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통 속이 빈 오리모양의 토기는 이미 원삼국기 후반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하다가 신라문화의 영향을 받았던 달성 . 안동 . 창녕 등 낙동강 동안지역에서 주로 발전하였으며, 원삼국기의 토기에 비해 크기가 작아지지만 날개깃을 그리거나 귀걸이 모양의 달개가 붙는 등 보다 장식성이 강해집니다. 기본적인 형태는 굽다리 위에 오리를 올려 놓은 모습으로 몸통 속이 비었으며, 등 위에 잔의 아가리 모양을 붙이거나 꼬리 쪽에 구멍을 내는 그릇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오리모양의 토기는 일상용기라기보다는 오리모양의 형태 그 그 자체에 원래의 제작목적이 드러나는 것으로 물과 관계되는 儀式行事와 관련이 있는 것 같으며 「三國志」魏書 東夷傳에 의하면 낙동강지방에서는 靈魂이 昇天하도록 인도하는 안내자의 구실로 새뼈나 새깃을 무덤안에 넣었다 전해지며, 이는 고대사회에서 새에 대한 信仰의 존재를 말해 줍니다.
또한 토기나 金屬製의 그릇뚜껑에 새를 손잡이로 표현한 것과 武寧王陵의 두침에 봉황의 머리를 조각해 붙인 것도 비슷한 의미였다고 생각됩니다.
오리모양토기(鴨形土器)
新羅 5世紀/출토지모름/길이(오른쪽)21.3cm/湖林博物館所藏
닭모양토기(鷄形土器)
新羅 5世紀/釜山 福泉洞86號墳/높이23.7cm/釜山市立博物館所藏
오리모양토기(鴨形土器)
新羅 5世紀/출토지모름/높이21.2cm/湖林博物館所藏
오리모양토기(鴨形土器)
新羅 5世紀/출토지모름/높이19.2cm/湖巖美術館所藏
오리모양토기(鴨形土器)
新羅 5世紀/출토지모름/높이(왼쪽)19.7cm/湖巖美術館所藏
오리모양토기(鴨形土器)
新羅 6世紀/김천 삼성동/높이(오른쪽)14.5cm/國立慶州博物館所藏
오리모양토기(鴨形土器)
新羅 5世紀/출토지모름/높이(왼쪽)19.5cm/湖巖美術館所藏
오리모양토기(鴨形土器)
新羅 5世紀/출토지모름/높이10.4cm/國立慶州博物館所藏
참고자료 : 한국 고대의 토기(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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