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朝鮮時代)/조선 회화(繪畵)

소치 허련 필 괴석도(小痴許鍊筆怪石圖)

鄕香 2009. 3. 24. 21:58

 


원래는 화첩 중의 한 면이었다고 생각되는데 좌반부에는김정희 서체의 영향을 받은 필치로 "일권잉벽영몽몽 동해하인납수중 화석여운재착지 편위운거역령롱(一拳孕碧影濛濛 東海何人納袖中 畵石如雲着紙 便爲雲去亦玲瓏)"의題詩를 썼습니다. 괴석은 조선전기부터 사군자나 산수화에 보조적으로 나오다가 18세기의 최북(崔北1712 - 1786경).임희지(林熙之 1765 -?) 등에 의해서 점차 회화의 중심소재로 등장하게 됩니다. 우반부에는 먹만으로 한 덩어리의 괴석을 그렸는데 갈필(渴筆)로 거칠고 단단한 질감을 그려 내어 돌 자체의 상징성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조선후기 이래 신위(1769 - 1845)등이 화보식(畵譜式)의 돌을 간혹 그렸는데 이 작품은 화보식에서 벗어나 돌의 괴량감과 질감을 잘 살렸습니다.


 

 

 

허련필괴석도(許鍊筆怪石圖)  조선19세기/32.5×22.5cm紙本淡彩/국립중앙박물관

 

허련(許鍊1809 - 1892 )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마힐(摩詰), 호는 소치(小痴). 관지(款識)에는 수치(叟痴), 노치(老癡), 칠십노치(七十老癡), 팔질노치(八耋老癡), 석치(石癡), 연옹(蓮翁) 등을 사용했다. 중국 나라 남종화와 수묵산수화(水墨山水畵)의 효시인 왕유(王維)의 이름을 따라서 ‘허유(許維)’로 개명(改名)하였다. 마힐왕유의 자를 따른 것이다.
허균(許筠)의 후예 가운데 진도에 정착한 허대(許垈1568-1662)의 후손이다. 아버지 허각(許珏)과 어머니 경주 김씨 사이에서 3남 2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인 완산 이씨와의 사이에 4남을 두었다. 큰아들 허은(許溵)에게 화업을 물려주려 하였으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큰아들을 잃은 후 뒤늦게 4남 허형(許瀅)의 재능을 발견하여 화필을 전수하였다.

어려서 해남의 윤선도(尹善道) 고택에서 윤두서(尹斗緖)의 작품을 방작(倣作)하면서 전통화풍을 익혔다. 1839년 대흥사 초의선사(草衣禪師)의 소개로 김정희 문하에서 본격적으로 그림수업을 받게 되었다. 이로 인해 서권기(書卷氣)와 문기(文氣)의 높은 화격(畵格)을 터득하게 되었으며, 김정희로부터 "소치 그림이 나보다 낫다"라는 칭찬을 받았다. 그가 지향했던 회화세계가 사의(寫意)의 표출에 중점을 둔 남종문인화였음은 원말4대가(元末四大家) 중의 한 사람인 황공망(黃公望)의 호인 대치(大癡)를 따라 자신의 호를 '소치'라 한 것과, 중국 남종화의 시조인 왕유(王維)의 자를 본떠 이름을 '유'(維)라고 고친 것에서도 단적으로 알 수 있다. 그는 산수·모란·사군자·괴석·연꽃·노송·파초 등 다방면의 소재를 능숙하고도 대담한 농묵(濃墨)을 구사하여 표현했는데 특히 산수화에 뛰어났다. 그의 산수화는 김정희로부터 배운 중국 북송의 미불(米芾), 원말의 황공망과 예찬(倪瓚), 청나라 석도(石濤) 등의 화풍과 남종문인화의 정신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회화세계를 이룩했다. 특히 시·서·화가 조화된 화면 구성이라든지 피마준(披麻皴)을 사용하면서도 중간중간에 가한 거칠면서도 짧은 터치는 그의 개성을 보여준다. 김정희는 이러한 그의 그림에 대해 "화법이 심히 아름다우며, 우리 고유의 습성을 타파하여 압록강 이동(以東)에 그를 따를 자가 없다"라고 칭찬했다. 그는 신관호(申觀浩)·정학연(丁學淵)·민승호(閔升鎬)·김흥근(金興根)·정원용(鄭元容)·이하응(李昰應)·민영익(閔泳翊) 등과 같은 명사들과 폭넓은 교유를 가졌으며, 1846년 권돈인(權敦仁)의 집에 머물면서 헌종에게 그림을 바친 것이 계기가 되어 궁궐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1848년 헌종의 배려로 고부감시(古阜監試)를 거쳐 친임회시 무과에 급제해 벼슬이 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김정희가 죽은 1856년 고향 진도에 운림산방(雲林山房)을 짓고 은거하면서 그림에 몰두했으며, 1867년에는 〈소치실록 小癡實錄〉을 저술했다. 그의 화풍은 아들인 미산(米山) 허형(許瀅)과 손자인 남농(南農) 허건(許楗), 방계인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 등으로 계승되어 호남지방의 서화전통을 이루었다. 그의 유작으로는 〈산수도첩 山水圖帖〉·〈방예찬죽수계정도 倣倪瓚竹樹溪亭圖〉·〈방석도산수도 倣石濤山水圖〉·〈선면산수도 扇面山水圖〉·〈누각산수도 樓閣山水圖〉·〈김정희초상〉 등이 전한다.   <자료 : 인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