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하늘이 밝은 햇살로 상큼 웃음 짓고 흰 구름 부드럽게 손짓하니 방에 있을 장사 있겠어요. 이참에 바람도 쐬고 새싹들도 만나봐야지 해서 좀 멀리 갈 양으로 자전거를 타고 나갔는데 자전거는 자연스레 강변을 향해 달리는 거예요. 그런대요 가면서 생각이 듭디다. 내가 곰인가 하고요.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갑자기 왜 곰이냐고요. 허 글쎄 말입니다. 제가 왜 곰을 생각했는지 들어보실래요. 제가 먼 여행이 아닌 밖에만 나오면 신당동 왕십리바닥 아니면 광나루 천호동 세종로지 뭡니까.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유인즉 신당동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왕십리에서 보내고 좀 자라 청년기에서부터 이날 이때까지 광나루와 그 언저리에서 살면서 30년을 광화문으로 출근했는데, 지금에 와서도 밖에만 나갔다하면 신당동 왕십리 찍고 광나루 천호동 광화문입니다. 이렇게 다니던 곳만 되 집어 다니니 곰이지 뭡니까 그런데 저만 그런가요? 사고 친 범인은 꼭 그 현장을 맴돈다면서요.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 때, 끝없는 생각을 떨치고자 주변을 보니 어느새 광나루다리네요. 하, 이거 마침 잘됐습니다. 얼마 전부터 보고 싶던 것이 있었거든요. 그것이 무엇이냐고요. 자 그럼 이제부터 그곳으로 안내하겠습니다.
광진교, 저희는 어려서 '광나루다리'라고 불렀지요. 지금도 그리 부르는 사람도 있어요. 70년대까지는 일제강점기 때 놓은 좁고 낮은 다리였는데 63년 큰 장마에 물이 넘쳐 골병들고, 80년대 어느 장마에 물이 넘쳐 주저앉아 두 번에 걸쳐 지금의 다리가 놓이게 되었습니다.
다리하면 왠지 그냥 내쳐 건너야 된다는 그런 습관성이 몸에 배어있잖아요. 그런데 다리에 행인을 위해 이런 공간이 있으니 공원에 있는 느낌이고 느긋해지는 여유로움이 생깁니다. 앉고도 싶고 마음이 포근해져요.
이 다리를 '걷고 싶은 다리'라는 케리커처(caricature)아래 걷기 좋게 보도에 원목을 깔고 잔디와 꽃나무도 심고 이처럼 중간 두 곳에 제법 넓은 공간과 벤취도 마련 했습니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 하얀 화장실도 있습니다.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이곳에서 볼 일을 보면 뜬구름위에 앉은 기분일까요 아마, 그 시원함은 그리 비견할 만 할 거예요.
우리나라에 이렇게 건널목과 신호등이 있는 다리가 또 있을까요? 다리 위에 건널목과 신호등이 참 신선하고 재밌습니다. 아이들은 더 신기해하겠어요.
드디어 궁금했고 또한 님들을 안내하려고 한 곳입니다. 이름은 리버뷰<River view> 다리 밑에 둥근모양의 전망대를 설치하였습니다.
세계에서 3대 전망대 중 하나라고하네요. 타원형인데 반으로 나눠져 있으며 하나는 전망대 겸 전시공간이며, 다른 하나는 공연공간으로 되어있습니다. 지난해 8월 완공과 함께 신개념 전시와 공연공간으로 개장했는데, 지난 12월까지 하루 평균 1000명을 웃돌만큼 한강의 대표적 전망 명소이자 문화공간으로 자리잡았답니다. 현재는 사업자를 공모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이곳에서 드라마'아이리스'의 한 장면을 촬영한 것으로도 유명해졌습니다.
출입계단입니다. 앞과 뒤, 두 곳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보이는 계단은 제가 내려가는 계단의 맞은편 쪽에 있는 계단입니다.
'아이리스'에서 열연한 이분 잘 아시죠? '김승우'씨 인가요. 사실 저는 연예인들의 이름을 잘 모릅니다. 양 계단이 합치는 공간에 설치되어있습니다.
전시장과 공연장은 이런 복도식으로 돌려져 있습니다.
이곳이 전시장입니다. 전망대이기도 하구요. 아이를 소재로한 그림과 공작물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아이가 쪼그리고 앉아 있는 곳은 유리바닥인데요. 푸른 강물이 넘실거려 겁도 나고 짙푸른 곳으로 그냥 떨어질 것만 같아 발도 못 디뎌봤습니다.
저만 그런 심정인줄 알았더니 모두 그런 느낌인가 봅니다. 모두 유리바닥은 피해 다니더라고요.
인당수 푸른 물이 이랬을 텐데.. 심청이 참, 당차고 효심이 저 물결만큼이나 넘칩니다.
그리 좁지는 않지만, 넓지도 않은 공간이 협소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사방팔방으로 확 트인 창으로 강물만 보여서일까요. 그런데 홀 바닥을 내려다보면 투명한 유리를 통해서 보이는 크고 작은 물결이 일렁이며 흐르는 물 때문에 마음이 안정이 안 되고 어지럽군요.
홀에서 나와 서쪽 공연장으로 돌아봅니다. 강바람에 일렁이는 강 물살을 보노라니 배를 타고 가는 그런 착시와 멀미를 느낍니다.
한 바퀴 돌아오니 싸늘하고 섬뜩한 얼굴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름은 모르지만, 이 주인공이 아이리스에서 진정한 킬러(killer)맞죠?
강물의 전경을 두꺼운 유리에 쓰인 글과 합성해 효과를 얻어 보려 했는데, 유리가 두터워서 사진이 또렷하질 않아요.
전망대를 한 바퀴 돌아보고 나오니 맞아주는 인물이 있습니다. 제가 이름을 확실히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연예인 중 한 사람입니다.
63년 여름 장마에 前 광진교가 넘쳤을 때 아차산자락 여러 마을 어귀와 천호동 . 구리시 강변 논밭이 잠겨 그대로 바다였지요. 농가 초가집도 소 돼지도 떠내려가든 일이 흐르는 강물처럼 走馬燈처럼 스쳐갑니다.
광진교 위에서 본 천호동쪽 강변둔치공원인데요. 여러 가지 시설이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어 눈이 즐겁고 마음이 흐뭇합니다.
강동구 쪽 광진교 입구에 있는 詩碑입니다.
조선 전기의 학자 (徐居正1420~1488). 자는 剛中. 호는 四佳亭) 서거정선생의 강동예찬詩에 눈을 지그시 감으니, 이곳의 옛 풍경이 눈에 삼삼하여 잠시나마 옛 선비들처럼 덩달아 멋스러워집니다.
본관은 達城이며 權近의 외손자. 1444년(세종 26) 식년문과에 급제하고, 1451년(문종 1) 사가독서(賜暇讀書) 후 집현전박사 등을 거쳐 1457년(세조 3) 문신정시(文臣庭試)에 장원, 공조참의 등을 지냈고 1460년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대사헌에 올랐으며, 1464년 조선 최초로 양관대제학(兩館大提學)이 되었습니다. 6조(曹)의 판서를 두루 지내고, 1470년(성종 1) 좌찬성(左贊成)에 이르렀으며 이듬해 좌리공신(佐理功臣)이 되고 달성군(達城君)에 책봉되었습니다.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45년간 세종·문종·단종·세조·예종·성종의 여섯 임금을 모셨으며 신흥왕조의 기틀을 잡고 문풍(文風)을 일으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원만한 성품의 소유자로 단종 폐위와 사육신의 희생 등의 어지러운 현실 속에서도 왕을 섬기고 자신의 직책을 지키는 것을 직분으로 삼아 조정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당대의 혹독한 비평가였던 김시습과도 미묘한 친분관계를 맺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광진교 동쪽 (천호동 방면)에 설치되어 있는 둔치로 내려가는 자전거도로로 놓인 부교입니다. 이리 내려가서 팔당댐까지 갈 예정인데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에게 여쭈어보니 왕복 4시간정도 걸린다는군요.
시간은 2시30분, 자 이제 대장정입니다.
강변을 따라 이런 생태경관보전구역이 이어졌고 오솔길도 있어 조깅장소로 활용하고 있는데요. 갈대가 무성하여 여름이나 가을날에는 더욱 운치가 있어 참 좋겠습니다.
끝도 없을 것 같은 무슨 자전거고속도로 같습니다.
그대 없어도 혼자 사색을 즐기며 호젓이 걸을 수 있을 것 같이 아늑함으로 다가오는 강변의 갈대숲오솔길...
구리 - 하남을 잇는 중부고속도로가 보이는 그 아래 곧게 뻗은 자전거도로 그 넘어 검단산이 보입니다.
올림픽대로에서 서울춘천고속도로와 중부고속도로로 들어설 수 있는 인터체인지부근입니다.
차가운 바람이 세차게 불고 시장기도 느껴 시계를 보니 4시20분. 점심을 걸렀거든요. 만약을 생각해서 사온 시루떡으로 요기를 하려고 잠시 강변 옆 갈대숲으로 들어섰답니다.
키재기를 할 정도로 무성한 갈대숲으로 들어오니 아늑하니 참 좋군요. 보리밭 사이만 좋은 줄 알았더니 무성한 갈대숲도 연애하기 참 좋겠습니다. 이런 가곡이 있지요. " 보리밭사이로 오라 고운 내님아 달빛 비춰 우리들을 축복해 주리 모두들 소근댄다 뜨거운 사랑을.." 이리 불러도 되겠어요 ' 갈대숲사이로 오라 고운 내님아~~
한강에서 강자갈을 보니 옛 한강의 모습이 뭉클 그립습니다. 하얀 백사장에 조개 성글고 새끼자라 어슬렁대던 곳 동글거나 삐뚤빼뚤 색색의 몽돌자갈 자지러지던 내 어릴 적 한강 그 한강을 부족하나마 여기서 보는 듯합니다. 바람이 어찌나 부는지 파도 좀 보세요. 무슨 해변 같지요?
강 바로 건너 남양주 수석마을이란 향토음식문화촌이 보입니다.
또한 이 마을에는 수석동토성말고도 이따금 문화유적답사의 발길을 끌어당기는 공간도 있지요. 조선 초 태종 때에 장원급제하여 대마도정벌 당시 병조판서를 지낸 조말생(趙末生·1370~1447)의 묘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는 어느 인기사극에서 사사건건 세종대왕에게 맞서 대립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원래 그의 묘지는 양주땅 금곡에 있었으나 대한제국 시절 청량리에 있던 명성황후의 홍릉을 새로 천장하는 자리를 물색하던 과정에서 그의 묘 부근 땅이 후보지로 지목되어 1900년 9월에 지금의 수석동(강 건너 마을이 있는 산)자리로 옮겨졌습니다. 그리고 그의 묘역 앞에 있던 신도비(神道碑)는 좀 더 세월이 흐른 1938년 5월에야 그 뒤를 따라 수석동으로 옮겨졌습니다.
이런저런 생각과 주변의 갈대와 강물의 자갈들에 젖어들다 보니 시간은 5시가 가깝고 목적지는 멀고먼데 햇볕은 온기가 가시고 바람은 더욱 차갑고 억세게 불어 오늘은 여기서 회귀하기로 했습니다.
'고덕수변생태복원지'라는 곳입니다. 한강 언저리에 콘크리트를 설치해 모래사장이나 몽돌자갈이 없는 강가, 참으로 흉물스럽고 자연스럽지 못하고 정서적 감미로움을 볼 수 없는 현실에 이 얼마나 반갑고 좋은 일이겠어요. 하지만 자연그대로의 강가가 없는데 어떻게 복원해서 얼마나 기쁨을 주는지..
그럴듯한 오솔길이 마음을 끕니다.
쑥이 요렇게 반깁니다. 저는 씁싸레한 맛과 쑥의 향기를 참 좋아합니다. 쑥으로서는 달갑지 않은 사람이겠지만, 너로 만든 떡이 먹고 싶다. "쑥떡쑥떡" 공론이 아니고 쑥떡이 먹고 싶어 하는 소립니다.
아까는 내림길이라 그냥 지나친 곳인데, 바람을 안고 언덕을 오르자니 너무 힘이 듭니다. 이 정수장은 올림픽대로 옆 중부고속도로 진입로 전에 오르는 작은 산 정상에 위치해 있습니다.
정수장 옆에 있는 표석인데요 옆에 巖寺란 백제 때 절이 있던 곳인가 봅니다.
백제 불교의 효시인 백중사가 있던 자리이며, 정자를 마주하여 한강의 아름다움을 느낄수 있는 곳으로, 강동구 암사동 산 1-1번지에 위치한 '암사아리수정수장' 옆 봉우리 위 절터에 있는 암자로 龜巖亭인데요. 본래 조선 중기 현종8년(1667)에 廣州士林이 건립하여 숙종(1695년)에 사액을 받아 賜額書院이 된 구천 면 최초의 사원인 龜岩書院이 있던 곳입니다. 이 지역의 유생들은 여기에서 유교적인 학식과 교양을 쌓아 과거에 응시하여 관료로 입신 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배출된 구천면 유생들은 둔촌 이 집(李集 )을 향사하고, 이집(1314~1387)·이양중·어윤 겸(1559~1625) · 임숙영(1576~1623) · 정선근(?~1504) 등이 배향되었으며 노론의 색목이 강하였습니다. 유생들은 구암서원 건립을 중심으로 하여 향약을 조직, 유교적 마을 공동체를 조직하였습니다. 하지만 구암서원은 1871년 고종 때 전국의 서원철폐와 함께 사라지고, 1898년 이를 기념하기 위한 유허비가 남아 있을 뿐입니다. 원래 구암서원은 삼국시대 바위절터 위에 조성된 것이며, 오늘날 구암정을 건립하여 이를 기념하고 있습니다.
이제 다시 천호동 한강둔치입니다.
광진교에서 내려갔던 부교 반대 맞은편에 있는 부교입니다. 올라올 때는 이리로 올라왔습니다. 오르기가 좀 더 수월할까 싶어서.. 힘들기는 마찬가지네요.
저녁이 되니 날씨는 더욱 춥고 바람은 구름을 몰아오고...
'검은 구름 하늘 가리고 이별의 날은 왔도다 다시 만날 날 기약하고 서로 작별하여 돌아가리 Aloha‘oe ~ Aloha‘oe ~ 다시 만날 때까지...
희망의 패달을 힘차게 밟자 세월이 더 깊어지고 인생이 더 저물기 전에..
고맙습니다.
2010년 3월21일. 광나루에서, - 鄕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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