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朝鮮時代)/조선 회화(繪畵)

호생관 최북 필 표훈사(毫生館崔北筆表訓寺)

鄕香 2011. 2. 21. 14:00

이 <表訓寺圖>는 금강산에 있는 표훈사와 그 주위의 勝景을 그린 작품으로서 구도는 일종의 遠景을 펼쳐 그린 수법입니다.

南公轍의 《金陵集》에 따르면, 그는 술을 좋아하고 구경다니기를 무척 좋아했는데, 어느 해 금강산 구룡연에서 술에 대취하여 「천하의 명인 최북은 마땅히 천하명산에서 죽을 것이로다.」하고 뛰어 들었다고 합니다. 역대화인들 중에서 취벽과 기행으로 뛰어난 이를 꼽는다면 蓮潭 金明國, 豪生館 崔北, 그리고 끝으로 吾園 張承業이렇게 3인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최북(崔北, 1712 ~ 1760)은 조선 숙종 . 영조 때의 화가로, 본관은 무주, 초명은 식(埴), 자는 성기(聖器)·유용(有用)·칠칠(七七), 호는 월성(月城)·성재(星齋)·기암(箕庵)·거기재(居基齋)·삼기재(三奇齋) 또는 호생관(毫生館)인데, 이름인 북(北)자를 반으로 쪼개서 자를 칠칠(七七)로 짓고, 호는 붓[毫] 하나로 먹고 산다[生]고 하여 호생관(毫生館)이라고 했답니다.

산수, 인물, 영모(翎毛), 화훼(花卉), 괴석(怪石), 고목(枯木)을 두루 잘 그렸는데 특히 산수와 메추리를 잘 그려 최산수(崔山水), 혹은 최순이라는 별칭을 얻었으며,  필법이 대담하고 솔직하여 구애(拘碍)받은 곳이 없었으며 남화(南畵)의 거장인 심사정(沈師正)과 비길 만한 인물입니다. 한 눈이 멀어서 항상 반안경을 끼고 그림을 그렸으며 성질이 괴팍하여 기행(奇行)이 많았고 폭주가이며 여행을 즐겼습니다. 그림을 팔아 가며 전국을 주유(周遊), 금강산 구룡연(九龍淵)에서 천하의 명사가 천하의 명산에서 죽는 것이 마땅하다고 외치며 투신했으나 미수에 그친 일도 있습니다. 칠칠거사(七七居士)로 알려진 많은 일화(逸話)를 남긴 위인으로 시에도 뛰어났으며 49세로 서울에서 사망하였습니다. 

 

 

 

호생관 최북 필 표훈사(毫生館崔北筆表訓寺)

朝鮮18世紀 / 崔北 1712~1760 / 紙本淡彩 /縱 38.5cm × 橫 57.3 cm /個人所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