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시대(百濟時代)/백제 유물(百濟遺物)

백제토기의 변천

鄕香 2009. 10. 3. 09:18

 

백제토기는 3세기  중후반경부터 출현한 것으로 추정되며, 제 8대 고이왕대(古爾王 재위 234~286)에 비로서 중앙 집권 고대국가로 성장한 것으로 보이며, 이때 부터 등장하는 高塚古墳과 城廓에서는 三韓時代와는 다른 새로운 양식의 土器들이 출토되고 있습니다.

한강유역의 삼한시대 토기는 크게 硬質無文土器 . 打捺文土器 . 灰(黑)色無文樣土器 등의 3가지의 기술적인  면모을 보입니다. 이후 3세기 중엽에 漢의 製陶術의 영향을 받아 高火陶 還元燒成 의 석기질로 된 다양한 器種의 토기들을 생산하기에 이르는데, 이들 토기군이 곧 백제토기라 할 수 있습니다. 백제토기 출현기의 대표적인 토기로는 黑色磨硏土器를 비롯해서 長卵形壺, 有肩壺 등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黑色磨硏土器는 三韓時代 토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토기양식의 시발점으로 백제토기 성립의 표지적 토기입니다. 黑色磨硏土器에는 이전에는 없었던 絲格字文, 陰刻線文, 緣珠文, 波狀文 등 특징적인 문양이 시문됩니다. 또한 한성기 백제토기에 새로이 등장하는 高杯 . 直口短頸壺 . 臺附盒 . 蓋類 . 廣肩壺 등 다양한 기종에도 그 문양이 확인 되고 있습니다.

이외에 한성기 백제토기의 대표적인 기종으로는 直口短頸壺, 長卵形土器, 三足土器, 高杯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직구단경호는 곧고 짧은 목에 球形의 몸체를 하고 있으며, 어깨 부분에는 음각문양대, 몸체 아랫부분에서 바닥까지는 격자문이 타날되어 있습니다.

대체로 구경이 비교적 크고 구연이 길면서 격자문의 문양대를 가지거나 무문인 것에서, 구연이 짧으면서 파상문이나 연주문의 문양대가 있는 것으로 변화합니다.

長卵形土器는 이 시기 토기 중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기종으로서 모두 적갈색연질로 소성되어 있습니다. 底部가 둥글고 몸체가 계란모양을 이루고, 그을음이 묻어 있는 예가 많아 자비용기(煮沸容器)로 추정되며, 끝이 잘린 듯한 구연을 가진 것들이 이른 시기에 속합니다. 

廣口長頸壺는 직구단경호 . 심발형토기와 더불어 무덤에서 다량 출토됩니다. 회색연질이면서 목이 약하게 외반된 것에서, 점차 목이 길어지면서 외반도가 커지는 추세를 보이며, 한성후기에는 1~2줄의 돌대가 돌려지는 새로운 요소가 등장합니다.

三足土器는 백제토기에만 존재하는 특징적인 토기로 無蓋式과 有蓋式이 있으며, 유개삼족기는 다시 구경이 16cm 이상의 盤形 三足土器와 그 보다 작은 杯形 삼족토기로 구분됩니다. 삼족토기는 대체로 4세기 중엽부터 출현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5세기 중엽에 가장 성행하였던 기종으로 생각되는데, 특히 반형 삼족토기는 5세기대 서울지역에서만 한정적으로 출토됩니다. 

高杯는 無蓋高杯와 有蓋高杯가 있는데, 구연부와 굽다리의 높이가 낮은 회색연질고배의 형태로 출현하여 점차 굽다리와 구연부가 높은 것으로 변합니다. 백제 고배는 신라 . 가야 고배에 비해 아무런 장식이 없고, 5세기 이전의 한성시대에는 무덤에서 출토되는 예가 거의 없는 점이 특징적입니다.

器臺는 원통형기대와 鉢形器臺가 있는데, 발형기대는 한성기에는 몽촌토성 출토품이 유일하나 논산 표정리 고분군에서는 비교적 많은 발형기대가 출토되어 그 이후에 성행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圓筒形器臺는 회색연질에 臺狀의 돌대를 두르고 원형 . 산각형 투창이 뚤려있는 것에서, 단면 삼각형 돌대나 파상문이 시문된 회청색 경질의 것으로 변화합니다. 이들 기대들은 몽촌토성 . 풍납토성 . 등 백제 중앙지배층과 관련된 유적에서만 한정적으로 출토되는 점이 주목됩니다.

이와 같이 백제토기의 형태적 변화와 함께 제작 기술의 변화를 의미하는 토기질도 변화합니다. 먼저 흑색마연의 연질토기가 출현하고 이후 회청색경질토기로 변화하는데, 전자를 한성백제1기 토기. 후자를 한성백제 2기 토기로 부르고 있습니다. 회색연질에서 회청색경질로의 변화는 東晋 청자가 출토된 천안 화성리유적이 석촌동 3호분과 동일한 토기 출토양상을 보인다는 점에서 4세기 중엽을 전후한 시기로 생각됩니다. 

지방에서 서울지역과 동일한 토기류를 반출하는 시기는 천안 용원리나 원주 법천리 유적으로 보아 한성백제 2기 이후로 추정됩니다. 이러한 토기군은 천안 용원리나 화성리, 청주 신봉동, 청원 주성리, 진천 산수리 유적 등 차령산맥 이북의 경기 . 충청지역에 집중 분포하며, 홍성 신금성 등의 서해안과 원주 법천리 고분군 등 남한강 상류유역에 이르는 지역에 분포권을 형성하여, 당시 백제영역을 살피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한편 한성백제 말기가 되면 논산 신흥리 고분군, 공주 취리산 고분군 등 금강상류 유역에까지 분포 영역이 확대되고 있어,  웅진 천도 이전의 금강 수계에 대한 관심의 증대를 추정할 수 있게 합니다. 백제토기는 신라토기와 비교해서

장식성이 거의 보이지 않는 실용성이 강조되며, 打捺文手法이 오랫동안 지속된다는 특징을 보입니다. 또한 삼족기, 二重口緣壺 등 백제만의 특징적인 기종과 문양의 존재도 주목되는데, 이는 중국과 할발했던 대외교섭의 결과로 추즉됩니다. 

 유개흑색마연간토기(有蓋黑色磨硏土器)

百濟 漢城時代 /천안 용원리/높이18.6cm/공주대학교

 

 흑색마연간토기뚜껑(黑色磨硏土器蓋)

百濟 漢城時代 /천안 용원리/지름19.5cm/공주대학교

 

 검은간토기 굽다리잔(黑色磨硏土器臺附杯)

百濟 漢城時代 石村洞發掘遺物/86-석촌동 적석 /높이11.2cm구경8.4cm저경5.1cm/

 

 짧은목 항아리(短頸有肩壺)

百濟 漢城時代 石村洞發掘遺物/86-3호토광주변 /높이16.5cm구경9.9cm저경cm/

 

 굽다리접시(高杯)

百濟4世紀/서울  석촌동 봉토분. 몽촌토성85 - 10호 저장공/ 높이 7.8cm /서울大學校博物館 

 

 직구단경호.원저단경호.심발형토기(直口短頸壺.圓底短頸壺.深鉢形土器)

百濟時代/화성 마하리 /높이(右)19.6cm/호암미술관

 

 손잡이잔(把杯)

百濟5世紀/서울 몽촌토성 85-2호 토광묘/ 높이 8.1cm /서울大學校博物館 

 

 쌍단지(雙短頸壺)

百濟5世紀/서울 석촌동86 - 5호 / 주변 높이 5.6cm /서울大學校博物館 

 

 단지(壺)

百濟5世紀/서울 몽촌토성/ 높이(右)17.7cm /서울大學校博物館

 

 그릇받침(器臺)

百濟5世紀/서울 몽촌토성88 - 4호 저장공/ 높이19.1cm /서울大學校博物館

 

 그릇받침(器臺)

百濟5世紀/서울 몽촌토성85 - 서북구 . 85 - 5호 저장공/ 높이54.0cm구경18.9 /서울大學校博物館

 

 화로형기대(爐形器臺)

百濟時代/천안 두정동 주거지/ 높이28.6cm /公州大學校博物館

 

 네발토기(四足土器)

百濟時代/높이22.3cm /日本國東京博物館

 

 흑색마연토기(黑色磨硏土器)

百濟時代 /천안 용원리 72호 토광/높이20.0cm/公州大學校博物館

 

 

 흑색마연토기(黑色磨硏土器)

百濟時代 /천안 용원리/높이23.7cm/公州大學校博物館

 

 견부문양대직구호(肩部文樣帶直口壺)

百濟時代 /천안 화성리 B-1호/높이32.2cm/公州大學校博物館

 

 전달린토기(有顎土器)

百濟時代 /청주 봉명동/높이15.0cm/忠北大學校博物館

 

 바가지형토기(瓢形土器)

百濟時代 /청주 봉명동/지름21.4cm/忠北大學校博物館

 

 바가지형토기(瓢形土器)

百濟時代 /지름13.8cm/日本國 東京博物館

 

 고배형기대(高杯形器臺)

百濟時代 /청주 봉명동/높이14.0cm/忠北大學校博物館

 

대부완.단경호(臺附 . 短頸壺)

百濟時代 /원주 법천리/높이(左)27.8cm/國立中央博物館

 

광구소발.삼족기(廣口小鉢 . 三足器)

百濟時代 /청주 신봉동 /높이(左)8.2cm/國立淸州博物館

 

 파수잔(把手附杯)

百濟時代 /청주 신봉동 /높이17.9cm/國立淸州博物館

 

 이형병(異形甁)

百濟時代 /청원 주성리 석곽2호 /높이14.3cm/문화재보호재단  

 

 광구장경호(廣口長頸壺)

百濟時代 /청원 주성리 석곽2호 /높이25.4cm/문화재보호재단

 

 

參考資料 : 國立中央博物館 . 서울大學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