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田琦. 1825-1854)의 본관은 開城이며, 자(字)는 이견(而見), 위공(瑋公), 기옥(奇玉)이었고,
호(號)는 고람(古藍) 또는 두당(杜堂)이며, 산수, 매화, 난, 화훼 등의 그림과 함께 시(詩)와 서(書)도 잘 하였습니다. 그는 추사 김정희의 門下에서 그림을 배워 스승의 筆意를 이어 받았을 뿐만 아니라 歷代 여러 名家의 장점을 취해서 自成一家한 천재화가로서 근세조선 말엽의 文人畵로는 그 종막을 내린 作家라 할 수 있겠습니다. 추사 김정희는 고람에게 써준 對聯글씨 속에서 「 그림은 麻谷의 新法을 보였는데 詩는 石帆의 옛 가락이로구나, 古藍의 詩와 그림이 더 할 수 없이 아름답기로 이 글을 주노라.」고 古藍의 楷書와 그림이 지니는 높은 격조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추사의 뛰어난 안목에 그만큼 돋보일 수 있었던 古藍(田琦)은 분명히 당시 서울 畵壇에서 각광을 받았던 젊은 鬼才였습니다.
특히 조희룡(趙熙龍), 유재소(劉在韶) 등과 친밀하게 지냈는데, 조희룡의 저서《호산외사(壺山外史)》의 전기전(田琦傳)에 의하면
"그는 인품이 그윽하여 진당(晋唐)의 그림 속에 나오는 인물 같으며, 또한 고람의 詩畵는 當世에는 짝이 없을 뿐만 아니라 上下백년을 들어 논할만 하다."고 격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30세에 요절하고 말았습니다.
이 《 溪山苞茂圖》는 활달한 문인화풍의 素描로서 화면에 넘치는 문기의 맑음은 詩書畵에 모두 통달했던 고람예술의 격조가 실감되는 걸작입니다.
又峯 趙熙龍의 「石友忘年錄」에는 古藍 田琪의 心意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 詩 . 書를 어찌 쉽게 말할 수 있으랴. 詩로써 그림에 들어가고 그림으로써 詩에 들어가는 것이같은 이치이지만, 지금 사람들은 혹시 詩는 한다해도 그림은 무엇인지 모른다. 袁隨園 枚의 「밝고 밝은 대낮에 그림을 모르다니<白日昭昭不知畵>가 바로 그것이다. 詩.畵가 서로 통하는 이치는 더욱 고람 전기에게서 믿어진다. 전기는 젊어서부터 山水의 屋木을 그리되 누구의 가르침 없이 바로 元人의 妙境에 이르렀고, 또 그의 지은 詩는 淸越絶俗해서 모두 외울 만하다. 이는 바로 그림으로써 詩에 들어갔다 하겠다.」
고람 전기 필 계산포무도(古藍 田琪筆溪山苞茂圖)
朝鮮時代 / 田琪(1825~1854) / 紙本墨畵 26 × 42cm / 國立中央博物館所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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