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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로도투스와 스키타이 역사 】

鄕香 2010. 5. 14. 23:27

 

 기원전 450년경에 기록된 그리스인 헤로도투스의 "역사"에서는 스키타이에 대한 여러 가지 기록들을 볼 수있다.

이 기록 중 일부는 헤로도투스 자신이 직접 관찰한 것이며 나머지는 간접적으로 전해 들은 것이다. "여사"의 기록과 스키타이 유적에서 출토되는 유물상을 비교함으로써 문헌상의 기록과 고고학적 유물사이의 연결이 가능하다. 오늘날에도 역사가는 민속학자가 아닌 것처럼 소위 '역사기술의 아버지'도 확실히 민속학자는 아니었다. 그가 당시의 실상에 대해서 다양하게 서술하고 논증하고 있는 부분은 역사적 대상에 대한 그의 입장, 즉 역사관에 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文獻記事의 발췌는 헤로도투스의 서술 배치보다는 본 전시의 주제와 관계되는 부분들 위주로 모았으며 번역이 삭제되고 변용된 부분도 있다. 번역은 독일 뮌헨과 오스트리아 빈에서 개최된 특별전 내용을 참고하였으며 汎友社 발행의 "역사"(박광순譯,1987)를 주로 이용하였다.

 

1. 스키타이의 起源과 초기역사

스키타이의 기원에 대해 헤로도투스는 다음과 같은 세가지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스키타이인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들 민족은 아래와 같은 경위로 생성되었다. 아직은 황량한 땅이었던 이곳에 최초로 태어난인간은 타르기타오스(Targitaos)라 불리는 남자였다. 잘 믿기지 않지만, 타르기타오스의 부모는 제우스와 보리스테네스(Borysyhenes : 현재의 드네프르)江의 딸이라고 한다. 타르기타오스는 그후 리폭사이스(Lipoxais), 아르폭사이스(Arpoxais) 그리고 어린 콜로사이스(Koloxais)의 세 아들을 낳았다. 그의 아들들이 이땅을 지배하고 있던 어느날, 하늘로부터 황금으로 된 기구들 " 쟁기의 멍에, 전투용 도끼(鬪斧), 술잔"이떨어져 내려왔다. 맏형이 맨처음 이것을 보고서 가까이 다가가자 그 황금 기물들이 불길에 휩싸였다. 그가 도망가자 둘째 형이 다시 접근했으나 황금은 전과 마찬가지로 불길에 휩싸여 가까이 갈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막내가 다가가자 불길이 사그라들었다. 그래서 막내는 그것을 그의 집으로 가져갔다. 거기에서 두 형도 이것을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왕권을 모두 막내 동생에게 양도했다.

맏이인 리폭사이스에게서는 아우키타 스키타이 부족이 생겨나고, 둘째 아르폭사이스에게서는 카티아로이와 트라스피에스 부족이, 그리고 막내에게서는 파랄라타라로 불리는 왕족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들은 한때 왕이었던 사람의 이름을 따 스콜로토라 하며, 그리스인들은 그들을 스키타이라 불렀다.

스키타이인들은 자기민족의 기원을 이런식으로 설명한다."(4.5~7)"

흑해지방에 사는 그리스인들은 스키타이기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헤라클레스가 괴물 게리오네스의 소들을 쫓으면서 지금은 스키타이인들이 살고있지만 그 당시엔 아직 사람이 살지 않았던 지방으로 갔다. .. 헤라클레스가 스키타이 지방으로 갔을 때 겨울 추위로 사자가죽을 덮어쓰고 잠을 청하였다. 그런데 그가 잠든 사이에 마차의 馬具를 벗겨 내고 자유로이 풀을 뜯도록 놓아 두었던 말들이 사라지고 말았다.헤라클레스가 잠에서 깨어나 말을 찾아 헤매던 중 마침내 힐라이라로 불리는 곳에 도착했다. 그곳의 한 동굴에서 그는 젊은 여자의 상반신에 뱀 형상의 하반신을가진 半獸半人을 발견했다.

헤라클레스는 자기 말을 보지 않았는가라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자신이 그 말을 갖고 있다고 말하고는 헤라클레스가 자신과 같이 자지 않은 한 말을 내놓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헤라클레스는 그녀와 동거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헤라클레스와 조금이라도 오래있고자 약속 기일을 자꾸만 늦추었다. 헤라클레스는 말을 돌려받고 그녀곁을 즉시 떠날 수 있기만을 바랐다. 얼마후 그녀는 마침내 말을 돌려주며 말했다.

 " 나에게 온 이 말을, 나는 당신을 위해 보관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말을 구해 준 보답을 했습니다. 저는 당신의 세 아들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되면 함께 무엇을 해야 하나요? 그들이 이곳에 살도록 해야 할까요? 이 나라는 내가 다스리고 있으니까요. 그렇지 않으면 그들을 당신께 보내야 합니까? "  그녀의 물음에 헤라클레스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 그 아이들이 다 자랐을때 다음과 같이 행동하면 실수하지 않을 것이오. 그들 중에서 이 활을 맬 수있고, 이 벨트를 찰 수 있는 아이를 보거든 그를 이땅에 살도록 하시오, 내가 낸 과제에 실패한 두 아이는 나라 밨으로 보내시오. 만약에 당신이 내말을 따른다면, 당신은 스스로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오. " 

그리고는 가지고 있던 두 개의 활 중에서 하나를 꺼내어 팽팽하게 줄을 매고, 허리띠 매는 시밤을 보인 후 활과 매듭 끈에 金盃(Schale)가 달린 허리띠를 그녀에게 주고 떠났다.

그녀는 아들들이 자라자 장남은 아가티르소스, 차남은 겔로노스, 막내는 스키테스(Scythes)라 이름을 붙인 후 헤라클레스의 명을 실행했다. 장남과 차남은 실패하여 나라밖으로 추방당했고 막내인 스키테스만 성공하여 나라에 살게 되었다. 모든 스키타이의 왕들은 헤라클레스의 막내아들인 스키테스의 후손들이며, 앞의 금배에서 유래하여 아직도 스키타이인들은 벨트에 금배를 달고 다닌다,"

" 나(헤로도투스)는 위의 설보다는 다음의 설을 가장 신뢰한다. 스키타이 유목족은 본래 아시아에 살았었는데 맛사게트인의 침략을 피해 아락세스강을 건너 킴메르 지방으로 이돌하였다. 왜냐하면 지금 스키타이인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이 옛날에는 킴메르인이 거주하던 지역이라고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스키타이인의 공격에 킴메르 왕족은 전멸되고 남은 킴메르인들은 해안을 따라 소아시아로 도망갔다."

 

 ★ 스키타이 초기역사 ★

스키타이인들은 킴메르 지방을 점유하게 되었다. 스키타이 주전투력은 계속 킴메르인을 추격하여 서남아시아로 계속 내려갔다.  헤로도투스의 서술은 고대 오리엔트 자료들과 고고학적 증거에 의해 실제로 증명되고 있다.

"유럽에서 킴메르인을 몰아낸 스키타이는 도망자를추적하여 아시아로 침입하였으나 진로를 착각하고 코카서스 산맥의 동쪽을 돌아 메디아로 들어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메디아를 함락시키고 전 아시아를 석권하게 되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이집트로 진군하였다. 팔레스티나와 시리아를 지나는 도중에 이집트왕 프삼메티코스가 공물을 바치고 청원을 해와 더이상 진격하지 않았다.

"스키타이인들은 28년동안 서아시아를 지배했다. 아시아 전역이 그들의 난폭하고 무절제한 통치 때문에 혼돈속에 빠지고 말았다. 피정복자에게 임의로 무거운 조세를 징수하고 공물이외에도 전국을 돌며 그나마 남아 있던 개인의 재산마저 약탈했다. 마침내 키악사레스 지휘하에 메디아인들은 스키타이인들의 대부분을 연회에 초대해서 술에 취하게 만든 뒤 그들을 죽여버렸다. 메디아인들은 이렇게해서 지배권을 다시 휙득하게 되었으며, 남은 스키타이인들은 아시아 이전에 확보하여 두었던 옛 킴메르 땅으로 귀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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