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아달다왕 5년(158년)에 춘사죽죽(春史竹竹)이 길을 냈다는 죽령고갯길을 넘어 이제 영동지방의 봉화로 갑니다.
죽령 마루턱
우리 전통 건축공법으로 樓閣을 새로 짓고 있습니다. 오로지 나무와 흙만으로 소위 요즘 흔히 말하는 친환경적 건축입니다. 이렇게 우리 선조들은 일찍부터 선경지명으로 자연과 더불어 살고자 했지요. 이 어리석은 후손들은 한참을 망그러지게 살다가 이제야 조상님의 그 지혜를 헤아리고 정신이 드나봅니다.
똑똑하다는 네비게이션을 믿고 가다가 엉뚱한 곳을 거치게 되었는데 이정표가 이 길치에게 친절을 베풉니다.
금계포란金鷄抱卵형의 '닭실鷄室'이란 이름으로 부르는 안동 권씨의 집성 마을입니다.
'닭실'은 마을의 동서남북으로 얕은 산들이 좌청룡, 우백호, 전주작, 후현무의 지세로 병풍처럼 둘러져 있답니다. 또한 주산으로 내려온 맥이 닭실에 이르러 완만한 경사지와 평탄한 들판을 이루면서 '북고남저 北高南低'의 이상적인 지형을 이루고 있으며 산과 들판 그리고 개천물이 가지런히 놓여있어 전형적인 명당을 이루었답니다. 그래서 이곳을 이중환(李重煥)은 「택리지」에서 안동의 내앞, 풍산의 하회, 경주의 양동과 더불어 三南四大吉地라고 하였습니다.
닭실은 동북으로 문수산이 병풍처럼 둘러있고 그 줄기에서 서남으로 뻗어 내린 白雪嶺이 알을 품은 암탉의 형세로 자리하여 5시 방향, 즉 艮坐坤向으로 마을을 내려다보는 지세를 이루고 있답니다.
옥적봉는 동남에 자리한 안산으로서 수탉이 활개를 치는 형상을 하고 있답니다. 이처럼 닭실의 지세는 수탉과 암탉이 서로 마주보고 사랑을 나누며 알을 품고 있는 명당이랍니다. 닭이 알을 품은 형태는 그 자손이 번창 하며 재물도 늘게 됨을 의미한답니다.
<金鷄抱卵形 . 금닭이 알을 품은 형국 >
<500년을 이어온 안동 권씨 집성촌>
닭실마을은 조선 중기의 문신 충재 권벌 선생(沖齋 權橃, 1478-1548)의 종택이 자리하고 있는, 안동 권씨 집성촌입니다.
이 대문안 청암정은 거북 모양의 너럭바위 위에 세운 정자로서 미수 허목(許穆)의 친필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종택에서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 울창한 소나무 숲에 싸인 석천계곡이 있는데, 이곳에는 권벌의 장자 권동보가 지은 석천정사가 있어 계곡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는데, 보지는 못했습니다. 충재 종택과 청암정, 석천계곡으로 이어지는 이 곳의 경관은 명승 및 사적 제 3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 문은 종택 서쪽으로 외부에서 저택을 거치지 않고 바로 청암정으로 들어가는 쪽문입니다.
청암정 서쪽은 누각으로 되어있고 그 아래는 깎아지른 절벽입니다. 절벽아래에는 석천계곡으로 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청암정 앞 돌다리 아래는 본디 연못인데 물이 말랐습니다. 물이 있었다면 참으로 빼어난 경관이었을 겁니다. 교교히 흐르는 달빛아래 구름과 별과 달이 잠겨 어우러져 비췄다면 당신은 바로 시인이 되셨겠지요.
청암정靑巖亭의 이 현판은 米壽 許穆 先生이 쓴 글씨입니다. 충재沖齋의 장자 권동보權東輔는 청암정의 이름을 따서 자신의 호를 靑巖이라고 지었습니다.
《 계수소齊》啓水소齊 /지금은 漢字典으로도 찾기 어려운 쓰이지 않는 古字로 첫자 계는 啓자와 뜻을 같이 합니다. 두번째 글자는 물水의 상형문자의 변형으로 사전적으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세번째 글자는 요란할 소 떠들 소, 시끄러울 소의 뜻을 가지며 지금은 쓰지 않는 古字입니다. "요란스런 물소리를 듣는 곳"이라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겠습니다.
너럭바위에 정자를 짓고 바위 언저리 흙을 둥그렇게 돌려 파내어 꾸민 연못입니다. 못에 물이 마르고 고목은 이끼가 덧붙어 있어 바위인지 나무인지 분별이 안 되는 그 형상은 용의 모습입니다.
후원에서 청암정으로 건너가는 외돌다리입니다. 점잖은 대감님이 건너다니기에는 체신이 안서겠네요. 받치는 橋脚의 폭은 넓은 것으로 볼 때 상판석도 3장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근래에 중수重受한 듯 최근에 구워진 얄팍한 기왓장의 가벼움이 맞배지붕의 중후한 멋스러움에 부자연스럽지만 그래도 이만한 모습을 볼 수 있음이 감사합니다.
충재(沖齋) 라는 현판이 걸린 이 건물은 간결하면서도 감탄할 수밖에 없는 선조들의 지혜와 아름다움과 멋을 이 작은 공간에서도 느낌을 행복합니다.
솟을 대문의 이 집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예조판서를 지낸 충재 권벌 선생(沖齋 權橃, 1478-1548)의 소박한 양반가의 전형적인 종택입니다.
선생은 안동 출신으로 중종 2년(1507년)에 문과에 급제하고 관직에 활동하던 중 중종15년(1520)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파직된 후 이 곳에 정착하여 후진을 양성하고 경학연구에 전념하였습니다. 중종28년(1533) 복직되었다가 을사사화로 인하여 다시 파직되었고, 명종 3년(1548)유배지인 평안도 삭주朔州에서 돌아갔습니다.
종택의 내부입니다. 주인이 출타하여 자세히 돌아볼 수 없었습니다.
종택 안 좌측입니다. 강아지만 저를 유심히 지켜봅니다.
단정한 담장 안 고졸한 팔작지붕 용마루의 유려한 곡선에 마음이 설렙니다.
종택의 전경입니다.
이 마을은 충재 선생의 제사를 모시면서부터 한과를 만들기 시작하여, 5백여년동안 한과를 만들어 온 것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요즘도 전래의 방법대로 한과를 만들어 전통의 맛을 그대로 이어오고 있으며, 고명을 얹은 모양이 특히 곱답니다. 이곳 닭실(酉谷里)부녀회 주관으로 마을 사람들이 회관에 모여 공동작업으로 한과를 만드는데 국내 재료를 사용하여 모든 과정은 수작업으로 합니다.
닭실(酉谷)마을의 상징은 가로등으로 거듭 마을의 안녕를 위해 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종택 옆의 이 기념관에는[충재일기(보물261호)], [연산일기], [세초도], [근시록(보물 262호)]등 문화재 467점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2010년 3월29일(월) < 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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