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학교 죽석도나 괴석도 만을 즐겨 그렸으며, 이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경지를 이루었습니다. 절개의 상징인 대나무는 오랫동안 문인화의 대표적인 화재로 다루어져 왔고, 오랜 연륜과 불변의 상징인 괴석은 19세기에 들어와 많이 그려졌습니다. 정학교는 문인들이 하나의 畵目에 전념하곤 하였던 전통을 고수하여 괴석도를 주로 그렸습니다. 이 작품은 두 폭 병풍으로, 준엄한 기상의 괴석과 힘찬 기세의 대나무가 길고 좁은 화면을 꽉 채우고 있으며, 문인화의 상징성을 강조하고 작가의 내면적 心氣를 표현하기 위하여 의도적인 왜곡이 시도되었습니다. 길고 각진 괴석들은 청색을 섞은 물기 많은 먹으로 선염하여 질감을 나타냈습니다. 대나무의 세장하고 곧은 줄기와 이에 어울리게 날카롭게 붓끝을 뽑은 대나무 잎의 표현이 눈길을 끕니다. 畵題詩를 쓴 정학교의 글씨는 세장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뼈대가 살아 있는데, 당시 유행한 김정희 서체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개성적인 서체입니다.
정학교〈鄭學敎1832(순조32년)~1914 〉의 본관은 나주(羅州). 일명 학교(學喬 : 또는 鶴喬). 자는 화경(化景 : 또는 花鏡), 호는 향수(香壽)·몽인(夢人)·몽중몽인(夢中夢人). 서예가 정대유(丁大有)의 아버지입니다. 관직은 군수를 지냈고, 이하응(李昰應)·민영익(閔泳翊)·윤용구(尹用求) 등과 교유했으며, 안중식(安中植)과 함께 장승업(張承業)의 작품에 화제(畵題)를 많이 썼습니다. 서화(書畵)에 모두 뛰어났는데 특히 심하게 변형된 추상적 형태의 괴석을 잘 그려 '정괴석'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의 괴석도들은 문인풍의 간결한 필치와 입체감이 돋보이는 담채풍의 개성적인 화풍을 특징으로 합니다. 글씨는 전서·초서를 모두 잘 썼으며, 행서와 초서의 경우 글자 끝을 가늘게 아래로 뻗어내려 쓴 것이 특징으로 '몽인체'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괴석도〉 병풍(개인소장)과 〈괴석도〉(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등이 있고, 글씨는 광화문(光化門)의 편액 등이 있습니다.
『 怪石嶙峋虎豹蹲 蚪柯蒼翠蔭空村 , 亦知鍊補不相顧 歷閱歲華蘇有痕 괴석린순호표준 두가창취음공촌 . 역지련보불상고 역열세화소유흔.』 '웅크린 표범같이 무섭게 생긴 괴석 울퉁불퉁 푸르른 가지 빈 마을을 덮고있네 . 하늘을 받칠 때에 저를 써주지 않음을 알고 허구헌 세월 두고 이끼만 끼었구나.'
죽석도(竹石圖)
朝鮮19~20世紀 / 鄭學敎 1832 - 1914 / 絹本彩彩 / 縱 120.3× 橫 35.5cm / 高麗大學校博物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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