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先史)/신석기시대(磨製石器간석기)

新石器時代 岩寺洞遺蹟址 . 遺物

鄕香 2011. 1. 7. 17:23

 

암사동은 행정구역상 서울특별시 강동구 암사동의 한강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강변의 고운 모래 퇴적층을 따라 취락군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 유적은 1925년의 소위 乙丑年 대홍수 때 유구가 파괴되면서 토기편들이 채집되어 알려졌습니다. 그 후 1966년 서울대학교의 발굴조사를 시작으로 하여 한국대학엽합발굴단, 그리고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의한 발굴조사가 수차례 이루어져 유적의 성격이 밝혀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정부가 유적의 보존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 유적일대를 선사유적공원으로 만들 계획을 수립함에 따라 서울대학교는 학술용역계약에 의하여 미조사지점에 대한 긴급발굴을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발굴은 1983년 5월17일부터 6월16일까지 1ㅐ월간 실시되었습니다. 또한 복원할 주거지를 선정하고 그 원상을 파악, 확인하기 위해서 지난 1972년 부터 1975년에 걸쳐 국립중안박물관에 의해서 발굴된 집자리들을 전면적으로 노출시켜야 할 필요성 때문에 1984년 5월 한달 동안 확인 발굴작업을 실시하였습니다.

 

<발굴조사 광경(1983년)>

 

암사동의 층위는 총 6개로 나누어지는데 신석기시대의 층은 생토층 바로 위에 해당하는 Ⅴ(5)층입니다. 신석기시대층에서는 12기의 움집터와 저장고 및 야외노지가 발견되었는데, 움집터는 대개  원형이나 말각방형이고 한변의 길이는 5~8m 가량 되고, 내부에는 강돌을 돌려 만든 화덕과 기둥자리가 있습니다. 

1983년과 1984년의 조사에서는 두 개의 수혈저장시설, 네 개의 적석유구, 두 개의 화덕자리가 발견되었고, 이 밖에 빗살무늬토기편 약 3,000여점, 뗀석기 30여점, 뼈판편 및 고종자 약간이 채집되어었습니다. 원형수혈저장고 중의 하나는 깊이가 1.5m이며 두 단의 계단 출입구가 달린 것입니다. 화덕자리에서는 불에 탄 돌더미가 많이 발견되었는데 야외 조리시설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주거지 노출 전경(1984년)>

 

 

 

암사동에서 출토된 토기의 형태는 직립구연부에 뾰족한 저부를 한 포탄형 모양이 기본형인데 이들 토기들은 구연부, 몸체부, 바닥 등 각 부위 별로 서로 다른 무늬로 장식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구연부분의 90% 이상이 평행밀집단선문이며, 몸체부분은 음각기법에 의한 종주어골문과 다치구의 찰과에 의한 횡주어골문의 두 종류가 대다수를 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암사동 빗살무늬토기의 양상은 같은 시기의 다른 지역과의 비교, 또는 빗살무늬토기 상호간의 시기적 선후관계 규명에 중요한 기준자료로서 활용이 가능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석기는 어망추 이외에 뗀석기류가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뗀석기는 한쪽 면만 떼어낸 것이 기본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 /高22.2cm 口徑19.5cm>

 

<빗살무늬토기편 각종(櫛文土器片 各種)/(右上)高21.0cm 幅11.9cm><돌도끼 및 그물추(石斧.漁網錘)/(左)高12.6cm幅6.5cm厚1.6cm>

 

이러한 일련의 발굴조사를 통하여 층서적 상하관계의 자료뿐 아니라 이제껏 이곳에서 알려지지 않았던 저장고시설이나 공동취사장시설이 확인됨으로써 당시 생활양상 규명에 새로운 지식이 제공되었습니다. 또한 발굴된 토기류를 통하여 이 지역 신석기 초기 단계의 토기양상 규명에 기준적인 자료를 얻었을 뿐 아니라 이를 통한 당시 사회의 일면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거지 복원 광경(1985년)>

 

<복원된 주거지 전경 (198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