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대왕·인성왕후 박씨 / 효릉》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산 38-4 서삼릉 내
효릉은 조선 제12代 仁宗大王(1515-1545. 재위1544-1545)과 왕비 仁聖王后 朴氏(1514-1577)의 陵이다.
인종대왕은 중종10년(1515년) 陰 2월25일, 중종과 장경왕후 윤씨의 아드님으로 탄생하시었다. 태어난지 며칠 만에 어머니 장경왕후 윤씨가 산후병으로 돌아가시고 친할머니이신 정현왕후가 돌보셨다. 중종15년(1520) 5월9일 6세에 세자에 책봉되시었다. 세자 시절에는 중종의 총애를 받던 경빈 박씨와 그 아들 이복형 복성군으로 인해 고초를 겪어야 했다. 중종17년(1522년) 관례를 치르시고 성균관에 입학하신 후 중종19년(1524년) 첨지중추부사 박용(朴墉)의 따님이신 박씨(인성왕후仁聖王后)를 세자빈으로 맞이하셨다. 25년간 세자 위에 계시다가 중종39년 1544년 11월11일 30세에 양위 받으시고 창경궁에서 왕위에 오르시어 재위 8개월만인 1545년 7월 경복궁에서 승하하시니 춘추는 31세이시고, 재위기간은 8개월로 조선 왕조 사상 가장 짧은 왕이 되셨다. 하지만, 생전에 인품과 위애와 행실이 인자하셨고 효성이 지극하시어 문무백관 온 백성의 칭송함이 하늘에 닿았고, 성군 세종대왕에 비견하기도 했다는 중종실록에 그 기록이 있다. 결국 효성으로 병을 얻어 재위 8개월만에 승하하시었다. 묘호는 仁宗, 諡號는 영정헌문의무장숙흠효대왕(榮靖獻文懿武章肅欽孝大王) 휘諱는 호峼, 자는 천윤天胤, 능호는 효릉(孝陵)이다. 생전에 인품과 행실이 인자하셨고 효성이 지극하셨으니 묘호(廟號)와 능호(陵號)가 어찌 다를 수 있으랴!
왕비 인성왕후(仁聖王后1514-1577)는 중종9년(1514년) 10월1일 첨지중추부사(錦城府院君) 박용(朴墉)과 문소부부인 반남 김씨의 따님으로 태어나셨다. 중종19년(1524) 세자빈으로 책봉되셨고, 중종39년(1544) 11월 인종이 즉위하면서 왕비에 오르셨다. 인종2년(1545) 7월 인종이 승하하시고 명종이 즉위하면서 왕대비에 오르셨고 (1547) 공의(恭懿)존호를 받아 공의 왕대비가 되셨다. 선조10년(1577년) 11월29일 경복궁 공의전에서 돌아가시니 춘추 64세이셨다.
〈참도와 정자각〉
《인종 · 인성왕후 표비각》
《〈인종대왕효릉 표비문 仁宗大王孝陵表碑文〉 (앞면 글)
조선국 朝鮮國
인종대왕효릉 仁宗大王孝陵
인성왕후부좌 仁聖王后祔左
〈인종대왕효릉 표비문 仁宗大王孝陵表碑文〉 (뒷면 글)
仁宗榮靖獻文懿武章肅欽孝大王正德十年乙亥二月二十五日誕生庚辰冊封 王世子嘉靖二十三年甲辰年一月受
禪乙巳七月朔日昇遐十月十五日葬于高陽 禧陵西岡艮坐之原在位八月壽三十一 皇朝賜諡榮靖 妃孝順恭懿仁聖王后朴氏正德九年甲戌十月朔日誕生 嘉靖六年丁亥冊封世子嬪 甲辰進封 王妃萬曆五年丁丑十一月二十九日昇遐 戊寅二月十五日葬與 大王陵同原壽六十四
崇禎記元後一百二十六年立
〈인종대왕효릉 표비후면문 仁宗大王孝陵表碑後面文〉 (역문 譯文)
인종영정헌문의무장숙흠효대왕께서는 정덕 십년(1515) 을해년 2월25일 탄생하셨다. 경신년(1520)에 왕세자에 책봉되시고 가정23년(1544) 갑진년 11월에 임금 자리를 물려받으셨다. 을사년(1545) 7월1(삭일)에 돌아가셔서 10월15일에 고양 희릉 서쪽 간좌에 장사지냈다. 재위는 8월이며 춘추는31세이셨다. 중국에서 榮靖이라는 시호를 주었다.
왕비 효순 공의 인성왕후 박씨께서는 정덕9년(1514)갑술년 10월1일(삭일)에 탄생하셨다. 가정6년(1527) 정해년에 세자빈에 책봉되시고 갑진년(1544)에 왕비에 오르셨다. 만력 5년(1577) 정축년 11월29일에 돌아가셔서 무인년(1578) 2월15일에 대왕릉과 같은 자리에 장사 모셨다. 춘추는64세이셨다.
숭정 기원 후 126년(1751)세움.
《인종과 인성왕후 능침》
효릉은 왕과 왕비의 봉분이 나란히 조성된 쌍분의 형태인데, 인종의 봉분에만 병풍석이 둘려져 있다. 효릉은 처음 조성할 당시에는 병풍석이 없었으나 선조11년(1578) 인성왕후능을 조성할 때 인종의 봉분에만 추가로 병풍석을 설치하였다.
인종 봉분과 혼유석
屛風石(호석)에는 귀가 높고 길게 솟은 보살형의 인물상이 雲氣에 쌓여 있고 그 위 테두리석에는 卯字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보살이 아닌 12지신의 하나인 卯의 形象이겠다. 묘시(卯時)는 05시~07시 방향이다.
봉분의 護石(병풍석) 위에 있는 데두리석 17시~19시 방향에 酉가 새겨져 있다. 그 아래 닭의 얼굴 형상을 한 지신이 구름 무늬에 싸여 있다.
王妃 인성왕후 봉분과 혼유석 (仁聖王后 封墳과 魂遊石)
〈팔각 장명등 八角 長明燈〉
이장명등은 보주(宝珠)와 용차(龍車) 사이에 띠를 두고 또 연화관 사이에 띠를 두었다. 연화관 아래 팔각 옥개석(屋蓋石)의 우동(隅棟)마루 끝 전각(転角)에는 귀꽃이 새겨져 있고 처마에는 옥개받침이 표현되어 있다. 팔각의 화창부는 4면에 火窓이 열려 있고 4개의 화창은 봉해졌다. 팔각 몸체는 앙련(仰蓮)위에 상하 띠 사이에 구슬무늬를 넣은 난간형태의 무늬를 팔면에 이어 돌리고 그 위 각 면에 안상(眼象)이 표현되어 있다. 잘록한 허리부에는 팔각 모서리마다 마디 형태로 꾸미고 각 면에 안상을 새겨 놓았다. 하단부는 24개의 귀꽃을 돌려 새겼고 상하 띠 사이에 구슬무늬를 넣은 띠를 돌려 새기고 그 밑 8면에 안상을 새긴 다음 팔각(八脚)의 받침대를 표현하였다.
문석인 文石人은 눈은 부릅 뜨고 슬픔을 머금은 얼굴 표정을 하고 있다.
문석인 (文石人) 뒷모습.
무인석(武人石) 앞모습. 왕방울 같은 눈에서 금시라도 눈물이 흘러내릴 것만 같다.
무인석(武人石) 뒷모습. 갑주의 문양이 정교하고 아름답다.
곡장(曲墻) 뒤에서 바라본 인종과 인성왕후 능침
2009년 6월27일 -鄕村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