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王의 泗沘 遷都(538년)을 계기로 시작된 사비시대는 관리들의 상하 서열을 구분짓는 체계인 16官等制와 內官 10부로 구성된 국왕 중심의 행정조직인 22部司制가 시행되고 불교교리 및 승단조직의 정비, 羅城거ㅣ 5부 5항으로 구성된 도성제의 시행 등 중앙통치 체제의 전비가 이루어 집니다. 이러한 중앙통치 체제의 정비는 지방통치에서도 方 . 郡 . 城 체제를 통한 직접 지배방식으로 나타납니다. 이 시기 지방통치와 관련된 자료로서 주목되는 것이 銀花冠飾입니다. 「三國史記」와 중국 사서에 따르면 은화관식은 6품인 나솔(奈率) 이상이 사용할 수 있으며, 자색 옷에 紫色帶를 둘렀다고 합니다. 현재까지 부여 하황리 . 논산 육곡리 . 남원 척문리 . 나주 흥덕리 . 나주 복암리 3호(2점) . 부여 능산리 36호(2점) 등 총 8점의 은화관식이 출토되었습니다.
(부여 능산리 고분군전경)
銀花冠飾이 나주 . 남원 . 논산 등 지방에서 주로 출토되고 있어 그 피장자를 원권을 대행하는 地方官으로 보았으나, 최근 부부 합장묘인 부여 능산리 36호분에서 형태가 다른 2점의 은화관식이 출토되어 "은화관삭 = 지방관"이라는 등식은 문제가 있음을 알게합니다. 특히 고대사뢰에서는 歸葬이 일반적이었으며, 은화관식 자체가 威身財의 성격을 갖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은화관식을 착용한 피장자는 재지적 기반을 가진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편 은화관식은 모두 능산리형 횡혈식석실에서 출토되고 있어 능산리형 석실의 지방 확산은 5방제와 관련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능산리 고분군에서 切石 또는 가공된 판석을 주요석재로 하는 새로운 석실 형식이 등장하며, 피장자의 수도 이인병렬장에서 單葬으로 변화하고 석실 공간도 축소되는 등 새로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백호도
벽화(壁畵) : 부여 능산리 동하층 / 국립부여박물관
또한 이전 시기와 달리 왕릉급 고분에 채용된 석실 형식이 지방에도 넓게 분포하며, 횡혈식석실분 자체가 수적으로 증가합니다. 따라서 板石造의 평사천정 또는 평천정을 한 능산리 석실을 백제 왕릉 내지 지배계층의 묘제로 본다면 그 분포지역을 백제의 직접지배가 이루어지는 정치적 영역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5방성의 위치는 능산리형 석실분의 집중분포 지역과 관련됩니다. 즉 동방 得安城은 육곡리 고분군이 분포하는 논산지역에, 중방 古沙城은 은선리 고분이 분포하는 고부지역에, 북방 熊津城은 지명과 능산리형 석실이 조사된 송학동 고분군 등으로 보아 공주지역으로 비정됩니다. 남방 久知下城은 초촌리 . 척문리 고분군이 분포하는 남원지역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합니다. 서방 刀先城은 보령 보령리 . 장현리 . 구룡리 등지나 홍성 성호리, 서천 비인면 등지의 석실분과 관련되는 충남 서북단의 어느 지역으로 추정됩니다.
參考資料 : 國立博物館 特別展示圖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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