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朝鮮時代)/조선 회화(繪畵)

창강 조속 필 금궤도 (滄江趙涑筆金櫃圖)

鄕香 2009. 3. 24. 20:11

 

滄江 趙涑은 文藝에 뛰어난 천품(天稟)을 지닌 그는 서화의 기량에 있어서도 文氣 짙은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梅, 竹, 翎毛, 折枝, 山水畵에 걸쳐 畵才가 비범하였는데 그중에서도 영모에 뛰어난 솜씨를 보였습니다. 그는 부귀나 명예를 달갑게 여기지 않은 탓으로 서화에 낙관(落款)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의 유작품을 보아도 낙관(朱文方印)이 되어 있는 것을 좀처럼 찾기 어렵습니다. 영모도에 있어서 까치 그림은 趙滄江을 따를 사람이 없을 만큼 그 솜씨가 놀라우며 墨梅圖에 있어서는 필치가 '國朝第一'로 알려진 魚夢龍(雲谷 1566~?)의 필법과 방불합니다. 近齋 朴胤源은 그의 「滄江鏡銘」에서 기술하기를 " 내 들으니 창강翁의 글씨나 그림이 다 묘한 경지에 도달함으로써 사람들이 서로 다투어 寸幅 雙字 만이라도 千金과 같이 여긴다고 한다. 과연 글씨는 心畵이어니와 그림 역시 神意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현존하는 유작들 중에는 공필풍(工筆風)의 〈금궤도 金櫃圖〉(국립중앙박물관)와 남종화풍이 깃들어 있는 〈호촌연의도 湖村煙疑圖〉(간송미술관) 등도 있지만, 그보다 한국적 정취가 물씬 풍기는 까치와 물새를 소재로 한 수묵화조화와 묵매 등에서 격조높은 개성을 발휘했습니다. 성글고 까칠한 붓질과 야취(野趣) 어린 분위기를 특징으로 하는 화조화풍은 아들인 지운(之耘)을 비롯하여 전충효(全忠孝)·이함(李涵) 등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대표작으로 〈노수서작도 老樹棲鵲圖〉(국립중앙박물관)·〈매작도 梅鵲圖〉(간송미술관) 등이 있으며,  이조참판에 추증되었습니다.

 

이〈금궤도 金櫃圖〉는 (경주 김씨의 시조 김알지(金閼智)가 태어났다는 전설을 그린 그림으로 생각됩니다. 신라 탈해왕(脫解王) 때 호공(瓠公)이 이 숲에서 닭이 우는 소리를 들었는데, 가까이 가 보니 나뭇가지에 금으로 된 함(金櫃)이 빛을 내며 걸려 있었답니다. 이 사실을 임금께 아뢰어 왕이 몸소 숲에 가서 금궤를 내려서 뚜껑을 열자 궤 속에서 사내아이가 나왔다 하여 성(姓)을 김(金), 이름을 알지라 하고, 본래 시림(始林), 구림(鳩林)이라 하던 그 숲을 계림(鷄林)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조속<趙涑 1595(宣祖28年)~1668(顯宗9年)>의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희온(希溫), 호는 창강(滄江)·창추(滄醜)·취추(醉醜)·취옹(醉翁). 아버지는 병조참판 수륜(守倫)입니다. 음보(蔭補)로 등용되어 1627년(인조 5) 덕산현감을 거쳐 장령·진선을 역임하고 상의원정(尙衣院正)에 이르렀고, 1623년 인조반정에 가담하여 공을 세웠으나 훈명(勳名)을 사양함으로써 청표탁행(淸標卓行)으로 후세에 추앙을 받기도 했습니다. 시·서·화에 모두 뛰어나 삼절(三絶)로 일컬어졌으며, 우리나라 역대 명필들의 금석문을 수집하여 이 방면의 선구적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림에서는 묵매·영모(翎毛)·산수에 능했는데 특히 금강산과 오대산을 비롯한 명승을 두루 다니며 사생했다고 전합니다.

 

창강 조속 필 금궤도 (滄江趙涑筆金櫃圖)

조선시대(1655년作) / 비단에 채색(絹本彩色)  / 국립중앙박물관 所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