

왼쪽 능선을 타고 오른쪽에 골프장 있는 능선으로 오른다.

 

산새들의 화음과 바람결에 실려 오는

풀들의 밀어를 들으며 산다는 것에 기쁨을 더한다.

자연이 주는 오묘한 섭리이리라

영근 땀방울을 부는 바람에 씻으며 드디어 도착한 등너머약수터, 

마땅한 자리에 은박지를 깔고 누워 처다본 하늘은

무수한 소나무 가지 사이사이로 바로크 무늬처럼 고상하다.

오늘 따라 뻐꾸기의 소리는 구성지고 애달픈 울음으로 들린다.

다른 날에는 맑고 청아하고 고은 노래소리였는데.. 

아마도 바람이 세차니 남의 둥지에 몰래 낳아 논 알이나 부화된 새끼가 걱정되는가 보다. 

지그시 눈을 감아본다.

주마등처럼 스치는 일상들 그 모든 생각들은 허상이라고, 바람이 속삭인다.

 

그렇다 지난 세월의 생각을 지우자, 자연과 함께 순수가 되자.

그런데,

자연도 좋고 순수도 좋은데, 갑자기 몸이 근지럽고 따끔 거리지, 

허겁지겁 허리춤을 내리고 속곳을 들여다 보니

허참, 새까맣고 큰 개미란 녀석이 물어뜯고 있네.

내 누운 이자리가 녀석들의 영역인가보다 끊임없이 공격해 온다.

한 녀석을 붙잡아 뒤끝에 혀를 대 보니 시큼하다 그 맛에 또 어릴 적 생각이 난다.

어린 시절 왕십리 살 때 동무들과 놀러간  

금호동 수도국산에서 개미를 잡아 개미뒤끝에 혀를 대고 그 맛에 허기를 달랬고

도마뱀을 붙잡아 혀에 올려놓으면 입 안으로 쏘옥 기어 들어갔었지.

몬도가네가 따로 없던 그 시절이 보고 싶다. 

어찌 이리 그립고, 보고 싶은 것이 많을까 이제는 그냥,

그래 그냥 모두 보내자 저 세월의 뒤안길로, 그리고 이리 사는 거야..!

자연은 순수로 내게 있고 그들은 정직하지,

풀 한 포기 그 포기마다

독특한 아름다움과 향기로움이 있듯

나만의 향내 나는 자연이 되고, 벗이 되자 .... 

 

  <우산대나물꽃> 촬영 : 충북 금수산에서 2011년 7월 24일

 

2011/6/26 - 鄕 -

 

 

 

 

 

 

'◈ 세월에 그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천 솔방죽의 裕遊  (0) 2011.07.31
《 명자꽃.애기씨꽃.산당화 》  (0) 2011.07.13
  (0) 2011.06.19
보리(麥)  (0) 2011.06.14
붉은 토끼풀  (0) 2011.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