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의 풍속화는 일상적인 서민 생활의 단면을 흥미롭고 실감나게 표현하여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이런 풍속화를 당대에는 보통 '속화(俗畵)'라고 불렀습니다. 속화란 세속의 모습을 세속의 취향에 맞추어 그린 그림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丹邱'라는 관서 아래 백문방인 '金弘道印'과 주문방인 '士能'을 찍었습니다.
무거운 봇짐을 지고 성벽 밑을 지나가는 두사내을 묘사한 그림입니다. 두 사람 모두 행전을 쳤는데 한 사람은 패랭이를 썼고, 한 사람은 댕기머리이지만, 얼굴은 나이 들어 보이니, 나이가 차고 넘도록 장가들지 못한 처지가 미루어 짐작됩니다. 등에는 각기 무거운 등짐를 하나씩 지었으나 상인의 행색은 아닌 것 같고 대갓집 하인으로 보입니다. 이른 아침의 점경인지 상하 좌우를 뿌옇게 여백처리하여 눈맛이 시원하면서도 주제는 퍼득 살아납니다.
이 작품은 단원이 만년에 이룩한 시정 넘치는 풍속화의 경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물의 배경으로는 비스듬히 서있는 성곽의 일부만을 묘사하고 나머지는 과감히 생략하였지만, 공간포치가 뛰어나 전체의 구성이 매우 짜임새가 있습니다. 화면 왼쪽 위에 쓰여진 "단구(丹丘)"는 김홍도가 만년에 단원(檀園)과 함께 즐겨 사용한 별호(別號)입니다.
김홍도(1745~1816 이후)의 자는 사능士能, 호는 단원檀圓.단구丹邱.서호西湖고면거사高眠居士.첩취웅輒醉翁 등이며, 김해인(金海人)입니다. 화원으로 1781년에 어진화사御眞畵師로 정조의 초상을 제작하는데 참여 하여 그 공으로 연풍현감延豊縣監을 지냈는데, 용모가 아름답고 성격이 대범하여 신선같아 보였다고 하나 연풍현감 시절 선정을 베풀지 못하여 백성의 원성이 잦았으며, 그로 인해 삭탈관직되었습니다.
성하부전도(城下負錢圖)
朝鮮時代 / 金弘道(1745~1806) /紙本水墨淡彩27.0×38.5cm /湖巖美術館 所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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