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불회탱은 藥師佛 . 阿彌陀佛 . 釋迦佛 . 彌勒佛 -오른쪽(向右)상단 부터 시계 반대 방향- 등 4불(四佛)각각의 법회 장면을 한 화면에 압축하여 그린 독특한 형식의 불화입니다. 이와 같은 四佛의 구성은 경전에 의거하기 보다는 6 -8세기에 유행했던 (四方四佛 동방 약사불. 서방 아미타불. 남방 석가불. 북방 미륵불" 신앙의 기반을 둔 것으로써 당시 왕실과 관련된 불교 신앙의 일면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즉 죽은자 의 명복을 기원하는 천도(薦度)와 현세의 안녕을 희구하는 기복(祈福)신앙으로 대별할 수 있는데, 4불 신앙은 그러한 두 가지 면을 충족시켜 줄 수 있음은 물론이요 억불(抑佛)시대 속에서 문정왕후(文定王后)비호로 일시나마 안정을 찾을 수 있었던, 불교의 부흥이 지속되기를 염원했던 보우(普雨)대사의 간절한 기원까지도 담아 낼 수 있었습니다. 그 예는 4불탱을 1565년(明宗20년) 陽州 檜岩寺 重修에 즈음하여 각각 金畵로 50탱, 彩畵로 50탱 등 400탱을 제작하여 전국의 사찰에 유포한 사실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은 풍산정(豊山正)이종린(李宗麟1536-1611)의 발원으로 1560년에 죽은 知中樞府事 권찬權纘 등의 명복을 빌기 위해 조성된 것입니다. 풍산정은 中宗과 숙원이씨淑媛李氏 사이의 아들(王子)인 덕양군德陽君의 長子로서 덕양군의 장인이자 자신의 외조부인 권찬이 죽자 그의 외손으로서 상주(喪主) 복상(服喪)을 하였습니다. 이 그림을 제작하면서 기록한 천도할 영가(靈駕)의 목록에는 권찬을 비롯하여 숙운이씨, 풍산정의 처가인 목사牧使 박간朴諫 부부와 딸인 억춘(億春), 그리고 이씨(男) 등이 올라있고, 현세의 보체(保體)를 위한 명단에는 권찬의 부인으로 생각되는 정경부인(貞敬夫人)윤씨(尹氏),덕양군 부부, 당시 참의였던 성순(成詢)부부, 역시 풍산군의 처가라고여겨지는 어린 주인 박씨 유사(有司)이백춘(李伯春), 이경춘(李敬春),이연춘(李連春) 등이드재되어 있습니다. 명단에 보이는 바와 같이 풍산정은 1562년 당시 상중이었으며 또 잇따른 주변 사람들의 죽음 앞에서 깊은 슬픔을 겪었으며, 어쩌면 그와 같은 사건들이 그에게는 인생의 큰 시련일 수도 있었으며, 그 시련을 佛力으로 위로 받고자 이 그림을 조성하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풍산정 이종린과 덕양군 부부, 정경부인 윤씨 등은 이 그림과 더불어 서방아미타탱(西方阿彌陀幀).중단탱(中壇幀)도 함께 제작하여 권찬의 고향인 경북 함창(咸昌)의 上元寺에 봉안하였습니다.
사불회탱(정)(四佛會幀)
조선1562년/90.5cm×74cm絹本彩色/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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