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에 그냥

순천 조계산 선암사 · 승선교(順天 曹溪山 仙巖寺 昇仙橋)

鄕香 2010. 12. 2. 17:27

 

<선암사 승선교(仙巖寺 昇仙橋)>

神仙이 노니는 바위(仙巖)을 찾아 굽어 휘어 돌아가는 길모퉁이에 돌로 무지개 모양으로 만들었다 해서 그 이름도 아름답게 虹霓橋라 부르는 昇仙橋, 굳이 두 개의 무지개다리를 놓아 길을 건너고 다시 휘돌아 건너게 하는 지극을 봅니다. 뿐만 아니라 현세와 선계를 구분하는 역활을 이 虹霓로 다하고 있으니 옛 선인들의 지혜와 심미안이 놀랍습니다. 그 어떤 아름다움이나 기교도 보탬도 없이 돌 하나로 쌓아  古拙한 虹霓..

昇仙橋 가운데 돌출된 용머리를 보면서 저 만큼 서있는 降仙樓, 목욕하러 내려오는 선녀를 훔쳐보는 절묘한 仙景을 어떤 아름다운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숙종39년(1713년)에 호암대사가 축조한 虹霓橋, 그 이름 昇仙橋라합니다. 당초 자연암반 위에 축조되었으나 자연암반에 板狀節理 (균열로 떨어져 나가는 현상)가 발생하여 이 다리를 세운지 290년이 지난 때인 2003년 11월~2004년 6월 완전 해체하여 자연 암반부에 지대석을 보충하는 대대적인 수리를 하여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선암사 강선루(仙巖寺 降仙樓)>

  선녀가 내려온다는 이름의 降仙樓 초석은 길이가 다릅니다. 지면의 높고 낮음에 따라 다르고, 계곡에 내린 다리는 긴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다시 나무기둥을 올려 많은 물이 내려가도 견딜 수 있는 지혜가 돋보입니다.  

 

<강선루(降仙樓)>

 

<선암사 일주문(仙巖寺 一柱門)>

호젓한 길을 휘돌아 마음을 고르고 昇仙橋를 건너 降仙樓를 지나 들어서는 이 문은 1719년에 세워진 것입니다. "조계문창건상량문"에 의하면 원래의 건물은 화재로 소실되고 1540년에 다시 세웠으나 병자호란으로 피해를 당하였다가 1719년에 또다시 세운 것이라고 합니다. 단층 맞배지붕 기와집으로 원형의 주춧돌 위에 배흘림기둥을 세웠으며 기둥과 기둥 사이에 3裙의 공포를 배치해 놓은 多包式 건물입니다. (승주읍 죽학리 산48-1)

 

 

 <범종루(梵鐘樓)>

일주문을 들어서니 누각으로된 범종루가 다가섭니다. 허리를 숙이고 樓下進入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올라와 보니 법고(法鼓)와 목어(木魚) . 운판(雲板)이 있습니다. 이러한 불구들은 아침 저녁 예불하기 전에 범종(銅鐘)과 법고(鼓) . 목어(木魚) . 운판(雲板)을 울립니다. 목어는 큰 통나무를 겉은 물고기형상으로 조각하고 속은 파낸 것으로 막대기 두개를 양손에 쥐고 안쪽 양편을 두드려 소리를 내는 佛具입니다. 목어는 목어고(木魚鼓)·어고(魚鼓)·어판(魚板)이라고도 하며 보통 잉어의 형상으로 만드는데, 용의 얼굴로 표현 한 것도 있습니다. 법고(法鼓)는 범종(銅鐘) · 목어(木魚) . 운판(雲板)과 함께 불전사물(佛殿四物)의 하나입니다.

 

 

 

<순천 선암사 대웅전(順天仙巖寺大雄殿)>

석가모니를 주존불로 모신 건물입니다. 이 대웅전은 임진왜란 때 불탔던 것을 현종 원년(1660년)에 다시 지었고, 영조 42년(1766년)에 또 화재를 만나 없어졌다가 순조 24년(1824년)에 고쳐지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정면3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기단을 기둥면석, 갑석(甲石)을 조립하여 그 위에 주춧돌을 놓아 민흘림 두리기둥을 세우고, 그 위로 창방과 명방을 두르고 그 위로 拱包(기둥을 받치는 부재)를 짜 올렸는데 출목 數는 위 3출목, 안 4출목으로 그 모습이 매우 장중하고 화려합니다. 내부는 層段을 이룬 우물천장(우물 井字 모양)으로 장엄하게 단장되었으며 단청도 비교적 선명합니다.

사찰 경내에는 "의천 대각국사 탄신 955주년 만등불사" 행사를 지낸 후 정리되지 않아 온통 등과 임시 설치물로 인해 어수선하고 이런 설치물들이 그대로 있어 사찰 건축물이나 탑을 가려 볼 수도 없고 감상은 꿈도 꿀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선암사 삼층석탑(仙巖寺 三層石塔)>

탑이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것으로 불교의 상징적인 예배의 대상입니다. 대웅전 앞 좌우에 서 있는 이 3층석탑은 두 탑의 양식과 건립시기가 같습니다. 신라시대 석탑의 전형적 양식을 따른 이중 기단의 삼층석탑으로 상하와 밑단에는 매 면마다 3개의 기둥을 돋을 새김하였으며 위아래 갑석(甲石:돌 위에 포개어 얹는 납작한 돌)의 수법도 이와 같습니다. 탑몸부분(塔身部)와 지붕돌(屋蓋石)은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고, 탑몸부분의 각 면에는 양 모서리에 2개의 기둥을 돋을새김 하였을 뿐 다른 장식은 업습니다. 지붕돌은 평평하고 넓으며 받침은 각각 4단으로 되어 있고 모서리의 반전(反轉)이 경쾌하게 되어 있습니다. 1996년 해체복원 때 동쪽 탑 1층 탑 몸 아래에서 사리장치가 출토되었는데, 사리1과가 들어있는 금동사리함과 청자, 백자(보물제955호)등이 발견되었습니다.   

 

 

사찰 경내에는 "의천 대각국사 탄신 955주년 만등불사" 행사를 지낸 후 정리되지 않아 온통 등과 임시 설치물로 인해 어수선하고 이처럼 설치물들이 사찰건축물이나 탑 등 문화재를 가려 볼 수도 없고 감상은 꿈도 꿀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ㅜㅜ

 

 

 

<지옥전(地獄殿)>

 

 

 

<선암사 팔상전(仙巖寺八相殿)>

석가여래의 전생에서부터 열반에 이르기까지의 일대기를 여덟 장면의 그림으로 표현한 것을 八相圖라고 하고, 팔상도를 모시고 석가여래를 기리는 佛殿을 팔상전이라고 합니다. 앞면 5칸, 옆면 3칸의 단층 맞배지붕(옆에서 볼 때 '八'字모양)으로 된 이 팔상전의 기둥 윗몸은 평방없이 昌枋만으로 짜여져 있습니다. 기둥 위에만 주두(柱頭: 공포를 받치는부재)를 놓고 첨차(檐遮:공포를 이루는 부재로윗부재를 받친다)를 짜 올렸으며 기둥 사이의 창방 위에는 꽃받침(花盤)을 놓아 도리 밑의 장여(혀바닥 모양의 부재)를 받치고 있는 익공식(翼工式)에 가까운 주심포식(柱心包式:치마를 받치는 부재인 拱包가 기둥 위에만 있는 형식)건축입니다.

 

팔상전과 나란히 있는 이 건물은 '불조전'입니다.

 

<순천 선암사 선암매(順天 仙巖寺 仙巖梅)>

선암사 선암매는 원통전.각황전을 따라 운수암으로 오르는 담길에 50주 정도가 위치합니다. 원통전 담장 뒤편의 백매화와 각황전 담길의 홍매화가 천연기념물 제 488호(지정일 2007년11월26일)로 지정되었습니다. 문헌에 전하는 기록이 없어 수령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사찰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지금으로 부터 약 600여년 전에 천불전 앞의 외송과 함께 심어 졌다고 전하고 있어 선암사의 역사와 함께 긴 세월을 지내 왔음을 알 수 있겠습니다. 매화꽃이 필 때면 매화를 보기 위해 선암사를 찾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매화나무 중 생육상태가 가장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원통각(圓通閣)>

 

<원통전 앞 백매화와 네모진 작은 池 >

 네모진 작은 못

 

운주암으로 가는 길목입니다.

 

원통전과 각황전 담장을 끼고 운주암으로 가는 길에 줄서있는 천연기념물인 매화나무들 입니다.

선운사 뒤 산자락에 새로 세운 이 건물은.. ?

선암사 뒤에서 내려다 본 전경

 

<선암사 중수비 (仙巖寺 重修碑)>

이 중수비는 조선 숙종 33년(1707)에 건립된 碑 입니다. 정유재란으로 불탄 선암사를 若休大師가 중심이 되어 다시 세웠다는 내용을 기록한 것입니다. 거북받침과 碑를 그리고 碑頭(龍틀임머리)로 이루어진 일반적인 양식의 비석으로 조선시대 석비로는 비교적 뛰어난 작품입니다.

總高 5.02m, 碑身幅 1.25cm, 厚 30cm 입니다.  

 

 

 

 

<선암사 각황전(仙巖寺 覺皇殿)>

각황전의 다른 이름으로 장육전으로 석가여래 몸이 보통 사람보다 두 배로 큰 1장6척으로 하여 일컬은 말입니다. 석가여래의 모습을 丈六尊像이라고 일컫는데서 따온 것입니다. 신라 경문왕 원년(861년)에 대각국사가 새롭게 고쳐 세웠으나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없어졌고, 조선조 현종 원년(1660년)과 영조 36년(1760년) 두 차례에 걸쳐 고쳐징느 후 순조 1년(1801년)에 다시 지은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 건물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작은 전각으로 자연석으로 축대를 쌓아 기단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주춧돌은 큰 자연석으로 그 위에 원형 기둥을 세웠습니다. 낮은 기둥 위로는창방과 평방을 얹은 후 공포(처마를 받치는 부재)를 두어 건물의 높이를 한층 더 높였습니다. 기둥 사이에 3개의 공포를 둔 다포식 건물이고 팔작지붕에 겹처마입니다.

 

(삼전)

 

<무량수각(无量壽閣>

<삼성각>

(창파당)

<적묵당(寂默堂)>

 

<선암사 측간(仙巖寺 厠間)>

우리나라에서 제일 예스럽고 멋진 이 측간은 앞면 6칸, 옆면 4칸 규모의 맞배지붕이며, 바람을 막을 수 있는 風板으로 처리되었습니다. 평면은 "丁"字形으로 북쪽에서 출입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입구 지면에서 정면으로 건물을 바라보면 단층으로 보이나 남쪽(뒷면)에서 보면 2층 건물입니다. 이는 2층을 축대를 쌓은 지면과 높이를 맞춰서 붙여 건축하여 앞에서 보면 단층 건물처럼 보이고 안에 들어가거나 건물 뒤에서 보면 2층 건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2층의 마루 바닥이며 그 밑 1층은 창고처럼 넓은 공간지대인 아랫바닥의 地面이 보이고 그 지면에 낙엽을 깔아 그 위에 변이 떨어지게 되었으며, 남쪽 건물 뒤로 문이 있어 그 문을 통해 수레를 끌고 들어가 변을 모아 실어 나르도록 설계 되었습니다. 앞(북쪽)의 출입구에 들어서면 가운데 통로가 있고 통로 양 옆은 어깨 높이의 판자로 만든 담으로 남자와 여자가 사용하는 칸이 양분되어 있는데, 가운데 통로 끝 양쪽에 문짝 없이 남.여 입구가 있으며 그 입구로 들어서면 다시 통로가 있고 통로를 따라 문이 없는 칸막이로 구분된 용소가 5개씩 4줄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공중화장실 안에 문 없이 낮은 칸막이만 된 화장실이 나열되어 있는 것을 상상하면 이해가 빠릅니다. 따라서 옆 칸에서 일 보던 사람과 동시에 일어서면 상체를 서로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칸막이는 가슴 높이이니까요. 재래식 화장실에서는 보기 드문 구성입니다. 건물은 전후좌우 자연지형의 높고 낮음을 지혜롭게 이용하여 상부층과 하부층을 분리한 특징이 돋보입니다. 정면의 풍판은 가운데와 양 끝을 들어올림으로서 곡선미를 주는 한편 드나드는 사람의 머리 높이를 배려하였습니다. 건물의 짜임새도 튼튼하고 보존상태 또한 비교적 좋은 편입니다. 이 측간은 언제 지어졌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적어도 1920년 이전에 지금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측간 뒤편입니다. 건물 가운데 아래 붉은 색있는 곳에 변을 치우기 위해 사람이 들어갈 수 있도록 문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안쪽 지면에 낙엽이나 풀, 또는 볏짚을 깔아 그 위에 떨어진 변을 퇴비화 하여 친환경적으로 처리하는 옛 先人들의 지혜로움이 돋보입니다.

 

<2007년 6월에 촬영한 사진입니다. 당시는 아래 사진처럼 대나무 울타리가 없어 근접할 수가 있었답니다.>

 

 

<해천당(객사)>

 

 

2010년11월18일 순천 조계산 선암사에서, - 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