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희동은 郡守를 지낸 고영철(高永喆)의 셋째 아들로 서울에서1886년(高宗23年)에 태어나 1965년 80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호는 春谷, 서당에서 한문을 익혔으며 아버지의 부임지를 따라 경상도 봉화, 함경도 고원 등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13세에 서울로 올라와 한성법어학교에서 4년 동안 프랑스어와 근대학문을 배웠습니다. 프랑스어를 가르쳤던 레미옹 선생이 초상화를 그리는 것을 보고 처음으로 서양미술을 접하게 되었는데, 한국에 서양화를 선보인 최초의 작가인 네덜란드 출신 미국인 허버트 보스 다음으로 1900년 정부의 초청으로 온 작가가 프랑스인 레미옹이었습니다. 그는 원래 공예미술학교를 설립할 목적으로 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4년간 프랑스어와 서양미술을 보급했습니다.
고희동은 처음부터 서양화에 뜻을 두지는 않았습니다. 15세에 결혼한 그는 아버지의 권고로 1904년 궁내부(宮內部) 광학국(礦學局) 주사(主事)로 일했으며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 때 관직을 사임하고 안중식(安中植:1861~1919)의 문하로 들어가 전통적인 동양화를 공부했습니다. 안중식은 조석진(趙錫晉:1853~1920)과 더불어 고종의 초상화를 그렸던 어진화가(御眞畵家)로서 많은 후진들을 양성하여 근대한국화를 개척했던 인물들니다. 그뒤 고희동은 좀더 새로운 서양화 기법을 배울 생각으로 23세 때 혼자 일본에 건너가 한국인 최초로 도쿄 미술학교에 입학하였고, 귀국 후 中央 . 普成 . 徽文 . 中東학교에서 서양화 교사를 담당했으며 1949년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國展 심사위원으로 활약하였습니다.
이 하경산수는 춘곡 고희동(春谷高羲東1886~1965)이 1961년에 그린 만년작품으로 전통적인 南畵山水風을 기조로 한 그림으로 수묵調에다 약간의 淡彩를 가미하였는데 화면 상단의 遠山의 구도와 색채감 그리고 中景과의 공간처리 등이 은연중 서양화의 水彩畵 풍경을 연상시키고 있습니다. 춘곡의 예술은 동양화를 기반으로 하여 서양화의 기법과 視覺을 도입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새로운 회화의 형식을 설정하려는 試圖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전통적인 남화산수의 세계에다 서양화의 색채감이나 明暗法을 구사하는 등 감각적으로 새로운 회화를 시도하려는 그의 노력은 현대 한국미술사에 많은 의미를 남겼습니다.
<하경산수/夏景山水>
韓國 近代 / 春谷 高羲東(1886~1965) 筆 / 紙本 水墨淡彩 68×68cm / 個人所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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