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귀를 잘라버린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인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는 어린 학생들도 잘 알지요.
그러나 그 보다 약 백 몇십년 앞선 시대에 스스로 눈을 찔러버린 우리나라의 화가 최 북을 아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최 북(18세기)은 조선조 영조 때의 화가로 산수를 잘 그렸다고 하여 최산수(崔山水)라고 불리었고 호는 붓 한 자루에만 의지해 먹고살겠다는 호생관(毫生館)입니다. 그는 이름인 북(北)자를 둘로 쪼개 칠칠(七七)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칠칠이는 잘 아시듯이 못난이, 바보를 일컫는 속어입니다. 그는 아무 곳에도 매인 데가 없는 자유인이었지요.
그림은 자기가 그리고 싶을 때만 그리고, 그려주고 싶은 사람에게만 그려주었습니다.
그림을 그려준 사람이 맘에 안 들어 하거나 요구사항이 계속되면 받은 돈을 도로 돌려주고 그림을 그 자리에서 찢어 버리기 일쑤였답니다. 그의 작품이 지금 별로 남아 있지 않은 것은 이러한 연유가 아닐런지요. 화가에게 눈은 목숨과 같이 귀중한 것일 진데,
그는 스스로 눈을 찔러가면서도 기성의 권위와 강요에 굴하지 않는 기질을 보여주었습니다.
고흐가 자기 내면의 감정으로 귀를 잘랐다면 최 북이 눈을 찌른 것은 외적 권위와 강요에 대한 대항이었고 기개였습니다.
어느 날 탐탐치 않은 양반이 그림을 그려달라고 찾아와 그의 솜씨를 트집을 잡자 화가 난 최북은 급기야 자기 손으로 한쪽 눈을 찔러버렸습니다. 애꾸가 된 최북은 그 후로 전국을 유랑하며 그림을 팔아 얻은 동전 몇 닢으로 자신을 천대하는 세상을 원망하며 술에 취해 지냈습니다. 결국 어느 추운날 그림 한 점을 팔고는 한밤중 술에 취해 돌아오는 길에 성곽 모퉁이에 쓰러져 얼어 죽었습니다.
‘풍설야귀인도(風雪夜歸無人圖)’는 그의 삶을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눈보라 치는 겨울 밤, 허술한 초가 싸리문 앞에서 개 짖는 소리 요란한데 거칠게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헤치고
毅然히 걸어가는 나그네의 모습에서 최북의 거침없는 성격과 그의 고달픈 인생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은 ‘지두화(指頭畵)’로 알려져 있습니다.
붓 대신에 손가락에 먹물을 묻혀서 그린 그림으로 그의 손놀림에 불 같은 성격과 광기가 더해져 있습니다.
예술가는 당당한 자유인이어야 한다는 것을 그는 행동으로 보여준 진정한 기인 이었습니다.
아래 작품 ‘풍설야귀인도(風雪夜歸無人圖)’는 중국 당나라 사람 逢雲宿芙蓉山主人 봉설숙부용산주인 劉長卿(유장경)의 詩에
근원을 둔 작품입니다.
"日暮蒼山遠 일모창산원 해 저물고 푸른 산은 아득하니
天寒白屋貧 천한백옥빈 날은 찬데 초가집 한채 궁색하구나
柴門聞犬吠 자문문견폐 자문(싸리문) 안 개 짖는 소리 들리니
風雪夜歸人 풍설야귀인 바람불고 눈오는 이 밤 그 누가 돌아오는고"
唐詩 (중국 당대(唐代:618~907)에 지어진 시의 총칭. 단 오대(五代)의 작품도 포함됩니다.)의 발전단계는 초당(初唐 618~712))·
성당(盛唐713~765)·중당(中唐766~835)·만당(晩唐836~907)의 4시기로 구분됩니다.
逢雲宿芙蓉山主人 봉설숙부용산주인 劉長卿(유장경) 당나라 사람으로 중당시에 이름을 날린 사람입니다.
최북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 성기(聖器)·유용(有用)·칠칠(七七)이. 호 성재(星齋)·기암(箕庵)·거기재(居其齋)·삼기재(三奇齋)·
호생관(毫生館). 초명 식(植)입니다. 호생관이라는 호는 붓(毫)으로 먹고 사는(生) 사람이라는 뜻이고,
칠칠이라는 자는 이름의 북(北)자를 둘로 나누어 스스로 지은 것입니다.
메추라기를 잘 그려 최메추라기라고도 하였으며, 산수화에 뛰어나 최산수(崔山水)로도 불렸지요.
김홍도·이인문·김득신(金得臣) 등과 교유하였으며, 스스로 눈을 찔러 한 눈이 멀어서 항상 반안경을 쓰고 그림을 그렸으며
술을 즐겼고 그림을 팔아 가며 전국을 주유하였다 합니다.
주유 중 금강산 구룡연(九龍淵)에 투신했으나 미수에 그친 적도 있습니다.
시에도 뛰어났으며 작품에 《수각산수도(水閣山水圖)》 《한강조어도(寒江釣魚圖)》 《풍설야귀도(風雪夜歸圖)》 《추경산수도(秋景山水圖)》 등이 있습니다.
풍설야귀인도(風雪夜歸人圖)
조선시대(18세기) / 水墨淡彩66.3×42.9cm / 澗松美術館 所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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