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시대(百濟時代)/백제 유물(百濟遺物)

백제 영산강 유역 유적 2 (榮山江流域遺蹟)

鄕香 2009. 10. 28. 08:19

'횡혈식석실분의 수용과 전개'

영산강유역에서 석실분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나주 복암리3호분 옹관석실의 예로 보아 5세기 후반부터로 생각되며, 옹관고분과 일정기간 공존한 후 이를 대체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약 160여개소에서 50여기의 석실분이 알려져 있는데, 전남지역 전역에 고루 분포하지만, 바다에 연한 지역에 집중 분포합니다. 초기 석실분은 나주 반남이나 영암 시종 등 옹관묘 중심지 이외의 지역에서 주로 발견되며, 분구는 원형이나 방형, 전방후원형 등 다양하고, 석실은 대체로 장방형이 많으며 이른 단계에는 방형도 보입니다. 석실의 장축은 대부분 남북 장축으로 동서 방향이 일반적인 옹관묘의 침향과 대비됩니다.

영산강유역의 초기 횡혈식석실분은 낮은 구릉에 위치하며, 단독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석실과 분구의 규모가 크고 석실이 분구의 중간에 위치하며, 평면이 장방형이고 割石으로 축조되었습니다. 석실은 4벽의 중하단까지는 거의 수직으로 쌓아 올리다가 점차 내경시켜 청장부를 여러장의 판석으로 덮었습니다. 해남 월송리 조산고분, 장성 영천리고분, 나주 복암리 3호분 옹관석실 등이 대표적 예입니다.

 

 〈나주 복암리 3호분〉

 

이들 석실분에는 이전 시기에는 볼 수 없었던 다량의 토기가 부장되며 쇠투겁창(鐵鉾) . 화살촉(鐵鏃) 등의 무기류의 부장이 증가하고 등자 . 재갈 . 행엽 . 운주 등의 마구류와 동경이 부장되기도 합니다.

한편 석실 구조상으로는 초기 석실분과 비슷하지만, 분구형태가 前方後圓形의 것들도 있습니다. 

광주 월계동고분 . 명화동고분 . 함평 신덕고분 등이 여기에 속하며 특히 신덕고분에서는 蓋杯를 비롯한 다량의 토기와 은장대도, 은장철모, 운주, 금동신발 편, 찰갑 등이 출토되어 횡혈식석실분의 연대비정과 피장자의 성격규명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영산강유역 초기 횡혈식석실분의 구조는 송산리형 석실과 같은 백제 중앙의 묘제와 직접적인 관계를 찾기 힘들며, 오히려 한강 하류나 일본 북구주(北九州) 지역 석실과의 유사성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덕 1호분에 보이는 철못과 관고리로 구성된 목관의 사용이나 금동신발편, 복암리고분출토 금동신발 . 은화관식 등은 모두 백제 중앙세력과 관련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음 단계가 되면 함평 월계리 석계고분, 장성 학성리 고분과 같이 평면이 장방형이고 玄室 오른쪽에 연도가 붙은 형식이 나타납니다. 대부분 가공한 판석을 사용하고 있으며 네벽이 수직이거나 측벽이 상부에서 내경하는 괴임식이 유행합니다. 고분의 입지가 산록 경사면으로 옮아가고 구릉 경사면을 L字形으로 파서 지하 혹은 반지하에 석실리 위치합니다. 분구의 크기도 10m 내외의 소형 분구 위주로 축소되는 경향을 보입니다.

출토유물은 직구단경호와 병형토기 . 고배 등의 토기류와 관못 . 관고리 등에 한정됩니다. 이러한 석실분은 웅진기 말 . 사비기 초기에 금강하류지역에서 보이는 형태이며, 목관의 구조와 현실 내 안치 위치 및 부장품의 종류 등으로 보아 이 단계가 되면 백제 중앙세력의 묘제를 거의 완전하게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후 사비시대가 되면 신안 도창리 고분이나 함평 신덕 2호분과 같은 능산리형 석실이나 함평 석계90-3호분, 장성 학성리 A-1호분과 같이 평천정 석실이 이 지역에도 보급되기에 이릅니다. 이들 석실분은 주로 광야를 낀 산록에 분포하며 단독으로 존재하기도 하지만 석실분 군집 지역에 섞여 있고, 분구는 지름 10m내외의 규모를 가집니다. 이 단계가 되면 병형토기, 은화관식, 은화장신구 등 백제중앙과 동일한 유물이 본격 출토되기에 이릅니다.    

영산강유역에서 횡혈식석실분의 출현은 백제중앙세력의 확산과정으로 나타난 고고학적 현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횡혈식석실분의 피장 주체에 대해서 중앙에서 파견한 지방관으로 보아왔으나, 歸葬이 일반적인 고대사회의 관습이나, 간접 지배방식이 일반적인 지방통치의 한계 등으로 보아 재지적 기반을 가진 지방 수장층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주 복암리3호분 96옹관 석실전경〉

 

한편 옹관고분 축조집단과 횡혈식 석실분 축조집단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영암 수산리 조감고분이나 무안 구산리 호동고분, 나주 복암리 3호분 옹관석실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횡혈식석실 안에 옹관이 매납된 것들이 있어 초기 석실분의 주인공이 옹관 축조집단과 동일한 집단이었으며 묘제의 교체가 순조롭게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參考資料 : 國立博物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