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先史)/원삼국 三韓時代(馬韓.辰韓.弁韓

영산강유역 석실분 부장풍습(副葬風習)

鄕香 2011. 1. 29. 16:00

『 副葬風習 』

石室墳의 유물 埋納에는 玄室內部와 入口部, 그리고 墳丘의 일부 및 周溝 등에서 각기 상이한 내용과 기법이 발견됩니다. 우선 석실내부에는 副葬品가운데 被葬者의 신분과 관계된 威勢品이 추가되며, 현실의 입구에는 부장된 석실을 폐쇄한 뒤 행해지는 埋葬儀禮로서 祭儀와 관계된 굽다리잔(高杯) 및 뚜껑있는 접시.잔(蓋杯)등이 주류를 이룹니다. 다음 분구와 주구 등 고분의 축조과정에서 이루어진 원통형토기(圓筒形土器)의 立飾과 매납은 신덕, 명화동, 월계동고분 등에서와 같이 매장시설외(埋葬施設外) 부장풍습의 한 예(一例)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쌍암고분>

광주 월계동 1.2호분의 북동북 쪽에 위치하는 석실고분이며 파괴된 상테에서 조사되었습니다. 석실의 바닥면에는 분구의 기저면에서 0.9m정도 올라운 분구 중간에 마련되어 있고 대형 판석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촐토되 유물로는 기대(器臺)와 원저광구호, 유공광구호, 고배, 개배 등이며 청동기로서 珠文鏡 1점이 포함되어 있고, 철기로는 찰갑, 마구, 대도, 관못 등이 있습니다.

 

(광주 월계동쌍암고분 석실내부 유물 부장상태) 규모3.3mX2.2m

 

<석계고분군>

咸平 月溪里 석계마을에 위치하는 고분군으로 논경지가 내려다 보이는 산 경사면에 분포하고 있습니다. 이 일대에는 많은 고분이 散在하고 있는데 그 중 12기가 조사되었습니다. 내부시설은 토광을 L자형으로 파고 안치하였으며 橫口式을 기본으로 하는 백제계 석실고분군입니다.  

 

(석계4호분 석실내부 유물부장 상태)

 

↑  (신덕고분 영도부 토기 매납상태)함평 월야 예덕리 신덕) 

(신덕고분 연도부 토기 매납유물 細部)

 

『前方後圓墳』

'전방후원분'은 둥근 봉분(圓部)과 네모진 봉분(方形部)이 연결된 봉분형(墳形)으로연결부분이 좁게 이어지는 형태의 古墳입니다. 1990년대에 들어 명화동고분과 월계동고분의 조사결과에 의해 그 성격의 일단이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내부구조가 할석제로 조립된 횡혈식석실분(橫穴式石室墳)으로서 영산강유역에 9基 정도가 분포하고 있는데, 그 중3기가 조사된 바 있습니다. 내부가 알려진 고분은 광주 명화동고분과 광주 월계동고분을 비롯하여 함평 신덕고분, 영암 자라봉고분 등입니다. 분구의 형태뿐 아니라 유물의 부장풍습 등에서 새로운 형식이며 신덕고분을 보면 철기의 부장(副葬)이 탁월합니다. 내부구조가 확인된 영산강유역의 전방후원분은 대체로 6세기를 전후하여 조영(造營)된 것으로 보이는데, 석실은 허리에 인접한 원부(圓部)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石室의 축조는 분구성토와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으며 성토부(盛土部)에 위치한 지상식 구조입니다. 전방후원분의 입지는 대체로 강을 낀 비교적 넓은 들을 배경으로 입지하며, 밀집분포하고 있는 대형 옹관고분과는 달리 지역적으로 분산(分散)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방후원분은 영산강유역의 대외교류관계(對外交流關係) 및 文化相을 해석하는데 중요한 자료입니다. 

 

 

<명화동고분>

光州 明花洞의 花洞마을 뒤 낮은 구릉의 末端部에 위치하는 前方後圓墳입니다. 석실은 심하게 훼손되어 원래의 구조를 알 수 없으나 횡혈식석실로 추정됩니다. 석실의 바닥에는 금으로 만든 귀걸이(金製耳飾)와 덮개달린 잔(蓋杯), 그리고 그릇받침대 조각(器臺片) 등이 발견되었습니다. 분구 허리쪽의 일정부위에 원통형토기가 세워져(立飾) 있고 주구(周溝)에도 다량의 원통모양의 토기(圓筒形土器)가 매납(埋納)되어 있었습니다. 주구의 형태는 네모진 부분(方部) 양쪽(兩端)에서 시작하여 뒤편 둥근부분(後圓部)을 돌린 방패형입니다.

 

(광주 광산구 명화동고분 외형 . 光州 光山區 明花洞古墳 外形)규모33,0m X 24.0m

 

(명화동고분 주변 및 周溝 토기 매납상태) 위 사진 세부

(통형토기 매납상태 細部)

 

<圓筒形土器>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의 주구(周溝)에 매납(埋納)된 이형토기(異形土器)로서 광주 명화동고분과 광주 월계동고분 등에서 출토된 바 있고 나주 신촌리 9호분에서도 출토되었습니다. 서울 몸촌토성(夢村土城)의 貯藏孔에서 출토된 유물 중에서 이와 유사한 기대형태(器臺形態)의 토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명화동 출토 원통형토기 가운데는 소성도(燒成度)와 문양구성(文樣構成), 기면조정(器面調整) 및 크기 등에서 차이점이 있지만 두 개의 돌대(突帶), 투공(透孔)의 배치등 전체적인 器形은 기본적으로 같습니다. 또한 월계동의 출토품의 경우 구연부(口緣部)가 보다 크게 외반되는 소위 나팔형(喇叭形)의 형태도 발견되고 있습니다. 명화동 출토품은 타날기법(打捺技法)이 기본이고 成形에는 소위 '도립기법(倒立技法)'이 의한 성형방법(成形方法)이 채택되고 있습니다.

 

(원통형토기/圓筒形土器)높이(中右)56.4cm/光州 광산구 명화동 출토

 

<월계동고분>

光州市 광산구 장구촌 마을에 위치하던 2基의 전방후원분(前方後圓)으로 광주첨단과학단지의 조성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습니다. 1호분은 길이 43m의 대형분이나, 2호분은 보다 작고 크게 파괴되어 있었습니다. 1호분의 석실은 圓部 중앙에서 한쪽으로 치우쳐 있으며 분구 바닥에서 약 1.6m 정도 올라온 분구 중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분구 둘레의 周溝는 전체적으로 방패형(防牌形)을 띠고 있으며 깊이가 지점에 따라 약간씩 다르지만 대체로 1.5m 내외입니다. 주구에는 다량의 원통형토기 및 木器 등이 매납되어 있었습니다. 

 

(光州 光山區 월계洞古墳 周溝 遺物埋納 狀態) 

 

 (광주 월계동 1호분 석실)규모4.5mX2.8m, 높이2.4m

 

(원통형토기/圓筒形土器)높이(中右)56.4cm/光州 광산구 월계동 1호분 출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