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朝鮮時代)/조선 회화(繪畵)

공재 윤두서 필 강안처사도 (恭齋尹斗緖筆江岸處士圖)

鄕香 2011. 3. 8. 10:10

이 《江岸處士圖》는 처음으로 소개되는 小品입니다. 이 작품은 선비다운 文氣가 짙게 풀겨나고 있으며 당쟁싸움에서 벗어나 鄕土에서 閑遊하는 작가 자신의 모습이 投影된 그림이기도 합니다. 정확한 필치와 밝고 진한 색채를 써서 격조 높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고, 극히 단순화된 구도로서 서정적인 정경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공재 윤두서가 조선회화사에 점하는 위치에 대하여 남태응(南泰膺)의 「聽竹畵史」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 姜希顔이 나자 安堅, 崔涇이 對가 되고, 申世霖, 石敬, 李不害, 李上佐가 서로 對가 되고 金禔가 나자 李楨, 鶴林正이 對가 되고 魚夢龍이 나자 石陽正이 對가 되고 金明國이 나자 李澄이 對가 되었다. 김명국, 이징 두 사람이 죽은 뒤 근 백년이 가까웁게 비로서 윤두서 한 사람이 태어났다. 그러나 그와 이름을 겨룰자가 없으니 前人들 보다 더욱 빛나는명예를 지녔다 하겠다.」 또한 전하기를 그는 그림을 그릴 때에는 온종일 심취하여 그 眞影이 잡힌 후에야 붓을 들었으며 그림에 대한 矜持가 대단하여 절대로 남의 청에 응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윤두서(尹斗緖. 1668-1715)는 본관은 海南이요 자는 효언(孝彦)이며 호는 공재(恭齋), 종애(鍾厓)이며 孤山 윤선도尹善道의 증손입니다. 실학자로서 經籍 뿐 아니라 천문.점술.병법 등 다양한 방면에 관심을 두고 연구 조사하여 체득하였으며, 이같은 實事求是의 정신은 그의 회화 작업에도 적용되어 사실정신에 입각한 다양한 장르의 그림을 그렸으며 회화사적으로 과도기였던 17세기 말, 18세기 초에 새로운 회화관의한 새로운 화법의 그림을 그림으로서 선구자적 면모를 보인 선비화가로 조선 후기 三齋(恭齋.謙齋.玄齋)중의 하나로 꼽습니다.

 

공재 윤두서 필 강안처사도(恭齋尹斗緖筆江岸處士圖)

朝鮮時代 / 尹斗緖(1668~1715) / 絹本淡彩 22.5 × 25 cm / 個人所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