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타이인들은 특히 자그마한 예술품에 뛰어난 장인정신을 발휘하여 섬세한 뼈 조각품, 蜜蠟法으로 鑄造된 청동제품들과 打出된 금은제품들을 만들어 내었다. 이러한 장식과 공예품의 출현은 기원전 7세기에 시작된 스키타이 사회의 계급분화와 관계되어 있다. 사회 상류층을 형성하고 있는 군사지도자들은 그들 자신을 동료 부족민들과 구분하고 그들의 중요성과 사회적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하여 財貨와 권력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였다. 유목생활과 빈번한 군사적 교전의 상황에서 이러한 목적은 祭服에 달린 금은제 장신구와 화려하게 장식된 武具와 馬具, 儀禮 용기 따위에 의해 잘 성취될 수 있었다.
이러한 모든 물품들은 동물상이나 싸우고 있는 야수像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그것은 소위 "스키타이 동물양식"으로 불리는 특징적인 생기찬 양식으로 전환되어 있다. 실용적 중요성을 갖도록 디자인된 이러한 미술품은 당연히 공예품이나, 그것은 넓은 의미에서 의미가 있는 상징적 像이다. 스키타이의 동물모습 형상은 그들의 세계관을 반영하며 유목 무사들의 종교적, 심미적 이상을 표현한다. 그들의 쉴새없는 전투, 공격을 물리치고 방어하기 위한 끊임없는 채비가 그들로 하여금 영웅적 행위와 용맹에 대한 존경을 배양하게 하였다.
한편 이러한 특질들이 美에 대한 스키타이적 개념을 심어준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동물에 대한 묘사에서 극히 음츠러들거나 신속하게 도망갈 수 있는 동물들 보다는 강하고 공격적인 야수상을 선호하게 되었던 것이다. 獸形的 이미지들은 魔力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스키타이인들은 동물을 예술작품의 주제로 삼았던 것이다. 스키타이 미술에 투영되어 있는 각각의 상이나 이미지는 스키타이인들에 의해 재앙이나 곤경을 막아낼 수 있는 일종의 벽사(辟邪 Apotropation)로 여겨지고 있다. 무기와 마구를 강하고 빠른 동물상으로 장식하는 것은 특별한 중요성을 지니고 있는 바, 그것은 스키타이인들이 동물들이 갖고 있는 힘, 속도, 날카로움과 예리한 嗅覺같은 특징들을 무사, 그의 무기와 말의 이미지로 轉寫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비록 현재로서는 확인하기 쉽지는 않으나 각각의 상들은 맹백히 각자의 구체적인 의미를 갖고 있었다. 모든 獸形像들은 우주의 힘과 자연 현상을 擬人化한 몇 종류의 신과 연결되었다. 헤로도투스의 서술에서 스키타이인들은 건강과 불, 하늘, 대지, 태양, 그리고 전쟁의 신들을 숭배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스키타이인들의 신들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특정의 동물양식을 스키타이인들이 믿고 있는 특정한 神과 확실히 결부시키기는 어렵다.
同類의 인도-이란 부족들의 신화에서 하나의 동물은 여러가지 다른 신들을 상징화할 수 있고 역으로 각 신은 다른 동물로 재생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신속한 움직임으로 사람들의 상상을 자극시켰던 태양은, 치솟아 오르는 새나 황금 뿔의 수사슴, 또는 질주하는 말로도 표현되었다. 이러한 모든 이미지들이 스키타이 양식의 모티브들 속에 나타나고 있다. 스키타이 미술은 굳어진 미술현상이 아니다. 전반적인 스키타이 문화와 마찬가지로 스키타이 미술은 아래의 3기로 나뉘어질 수 있다.
<초기 또는 古典기(Archaic) 스키타이(기원전8~7tprl), 중기 스키타이(기원전 5세기)와 후기 스키타이(기원전 4세기), 각 시기는 문양과 주제에 있어서 나름대로의 특징을 갖고 있다.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특정의 모티브가 새로이 나타나거나 사라졌고 형태도 많은 변화를 거쳤다. 古典期에서도 동물양식은 독특한 스키타이 미술 전통과 대부분 고대 근동 기원인, 수입된 형태와의 자연적 결합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 당시에 나타나는 像의 종류는 제한되었고 規準에 따라야 했다. 가장 애용된 주제는 네 무릎을 꿇고 앉은 수사슴, 야생염소(ibexes), 큰뿔사슴(elks), 곧추서거나 둥글게 말린(curled-up)형태의 짐승들이다. 동물 몸통의 특정 부분도 독자적인 모티브로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짐승이나 새 . 양 . 말의 머리, 말의 발굽이나 동물의 귀 따위가 그러하다. 때로는 여러 야수들로부터 추려낸 다양한 요소들을 합쳐 상상의 동물상을 만들기도 하였다.
스키타이인들에게 특징적인 두 종류의 상상적 동물이 그들의 미술에 널리 퍼져 있었다. 하나는 스키타이 신화에 기원하고 있으며 야수의 부리를 가진 나는 양과 흡사한 동물이다. 다른 하나는 독수리 머리와 날개달린 사자 몸통이 합쳐진 그리핀(griffin)으로 오리엔트에서 창조되었다. 고전기의 스키타이 유물들은 대개 야수의 귀와 길게 돌출되어 나온 혀를 가진 괴물모양의 새머리를 묘사하고 있다. 자연적으로 스키타이인들은 이 차용된 오리엔트 모티브에 그들 자신의 의미를 부여하였다. 괴물의 무서운 외모는 유목민들의 세계관에 스며들어 있는 굴하지 않는 힘과 정복되지 않는 氣槪의 사상을 동반하였다.
스키타이인들에 의해 도입된 고대 근동지방 기원의 주제들은 이미 알려져 있던 표범같은 고양이와 맹수뿐만 아니라 흑해 북안지역에는 알려져 있지 않았던 동물인 야생염소까지 포함하였다. 스키타이들은 도입된 주제들을 고대 오리엔트 원형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 아니라 스키타이 양식의 형틀에 맞춰 재해석하였다.
스키타이 미술에서의 동물의 이미지는 예술적 표현의 規準에 따라 좌우된다. 맹수들은 흡사 그들이 먹이를 낚아채는 것처럼 주둥이를 땅에 숙인 채 서있는 자세로, 또는 발이 주둥이와 맞닿게 둥글게 말아진 자세로 표현되었다. 성난 두 마리 맹수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고대 근동의 文章 조합도 스키타이 미술에 나타났다. 표준적인 양식 도안도 세부처리에 널리 이용되었는데, 예를 들면 발과 꼬리의 끝은 대체로 원과 타원으로 표시되었다. 수사슴과 산양은 발을 몸 밑으로 끌어모은 꿇어앉은 자세로 묘사되었다. 더욱이 산양은 머리가 뒤로 돌려져 있는데, 이는 고대 近東의 원형을 생각나게 한다. 동물의 종류는 한두가지 독특한 특징으로 판단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수사슴은 쭉 뻗은 머리와 등뼈를 따라 기대어 있는 여러 가닥의 녹각으로 쉽게 구분돨 수 있다. 산양은 비스듬한 주둥이, 대형의 낫모양의 뿔, 그리고 때로는 작은 수염으로 확인된다.
猛禽(대부분 독수리)을 해석할 때 장인들은 대체로 새의 머리만 묘사하였으며 날개를 편 새의 모습은 드물다. 새머리의 옆면을 묘사할 때 스키타이인들은 특히 커다란 둥근 눈과 굽어진 부리를 강조하였다. 스키타이 미술품의 구성상의 qocl(Compositional Arrangements)는 종종 재료의 형태와 모양 또는 장식성에 의해 결정된다. 동물양식의 창시자들은 항상 그들의 이미지를 가용한 공간에 채워 넣기 위해 둘러 싸이거 빽빽이 찬 형태를 사용하려고 시도하였다. 이리하여 예를 들면 둥글게 말린 맹수상은 둥근 형태의 기물의 표면을 장식하기 위한 통상의 구성 유형이다. 동물의 자세가 제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세부를 묘사하기 위한 표준 기법도 있어 예를 들면 눈, 귀, 콧구멍, 발과 꼬리들이 원형이나 타원형으로 변형되었다.
그러나 추가적인 동물 모티브는 단순히 장식적인 효과만을 위해서 도입된 것만이 아니라, 동물들의 재능을 이용한 주술적인 힘도 부여하고 있다. 이러한 양식적 그리고 개념적 도안은 스키타이의 미술적 해석의 독창성을 생생히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도안은 다양한 종류의 스키타이 유물에 나타나는 바 스키타이 전기의 말굴레장식의 일부(Eve-bar)에서도 그 일례를 볼 수 있다. 木製 재갈(Bits & Snaffles)과 굴레에 부착되었던 骨製 장식판들은 응용에 의해 형태가 결정된 또 다른 중요한 예이다. 그것들은 교묘하게 양, 염소, 양과 새가 결합된 동물들의 자그마한 머리모양으로 변형되었는데 동물들의 짧은 목에는 고삐와 굴레의 고정핀을 연결시키기 위한 작은 구멍들이 나있다.(사진 21~24)고대 스키타이인들의 굴레장식과 재갈멈추개는 엄격한 구조상의 논리에 의해 만들어졌다.이중에는 끝부분을 주둥이가 앞으로 뻗어있고 긴 귀가 목쪽으로 굽어있는 말머리모양으로 조각한 것도 있다(사진 34).
장인들은 동물의 몸체를 상징하는 장식물의 일반적인 구조에 동물머리상을 결합할 수 있는 멋진 유연성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결합은 장인으로 하여금 질주하는 말의 이미지를 창조하도록 하여주었다.
상이한 형상과 조합적 디자인의 놀라운 變異가 스키타이 미술의 특징인 다량의 청동제 竿頭飾에 의해 설명된다. 그것들은 의례에 사용되도록 되어 있는 것들로 간두식의 내부는 악령들을 겁을 주어 쫓아 낼 수 있다고 스키타이인들이 믿었던 땡그렁 소리를 낼 수 있는 구슬들과 매달린 혀(舌)로 가득 차 있다(사진39). 때때로 간두식은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말이나 당나귀의 머리모양으로 만들어졌다(사25). 또다른 경우에는 透刻된 몸통에 양의 뿔과 , 떠는 것처럼 보이는 튀어나온 혓바닥을 가진 幻鳥의 머리가 올려져 있다(사33). 이러한 간두식의 대부분은 희생된 말들과 나란히 스키타이장군 무덤에서 출토되었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아 간두식은 말의 제사(Cult)와 관련된 것 같다.
전기 스키타이 미술에서 나타나는 장식적인 전통에도 불구하고 동물의 표현은 현실감이 넘치고, 자연의 깊은 이해를 나타낸다. 옛 장인들의 개개동물들의특징을 포착할 수 있었던 능력은 존경할만하다. 스키타이 장인들은 단순히 자연을 베끼지 않고, 양식화와 과장법을 이용하여 독특한 유형을 창조하였다. 이리하여 생생한 실물감과 형태의 양식화 일반화와의 결합은 초기 스키타이 미술의 독특한 특징이 되었다. 고전적 기준에서 가장 정교한 동물양식의 작품은 스키타이 추장에 의해 방패문장으로 사용되었던, 코스트롬스카야(Kostrom skaya)고분에서 발견된 황금제 飾板이다(사12). 浮彫로 만들어진 이 식판은 다리를 몸통아래로 끌어 모아 네 무릎을 꿇고 앉은 사슴을 보여준다. 사슴의 치켜 올라간 머리, 등을 따라 쭉 뻗어 있는 뿔, 뻗친 목, 날카롭게 묘사된 근육들- 이 모두가 동물의 내재된 에너지, 힘과 긴장감을 한층 드높여준다. 이러한 관념을 전통적이면서도 현실감 넘치게 표현하는 어려운 일을 정밀한 장식적인 형태로 성공적으로 처리하였다.
켈레르메스 고총에서 출토된 금제 표범상도 전기 스키타이 미술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사13). 이 像의 미술적 처리는 짐승의 공격성을 더욱 강화시킨다. 무서운 힘과 공격에 대한 끊임없는 준비성이 경계의 자세와 이빨을 위협적으로 드러낸 머리의 각도에서 나타난다. 이 유물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스키타이와 오리엔트 양식과의 융합이다. 장인은 소아시아 미술에 정통하였음에 틀림없다. 오리엔트 모티브에 대한 그의 집착은 표범을 주제로 택한 점과 눈, 귀를 장식하기 위해 有色 嵌玉처리를 한 전, 정면관에서 탈피하여 네발톱이 모두 보이도록 다른 각도에서 처리한 점에서도 명백하다. 그럼에도 스키타이 미술의 관례적인 규율에서의 이와같은 이탈이 켈레르메스 표범의 진정한 스키타이적 성질을 변화시킨 것은 아니다.이는 동물의 특징적인 자세, 명암의 사용, 그리고 무엇보다도 세부의 獸形神적 양식화에 의해 분명히 나타난다. 꼬리와 발의 아랫브븐은 모두 10개의 뒤틀린 草書体狀의 고양이상으로 덮여있다. 이러한 상들은 분명히 이 護符의 마력을 증가시키기 위한 것이다.
스키타이 미술이 형선된 분위기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가치있는 것은 멜구노프(Melgunov)와 켈레르메스(Kelermes) 고분의 귀중한 발견물들이다. 기원전 7세기 후반과 6세기 전반의 이러한 부유한 묘들은 소아시아의 제국들과의 전투에 참가한 스키타이의 최고위 지배자들을 위해 조영되었다. 이들 무덤에서 발견된 찬란한 유물들은 그것들이 나타내는 양식적 방식의 다양성이 더욱 놀랍다. 스키타이인들이 소아시아에 잠시 머무는 동안 그들은 그들 자신의 장인들 뿐만 아니라 소아시아 여러 나라와 근동의 중심지에서 온 예술가까지 고용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주는 것이 위에 언급한 금제 표범모양 장식판의 소유자였던 스키타이 족장이 묻힌 무덤의 봉분이다. 다른 전통에 속하는 금속제품과 같이 촐토된 동물양식 부장품의 존재는 무덤 주인의 미술적 취향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동물양식 이외의 전통에 속하는 몇 가지 흥미 있는 유물로 盌과 鬪斧, 劍이 있다. 금제완의 半球形 몸통은 돋세겨진 세 줄의 문양대로 장식되었다(사14). 상부의 文樣帶는 앗시리아 보석 조각술에서 애용되는 모티부였던 타조처럼 보이는 활보하는 새들로 묘사되어있다. 중간의 문양대도 역시 고대 오리엔트의 특징적 장면인, 암염소를 쫓는 늑대와 수사슴을 찢고 있는 사자가 묘사되었다. 하부 문양대는 수사슴과 멧돼지, 그리고 다리를 꾸부리고 앉아있는 양이 보인다. 대접의 바닥은 생명을 주는태양의 상징인 장미꽃 장식이 돋새겨져 있다. 위에 묘사한 동물의 자세와 수사슴의 존재는 스키타이 동물양식을 나타내지만 완성된 기술과 양식화의 원리들은 스키타이 미술 자체에는 아주 낯선 것이다. 몸통의 경직되면서도 자연주의적인 처리와 의도적으로 강조된 갈비뼈, 신중하게 표시된 머리털과 기타 세부처리는 모두 앗시리아 미술파의 신봉자인 고대 근동지방 장인의 시술임을 보여준다. 이들 獻酒 대접은 지휘관과 사제의 임무를 동시에 수행하였던 상류계층의 스키타이인이 고대 오리엔트 장인에게 주문하였을 것이다.
수입품 중에는 켈레르메스 고분 출토의 은제거울이 두드러진다. 은제원판의 뒷면은, 동물과 상상의 짐승들로 에워 싸여 있는 날개달린 女神像인 사이벨레(Cybele)를 묘사한, 멋진 디자인으로 묘사한 琥珀金板(은에 금도금한 판)으로 덮여있다. 거울은 Graeco-Oriental 유파로 제작되었다. 동시에 말린 발톱의 서 있는 표범과 네 무릎을 꿇고 앉은 야생염소의 두 모티브는 전형적인 스키타이 미술의 이미지이다(사17). 거울을 장식한 자는 의심할 바 없이 그리스 匠人이나 디자인 자체는 스키타이적이다. 스키타이 고객의 요청에 따라 그리스 장인은 거울을 호박금판으로 꾸미고 장식에 있어서는 스키타이인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다.
그리스 문화의 스키타이 세계에 대한 영향은 유목민의 소아시아의 정복이후 특히 두드러졌다. 멋진 로디아-이오니아토기, 예술적인 청동제품(마루토노시 고분 출토의 청동 용기), 이오니아製의 크레이터 청동손잡이(사37), 그리고 다른 사치품들이, 처음으로 그리스 본토와 섬에서, 바다를 통해 그리고 흑해 연안의 인접한 그리스 식민도시들로부터 강과 지류를 통해 반입되었다. 기원전 6세기 후반에 스키타이 상류계층의 취향과 수요에 응하는 많은 작업장이 올비아, 판티카페움과 흑해 북안에 있던 다른 그리스 식민도시들에 출현하였다. 그들의 생산품에는, 예를 들면 스키타이 原形에 따라 동물의 머리나 조상으로 장식된 긴 손잡이의 소위 올비아 디자인의 주조된 청동거울도 포함되어 있다(사38).
후기 古典期(기원전6세기 말과 5세기)동안은 스키타이 미술 자체에서 장식적 경향이 차츰 증가하는데, 장식적인 동물요소가 과다하게 사용되는 반면 동물형상은 아주 간결하게 표현된다. 이 시기의 가장 뛰어난 작품 중의 하나는 울스키아울 고분에서 발견된 청동제 竿頭飾인데 맹금의 장식적인 머리모양으로 주조되었다. 이 기념비적인 鳥像은, 형태의 풍부함과 유연성 뿐만 아니라, 균형된 비율과 율동적인 박력에 기초하고 있다. 둥근 눈과 나선상의 부리를 가진 독수리의 머리는 밀집되고 정교한 장식적 패턴의 인상을 준다. 이러한 장식은 양과 새의 작은 머리, 그리고 특히 새의 큰 눈에서 발견되는 자연주의 - 그리스 자연주의의 영향인 ㅡ 와 크게 대조된다. 이 유물은 악렬을 막기 위한 수호신의 역활을 하였다. 스키타이인들에게 청동제 竿頭飾은, 무서운 外樣과 방울소리로 악령을 쫓아내도록 되어 있는 강력한 護符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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