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朝鮮時代)/조선 회화(繪畵)

우봉 조희룡 필 묵죽도(又峰趙熙龍筆墨竹圖)

鄕香 2007. 9. 6. 15:02

 

조희룡(趙熙龍, 1789-1866)의 본관은 평양(平壤), 자는 치운(致雲), 호는 우봉(又峰)∙석감(石墾)∙철적(鐵笛)∙호산(壺山)∙단로(丹老) 또는 매수(梅叟)입니다. 중인출신으로 오위장(五衛將)을 지냈고, 시∙글씨∙그림에 모두 뛰어난 재주를 보였는데 글씨는 추사체(秋史體)를 본받았고, 그림은 난초와 매화를 특히 많이 그렸답니다. 1846년(헌종 12) 헌종의 명으로 금강산을 탐승하고 시를 지어 바쳤으며, 1848년에는 궁궐편액의 글씨를 쓰라는 명을 받았고, 1851년(철종 2)김정희(金正喜) 일당으로 지목되어 추자도로 유배되었습니다. 20대에는 이학전(李鶴田)·이재관(李在寬) 등과 교유했으며, 1847년에는 유최진(柳最鎭)·전기(田琦) 등과 벽오사(碧梧社)를 결성하고 김정희파의 여항문인 서화가들과 시·서·화를 통해 교유했습니다. 김정희의 문하에서 학문과 서화를 배우고 19세기 중엽 화단에서 중추적 구실을 했으며, 고서화와 함께 골동품을 좋아했고 중국과 우리나라 회화사에 관심이 많았으며, 청나라 화적을 직접 소장하고 비평을 하는 등 그림에 대한 인식의 폭이 넓었습니다. 화론에서는 수예(手藝)를 강조하고 재능을 중시하여 서화가에게는 학식뿐만 아니라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손의 재주, 즉 기량이 있어야 된다고 주장하엿습니다. 산수와 함께 사군자를 특히 잘 그렸으며, 김정희가 강조했던 간일한 남종문인화풍에 토대를 두되 다양한 구도와 담채의 대범한 구사, 필치의 자유로운 운영, 새로운 기법을 시도하는 실험의식, 거리낌없는 표현력을 통해 자신의 독자적인 화풍을 이룩했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매화서옥도 梅花書屋圖〉(간송미술관) 등이 있다. 저서로는 중인전기집인 〈호산외사 壺山外史〉, 귀양시의 기록인 〈해외난묵 海外蘭墨〉, 회고록인 〈석우망년록 石友忘年錄〉 등이 있습니다.

 

                     

 

 

 

                    

 

                   

 

 

                  

 

우봉 조희룡 필 묵죽도(又峰趙熙龍筆墨竹圖)

朝鮮時代 / 趙熙龍(1797~1859) / 色紙水墨 (各) 127×44.5cm / 國立中央博物館所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