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아름답다. 그냥 보기에 아름다운 것인가요? 꽃이 아름다울 수밖에 없었던 것은 종족보전을 위한 간절한 꾸밈이며 몸짓입니다. 모든 꽃의 예쁨은 새로운 탄생을 위한 전야제와 같은 것이겠지요. 여자가 배란기에 얼굴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것처럼 모든 동물들이 배란이 되면 각기 특유의 냄새를 피워 동종수컷(同種雄)을 부르듯이 꽃도 아름답게 활짝 피어 씨방을 열고 그 향기를 바람에 띄워 벌과 나비를 불러 상생의 법칙으로 도움 받아 수정을 이루어 새 생명이 잉태되는 것이기에 꽃을 여성에 비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꽃은 화려하고 슬기롭게 하늘의 뜻에 부응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수컷이 암컷을 열망하는 것은 자신이 태어난 고향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색깔과 구성으로 언저리를 꾸민 꽃방이 배시시 수줍게 열려가고 있습니다. 얼마나 신비롭고 아름다운 모습인가요!
<百日紅> ↑
九里市 漢江市民公園에서, 2010년 촬영
<花隱影> ↓
신비롭고 심오한 성전(聖筌), 모든 이의 이 고향을 감히 누가 정복했다고 했습니까!
오늘도 수많은 오만(雄根)들이 신성한 궁전(膣)을 침입하여 백전백패의 굴욕을 안고 죽음으로 경배하지 않던가요?
<百日紅> ↓
진분홍 꽃잎(花葉) 정중앙에 자리한 심방(深房)은 금관을 쓰고 존엄과 화려함을 다해 백일간의 성혼잔치를 열었습니다.
이 고혹적 도도한 아름다움을 물려주기 위한 처절한 염원을 진홍빛 열정으로 발산하고 있는 농염한 자태입니다.
<百日紅> ↑
九里市 漢江市民公園에서, 2010년 촬영
< 꽃과 여인>
이 자전거 타는 여인의 그림에서 춘정을 봅니다. 심플하게 묶어 올린머리, 살짝 돌린 우윳빛 목 언저리 귓가의 청순함. 뽀얀 어깨사이 패인 등의 음영, 들어 올린 엉덩이의 볼륨, 몸매의 유연한 곡선 그리고 한 다발의 꽃과 창가 꽃밭의 색색의 꽃, 화려하지만 결코 천박하지 않은 은은함이여.. 여인과 꽃은 어찌 그리 닮았을까! 보노라니 아득한 나락의 꿈속으로 아슴아슴 빨려듭니다.
- 鄕香 -
『 꽃의 화신 최욱경』
한국 현대 추상미술의 대표적 화가 중 한 사람으로 화려한 색채와 분방한 필치로 표현주의적인 추상의 세계를 보여준 최욱경 화백은 1940년 12월 20일 서울 출생, 어려서 그림에 출충한 재능으로 김기창, 김흥수 등 유명 화가들에게서 私師, 1959년 서울예술고등학교를 졸업, 1963년 서울대학교 회화과를 졸업, 미국 크랜브룩 미술아카데미와 부르클린 미술학교 수학 귀국 후 서울 덕성여자대학교 교수로 재임 중 스스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1997년 7월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박물관 일로 갔다가 미술관 학예사의 안내를 받아 전시실을 돌아보다가 위에 전시되어 있던 "열리기 전. 열리기 시작. 만개" 3점의 작품을 보고 큰 놀람과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후 많은 세월이 흐른 뒤 세상을 떠들석하게 오르내린 전.현직 국세청장 사이의 뇌물의혹사건이 세간에 오르내리면서 알려진 그림 "학동 마을"로 인해 자연히 다시 떠올린 작가 《 최욱경》천재는 자의든 타의에 의하든 이리 단명 하는가봅니다.
최욱경(1940-1985)의 초기 작품에 해당하는 1960년대 작품들은 추상표현주의적 경향을 보이는데,
다이내믹한 형태, 강렬한 색채, 속도감 있는 붓놀림을 통한 격정적 화면이 이 시기의 특징입니다.
1960년대 후반에는 콜라주(collage)를 시도하기도 했는데,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캔버스는 형상과 구성의 장소로 변화하였고 색채 실험이 행해지면서 색면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최욱경은 꽃과 같은 여성적인 소재에 관심을 돌려 꽃의 구조적 배열과 질서, 꽃잎의 형태, 강렬한 색상,
그리고 그것들의 미묘한 조화를 자신의 화폭에 담아 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한 일련의 작품들은 죠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의 꽃 그림들을 연상케 합니다
작품명 <열리기 전>
이 작품도 마찬가지로 죠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의 꽃 그림들처럼
여성의 성기를 꽃잎으로 치환하여 나타 낸 에로틱한 느낌을 줍니다.
작품명 <열리기 전> ↑
작가 : 최욱경 / 1978 년 作 / 규격 99x74 / 재료 종이에 색연필 / 국립현대미술관所藏
작품명 <열리기 시작>
이 작품은 최욱경(1940-1985)이 1980년대에 꽃 그림에 관심을 가지면서 제작한 연작 중 하나입니다.
여성작가로서 여성적 소재를 다루는 것에 관심을 갖고 여성을 꽃으로 치환해 제작한 이 작품들은 보는 순간 구연한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작가의 의도를 직시할 수 있을 만큼 뚜렷한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품명 <열리기 시작> ↑
작가 : 최욱경 / 1978 년 作 / 규격 99x74 / 재료 종이에 색필 / 국립현대미술관所藏
작품명 <만 개>
이 작품은 최욱경(1940~1995)이 1980년대에 제작한 여성의 성기를 꽃으로 치환하여 그린 연작 중 하나로 꽃이 봉우리에서 시작하여 활짝(滿開)피는 과정까지의 절정을 표현한 것입니다. 꽃의 구조적 배열과 질서, 꽃잎의 형태, 강렬한 색상을 70년대의 색면 회화와의 연관을 잃지 않으면서 제작하였습니다, 추상적 화면 구성에 있어서도 여성적 소재를 찾으려는 작가의 노력을 엿볼 수 있는데, 이것은 여성주의 미술의 한 경향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꽃의 개화과정을 여성(女姓)에 합리적으로 함축하여 강한 에로티시즘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작품명 <만 개> ↑
작가 : 최욱경 / 제작년도1981 / 규격 99x74 / 재료 종이에 색연필 / 국립현대미술관所藏
작품명 <학동 마을>
불행하게도 고위 공직자들의 뇌물의 일환으로 그(최욱경)분의 작품중 하나인 (학동 마을)이 세상에 부표처럼 떠 오른 것은 유감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청장 간 진실게임이 연일 신문과 뉴스 시간을 시끄럽게 하면서 그들간에 주고 받았다는 "학동 마을"이라는 그림은 누가 그린 것인가 하는 작가와 작품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증폭되면서 자연스레 최욱경 화백의 예술세계가 재조명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 전 해인 1984년 덕성여대 교수 재직 당시 완성한 그림입니다. 타오르는 불꽃처럼 격정적인 밝고 붉은 바탕 화면에 희고 푸른 대기가 너울대는 듯 몽환적 느낌이 감돕니다. 고고한 학이 화염 속으로 비호같이 내리 꽂는 모습에서 작품명에서 암시하듯 작가의 외면과 당시의 내면의 심경을 보는 것 같습니다.
작가 : 최욱경 / (1984년作) 38×45.5cm 갠버스에 아크릴.
《나의 이름은 / 최욱경》
아주 먼 옛날 한 때에 나의 이름은,
마루 위에서 손 그림자와 놀던
겁 많게 '눈 큰 아이'였답니다.
한 때에 나의 이름은 낮설은 얼굴들중에서
말을 잊어버린 '벙어리 아이' 였습니다.
타향에서 이별이 가져다 주는
기약없을 해후의 슬픔을 맛본 채
성난 짐승들의 동물원에서 무지개 꿈 쫒다가
'길 잃은 아이' 였습니다.
결국은 생의 굴레에서
아주 조그만 채
이름 마져 잃어버린 '이름없는 아이' 랍니다.
<그 '최욱경'의 詩集에서, >
『 자화상 · 글(나의 이름은) / 최욱경 作』
<생전의 최욱경 화백>
이상하게도 예술가에게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는 단거리형이고 둘째 중거리 형이고 셋째 장거리형이다. 단거리형이란 20대에 요절하면서 자기의 할 일을 다하고 죽는 사람이다. 흔히 천재라고 부르는 사람이 이 부류에 속한다.
둘째 중거리형이란 대개 대대 후반 그러니까 38세를 전후로 해서 죽는 사람이다.
육상경기로 비교한다면 앞의 것이 100m 선수라면, 중거리형은 1,000m나 5,000m, 10,000m 선수이다. 비교적 많은 좋은 화가가 중거리형으로 생애를 마쳤다.
다음 장거리형이란 거의 90고령에 도달하는 장수의 예술가로서 30고개를 넘어서면 90고개에 직결되는 것이다. 많은 거장들이 90고령에 세상을 등졌다는 것은 미술사가 말해주고 있다.
그러고 보면 화가 최욱경은 분명 중거리형이다.
그는 짧지도 않고 길지도 않은 중거리의 생애로서 다른 사람이 90년에 할 일을 다하고 갔다. 물론 더 오래 살았다면 더욱 많은 작품을 남겼으리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하늘은 그를 인생의 중도에서 거두었던 것이다.
화가 최욱경은 타고난 예술가이다. 그는 뛰어난 소질을 갖고 있고 그 소질을 후천적으로 연마시키는 노력가이다.
현실에 살면서 미래를 내다보고 한국에 살면서 세계를 널리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일찍이 누구보다도 국제적인 감각이 뛰어난 그의 예술은 국경을 넘어서서 널리 세계인 것으로 확대되어 갔다. 화가 최욱경은 천생 예술가이다. 감성이 예민하여 보통인이 도달할 수 없는 깊은 곳까지 도달하였다. 그의 예민한 관찰과 폭있는 조형의 세계는 곧 그의 감성이 감지한 그만의 세계이다.
화가 최욱경은 천생 고독한 예술가였다. 흔히 이야기하기를 예술은 고독의 소산이라고 한다. 흔한 이야기지만 영원한 진리이다. 사람은 고독하면 고독할수록 그의 시야가 넓다. 그렇게 확대된 시야로서 세계의 미를 보고 그렇게 본 아름다움을 작품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뛰어난 예술가 최욱경을 일찍 잃었다는 사실은 애석한 일이나 그가 남긴 작품이 왜 많이 우리 주변에 있다는 것이 한 가닥 위안이 된다.
< 前 美術評論家 國立現代美術館長 故 李慶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