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종·인순왕후 심씨/강릉》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313-19 ,
강릉(康陵)은 조선 제 13대 명종(明宗 1534-1567, 재위1545-1567)과 인순왕후 심씨(仁順王后 沈氏 1532-1575)의 능이다.
明宗은 中宗과 文定王后의 아들로 중종34년(1539) 경원대군(慶原大君)에 봉해지셨고 1545년 이복형 仁宗(中宗과 章敬王后의 아드님)께서 세상을 떠나실 때 명종에게 왕위를 잇게 하라는 유언에 따라 12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셨다. 즉위 초 8년간은 어머니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을 받았고 그 후 명종이 親政하면서 외척을 견재하고 인재를 고르게 등용하는 등 바른 정치를 하려고 노력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재위 22년(1567) 34세로 경복궁 양심당에서 돌아가셨다.
인순왕후 심씨(仁順王后 沈氏 1532-1575)는 靑陵府院君 심강(沈鋼)의 따님으로 명종 원년 15세에 왕비가 되셨다. 명종과 사이에 순회세자를 두셨으나 순회세자는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뜨셨고 그 후 중종의 아들 덕흥대원군의 셋째 아드님이신 하성군(14대 선조)을 양자로 삼아 1567년 왕위에 오르자 잠시(8개월) 왕(宣祖)을 대신하여 나라를 다스렸으며 선조 8년(1575)창경궁 통명전에서 44세로 세상을 떠나 지금의 자리에 모셔졌다.
쌍릉의 모습으로 정자각에서 능을 바라보았을 때, 왼쪽에 명종의 능, 오른쪽에 인순왕후의 능이 있다.
홍살문 전의 진입공간에 금천교가 남아 있으며 정자각 왼편 계류에는 보면 둥근 어정(御井)이 있다. 어정이란 왕이 왕래할 때 마실 물을 마시거나 제례시 사용할 用水를 위해 판 우물이다. 광릉, 숭릉 등지에서도 이를 볼 수 있으나 강릉의 것이 원형에 가깝다.
〈정자각丁字閣〉
제향(祭享)을 올리는 고무래 ' 丁 '자형의 집이다.
《명종대왕 강릉 표비 明宗大王 康陵 表碑》
朝鮮國
明宗大王 康陵
仁順王后祔左
康陵 表石은 영조29년(1753년)에 세웠다. 앞면의 『朝鮮國 明宗大王 康陵 仁順王后祔左』은 홍계희 필체(洪啓禧 筆體)이며 陰記는 낙풍군 이무(洛豊君 李楙)가 썼다.
《음기 陰記》
明宗恭憲獻毅昭文光肅敬孝大王 嘉靖十三年甲午五月二十二日誕生 己亥封慶原大君 乙巳卽位
隆慶元年丁卯六月二十八日昇遐 九月二十二日葬于楊州泰陵東岡亥坐之原在位二十二年壽三十四
皇朝賜諡恭憲
妃宣烈懿聖仁順王后沈氏嘉靖十一年壬誕生 初封府夫人乙巳進封 王妃萬曆三年乙亥正月二日昇遐
四月二十八日葬與大王陵同原壽四十四 崇禎紀元後一百二十六年立
《음기역문 陰記 譯文》
명종공헌헌의소문광숙경효대왕은 가정13년(중종29년, 1534)갑오 5월22일 탄생하시어 기해년(종종34년,1539)에 경원대군에 봉해지셨고 을사년(인종1년, 1545) 에 즉위하시고 융경 원년(명종22년, 1567) 정묘6월28일에 승하하시어 9월22일에 양주 태릉 동쪽 언덕 해좌(북북서)에 모셨다. 재위 기간은 22년이었으며 34세를 사셨고 황조(명나라)에서 '공헌'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비 선열 의성 인순왕후 심씨는 가정 11년(중종27년, 1532)임진에 탄생하시어 처음에는 부부인으로 봉해 졌으나 을사년(인종1년 1545)에 왕비로 진봉되시고 만력 3년(선조 8년, 1575)을해 정월 2일에 승하하시어 4월28일에 대왕릉과 같은 언덕에 모셨는데 44세를 사셨다. 승정 기원 후 126년(영조 29년, 1753)에 세우다.
康陵은 조선 13대 임금인 명종(明宗)과 왕비 인순왕후 심씨(仁順王后 沈氏1532-1575)의 능이다. 한 언덕에 왕과 왕비의 봉분을 나란히 마련하여 쌍릉으로 조영하였고, 태릉과 마찬가지로 병풍석을 두르고 두 봉분은 하나의 난간석으로 둘려져 있다. 병풍석에는 십이지신상이 새겨져 있으며, 만석(병풍석 위 테두리 석)에 다시 십이간지를 문자로 새겼다.
강릉의 문인석은 신체 대비 머리의 비례가 크고, 목이 짧게 조각되었고 복두를 쓰고 관복을 걸친 관료의 차림을 하고 있다. 무인석은 왼편과 오른편의 조각이 조금씩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 오른쪽은 투구가 작고 가슴 전면에 파도 문양이 조각된 반면, 왼쪽 무인석은 팔꿈치에 구름 문양, 등 위와 무릎 부분에 비늘 문양이 새겨져 있다.
〈정자각丁字閣〉
祭禮 때 제물을 진설陳設(차림)하고제례를 드리는 집이다.
위에서 보면 건물이 한자의 '丁' 字 모양과 같다하여 정자각이라 부른다. 정자각 동쪽과 서쪽에 오르는 층계가 있는데 이는 원래 제례의식이 동쪽으로 진입하여 서쪽으로 내려가는 동입서출(東入西出)로 진행됨에 따른 것이다.
〈수라간水剌間〉
산릉제례山陵祭禮 때 제례음식을 데우고 준비하던 곳.
2023년3월14일 -鄕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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