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뿌리 廣平大君

나의 崇祖 쉬시는 곳

鄕香 2006. 6. 17. 00:14

 광평대군묘역 일원 廣平大君墓域 一圓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8호)

 

광평대군묘역에는 세종임금님의 다섯째 왕자이신 광평대군과 부인 영가부부인(永嘉府夫人) 신씨(申氏)의 묘를 비롯하여 무안대군(撫安大君) 방번(芳蕃),(1381~1398.조선 태조의 일곱째 아들. 어머니는 신덕왕후神德王后 강씨康氏) 그리고 광평대군의 아들인 영순군(永順君)을 비롯한 종문 700여기의 묘소가 군집하여 있다. 또한 이곳은 종가와 재실(齋室)등 오랜 가옥이 있는 문중의 묘역으로 궁말(宮村)이라 불리기도 한다. 

 

 

 

'궁촌별묘'란 현판이 보이는데,

이로인해 궁말(궁마을) 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광평대군의 내력과 묘역 안내문

 

 

정문 옆에 있는 안내도  

 

 

'궁촌별묘'의 건물이 고즈너기 보인다.

 

 

 

 

 

이른 아침 종친들이 재실(崇慕齋)에 모여 祭禮를 올리고 있다.

 

 

 

 

숭모재 재실 (崇慕齋 齋室)

 

 

 

 영순군의 큰 아드님 남천군의 신도비이다. 옛 비는 유실되어 근래에 새로 세웠다.

 

 

 祠堂(동편)  뒤로 보이는 건물은 都廳이라 불리는 건물이다.

 

 

 

 〈도청〉 이 건물 뒤로 광평대군 묘가 보인다.

都廳은 祭閣이다.

 

 

 

 세장기비(世葬記碑)

대군의 묘 아래에 있는 제각(祭室)의 동쪽에는 '廣州治西光秀山李氏世葬記(광주치서광수산이씨세장기)'란 이름의 세장기비(世葬記碑)가 있다. 이는 숙종 21년(1695)에 平壤府尹, 兵曹判書, 領議政에 이르기까지 두루 중요 관직을 지낸 十㔺 후손 이유(李濡)가 186기 무덤의 위치를 조사한 내용을 짓고, 이담(李湛)이 쓴 것을 비석에 새긴 것으로 가족 묘소로서의 오래 家歷과 광대한 면모를 알려주는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이 묘역은 서울이나 근교에 현존하는 왕손의 묘역 중 가장 원형에 가까운 것이며, 분묘와 비석,
그리고 부속물들은 조선시대 분묘 내지 석비 등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학술적 가치가 있다. 오랜 세월에 풍화가 심해 드문드문 글씨가 산화되고 돌무늬가 창연하다. 보존에 관한 대책이 시급하다.

 

 

 

 

祠堂의 전경이다. 그윽하고 창연한 곳에 건너편 아파트 건물이 이질감을 준다.

 

 

 

西쪽에서 본 廣平大君 과 永嘉府夫人 묘가 쌍분을 이루고 있다.

 

 

英順君의 墓이다. 

광평대군묘 우측 작은 산줄기에 위치해 있다.

정면에 정1품과 재상을 지낸 이들만 쓸 수 있는 장명등이 있고,

양옆에는 문인석이 있으며,

그 壇아래 좌측에 신도비가 있다.

 

 

 

금천에서 바라본 무안대군 묘로 가는 길이 단정하게 가꾸어져 있고 소나무들이 푸른데 낙엽이 운치를 더한다. 

우측은 영순군 묘로 가는 방향이다. 

 

 

廣平大君 墓 

 

 

永嘉府夫人  申氏의 묘 

 

 

 

  광평대군의 신도비

비 바람 긴 세월에 글씨가 잘 안 보인다.

謀碑로 대처하고 달리 보존해야 할 것이다.

 

 

 

광평대군과 府부인 신씨, 두 분 墓의 정경이다. 

묘소는 높은 언덕 위에 각각의 봉분으로 되어 있다.

前面에 紋樣이 새겨진 장대석으로 단을 쌓은 위에 봉분이 있고, 그 아래 상단에 表碑와 낮은 받침돌을 둔 혼유석(魂遊石)이 갖춰져 있다.

中段에는 2기의 장명등(長明燈)과 우측에 신도비(神道碑)가 자리하고,

그리고 下段 좌우에 문인석(文人石) 2구가 세워져 있다.

 

 

 

광평대군 묘에서 우측(西)으로 보이는 곳으로 무안대군 묘가 있다. 

 

 

 

 도청(都廳)이란 祭室 뒤에서 바라 본 정경으로 그 앞에 담장 안에 정묘(正廟)가 위치하고 내삼문(內三門)이 있고 그 바깥에 외삼문 (宮村別廟)이 보인다.

 

 

 

도청(都廳)은 정월과 추석에 祭禮를 올리는 祭室이다.

 

 

 

도청 앞의 천심수 천심수는 융취수라고도 하며 물이 샘솟거나 흘러 들어와 내(內) 명당 안이나 안산 내(川)에서 연못을 이루는 물로 부귀공명의 상징이다. '도청' 앞의 천심융취수는 대군묘 앞에서 샘(泉)솟는 청정수로 예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흐르고 있다. 올해는 유지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다.

 

 

 

 

祠堂으로 正廟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건물이다.

사당은 삼선조(三先祖 : 무안대군, 광평대군, 영순군)의 위패(神主)을 모셔 놓은 곳이다. 

 

 

 

 

담장을 두른 사당정문인 內三門이다. 

 

 

무안대군 및 청안군 묘역으로 가는 길이다.

 

 

 

 

나른한 겨울 빛살에 고즈넉한 옛 묘역이 따사롭게 느껴지건만

하얀 가등과 외투를 입은 宗親의 모습이 이채롭다.  

 

 

 

宗會堂

문중의 일을 종친들이 모여 논의하고 결정하는곳이다.

 

 

 

감나무의 감이 참 탐스럽다. 감과 돌담장이 잘 어우러져 보기에 좋다. 

 

 

 

묘역 내 한견에 있는 宗家

代代로 종손이 살았으며 지금도(現 宗孫 李揆明, 나와 이름도 나이도 같다.) 살고 있다.

 

 

 

사랑채 누마루가 고풍스럽고 팔작지붕이 날아갈듯 아름답다

그러나 향나무나 소담한 나무들을 둥글게 다듬은 조경은 왜색이어서

우리 전통적인 한옥에 조화를 이루지 못하여 자연스러움이 없고 아늑함이 없다.

왕실의 후손으로서 조상님께 부끄럽고 아쉬움 없다 할 수 없다. 

- 仁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