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트르 1세(재위기간 1689~1725)의 시베리아 수집품은 세계적으로 주목할만한 골동수집품의 하나이다. 275년전에 이루어진 이 수집품은 아직까지도 제대로 연구되지 않았고 아직도 해결하여야 될 많은 문제점들이 남아 있다.
표트르 1세의 시대는 산업발전과 자연과학과 역사과학을 포함한 여러 분야에서의 진보가 폭발적으로 일어났던 때이다. 러시아제국의 역사를 미화시키고자 하는 표트르대제의 계획에 맞춰 러시아의 영토에 살았던 민족의 고대문화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었다. 고대미술품을 수집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시기였다. 고기록에 의하면 1715년에 시베리아 총독이었던 가가린(M.P.Gagarin)이 러시아 황제의 궁에 10개의 유물을 처음으로 바쳤다. 그해 선물로 받은 유물들의 과학적 . 미술적 중요성을 칭찬한 표트르 1세는 國庫를 사용하여 비슷한 유물을 수집하라는 포고령과 口頭 명령을 내렸다. 포고령이 기록된 당시의 문서는 남아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고령이 존재하였다는 것은 총독과 관리들이 편지와 함께 골동품과 희귀품을 왕실에 바친 사실로서도 알 수 있다. 1718년의 날짜가 적혀있는 표트르 1세의 포고령과 명령은 고대 器物을 수집하고 출토품을 모으라고 강요하고 있다. 유물들이 어느 나라에 속한 것인지 알기 위해 유물의 銘文에 큰 관심을 두었다. 특별포고령에 의해 고대 기물을 숨기거나 녹이는 것을 금지하였다(실제 17세기 말경부터이루어진 도굴로 엄청난 양의 황금 유물들이 단순히 황금의 확보를 위해 용광로에서 녹여졌었다).
그 결과 1715년과 1718년 사이에 시베리아주의 수도인 토볼스키(Tobolsk)로부터 200여개가 넘는 금제품이가가린에 의해 표트르1세에 보내졌다. 가가린은 숨겨진 보물을 찾기 위해 고분(작은 언덕)을 도굴한 지방 농민들로부터 금제품을 구입하였다. 표트르 1세는 시베리아에서 온 고고학적 유물들을 개인적으로 감정하고 그것들을 보존하도록 명령하였다. 표트르 1세와 캐서린 1세가 죽은 후 1727년에 이 수집품들은 러시아의 첫번째 공립박물관인 쿤스트 카메르(Kunstkammer)에 기증되어 전시하게 되었다. 1859년 새로 형성된 제국 고고학 위원회의 議長 덕분에 그 수장품들은 현재 보관되고 있는 에르미타주박물관으로 오게 되었다.
19세기 후반 러시아 고고학자인스피찐이 표트르 1세의 고문서 중에서 시베리아로부터 온 골동품이 담긴 소포와 동반된 여러 편지와 목록을 발견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스피찐은 수집품을 <시베리아 수집품>이라 命名하였고 이 이름이 계속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엄격한 보관조치를 취하고 이들 귀중한 문화재를 다음 세대를 위하여 보존한 표트르 1세를 기념하여 소련 고고학자들은 표트르 1세의 이름을 수집품에 부여하였다.
쿤스트카메르 박물관에 있는 동안 시베리아와 유럽에서 출토된 금제품들이 수집품에 추가되었다. 시베리아수집품을 분리하고 확인하기 위한 연구결과 수집품이주로 토볼스크와 그곳에서 1000km이상 떨어진 톰스크로부터 보내온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른 물품의 출처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발견물의 정확한 출처는 발견된 유적의 성격과 마찬가지로 不明이다. 일련의 간접적 자료에 의해 우리는 시베리아 수집품들이 오브강과 이르티스강을 따라 알타이의 서쪽지대와 카자흐스탄 스텝지대에서 온 것이고 사키족의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물론 세계의 모든 연구자가 이러한 주장에 수긍하는 것은 아니다). 위의 영토는 스키토-사키 세계의 중심에놓여 있다. 그렇게 생기찬 동물 양식미술의 溫床이 그곳에 나타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불행이도 도굴꾼들의 철저한 약탈로 이들 지역에서 온전히 남아 있는 고분들이 거의 없다.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수집품에서 다양한 素材로 표현된 帶鉤나 帶金具가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그것은 완벽한 표현성 활력성 크고 작은 대상의 구성상 숙달로 유명하다. 시베리아 수집품 중에서는 과대나 대금구에서만 두서너 마리의 동물이 복잡하게 얽혀 싸우고 있는 구성을 볼 수 있다. 거기에서 전형적인 상상의 괴수상이 있다. 즉 실존하는 동물, 짐승과 새가 동물세계의 다른 대표적 동물들의 부분들과 결합되어 있다. 귀가 있는 독수리, 사자와 그리핀의 결합, 상상의 야수, 뿔달린 짐승 따위가 나타난다. 동물 테마 외에도 사람과 말(사진96), 사냥(사진99), 풍경 꽃과 기하학적 장식 따위의 풍속적 題材도 시베리아 수집품에 보인다. 이외에도 팔찌, 목걸이(Torque), 귀고리 및 기타 장신구도 수집품에 있다. 수집된 기물의 대부분은 기원전 7세기에서 기원전 3세기 사이에 만들어진 것이다. 기원전 5~4세기로 추정되는 기물 중의 일부는 알타이 산맥의 結氷된 무덤의 발굴에서 알려진 알타이 동물양식 미술의 변형과 유사하다.
물품들은 고위 귀족층을 위해 지방 장인이 만든 것 같다, 하지만 수입된 것도 있다. 아라메아 銘文의 용구, 아케메니드와 그레코-박트리아 시대의 원형 굴레장식(Phalars) 따위가 그 예이다. 이러한 모든 유물은 신화적, 서사시적 그리고 상징적 내용으로 채워진 장식적인 응용미술품이다. 캐털로그의 원문을 작성한 당시 소련의 연구자들이 칠리크틴의 무덤에서 출토된 발굴품(사진93, 94포함)을 다른 시베리아 수집품들과 같은 문화권, 즉 그들이<사키的>이라고 불렀던 문화권에 포함시킨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첫째로 대부분의 시베리아 수집품들은 기원전 5세기 이후에 만들어진 것인데 비해 이곳의 발굴품은 기원전 7세기 후반에 속하는 것이다.
둘째는 네 무릎을 꿇고 앉은 사슴상은 다른 수집품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셋째로 얇은 금속판으로 된 이 사슴상들은 틀에 맞춰 찍어낸 것인데 다른 스키타이 미술품에서 애용되던 이 기술이 표트르 수집품에서는 보이지 않고 있다. 단지 이러한 분류는 무덤이 발견된 동부 카자흐스탄이 표트르 수집품과 같은 문화지리적 공간에 속하고 있다는 데 기인한 것이다. 표트르 수집품에서는 다른 스텝지역의 스키타이 미술과 달리 그리스 미술의 영향이 보이지 않는다. 반면 페르시아 미술의 영향은 곳곳에서 나타나며 페르시아에서 직접 수입한 금제 용기도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일부 사키부족들이 기원전 4세기경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다는 역사기록과도 일치한다. 한편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수집품들 중에는 알타이나 오르도스 문화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유물들도 있다. 또한 나선형 금팔찌 에서는 사르마티아 미술과의 연관도 강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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