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산(錦繡山)은 충청북도 단양군 적성면과 제천시에 걸쳐 있는 높이 1,016m의 산으로서 백암산 (白岩山)이라고도 불렸는데, 퇴계 이황 선생이 군수 재임시에 그 경치가 '비단에 수를 놓은것 같다'하여 금수산으로 불리게 되었다지요.
금수산은 산세도 아름답지만, 푸른 물줄기의 청풍호를 안고 둘려진 산들의 봉우리가 장관을 이루며 내려다보는 이의 가슴을 헤일 수 없는 감동으로 앗아갑니다. 코스마다 능선에는 암벽의 험한 능선도 많아 짜릿함도 느낄 수 있다기에.. 마음먹고 나섰습니다. 오늘은 날씨도 무덥고 해서 상천 들머리 보다 가깝고 시원한 얼음골 쪽 계곡을 타고 금수산 정상을 보고 다시 이곳으로 회귀할 마음으로 들어섰는데, 난생처음 홀로 외지의 산행을 나선 서울촌놈이 그만, 잘못해서 정방사 쪽 신선봉능선을 오르고 말았습니다. 이런 착오가 없었다면 이 능선을 언제 볼 것인가 하는 마음으로 그냥 즐겁게 앞으로~ 그러나 이것이 지옥을 헤매다 오게 될 줄이야..
국도 옆 얼음골을 거쳐 금수산으로 가는 들머리입니다. 이길로 50m 정도 올라가면 얼음골로 들어서는 길이 나옵니다.
이렇게 갈림길이 있었는데, 우측 축대윗길로 들어서야 했는데.. 큰길만 쳐다보며 부지런히 가다가 그만 여기를 지나쳐서 정방사 . 신선봉 가는 길로 가고 말았습니다. 날씨가 너무 더운 탓이라기보다는 오늘의 운이고 이 길과의 인연이겠지요.ㅎㅎ
제가 간 코스는 들머리에서 →(30분-2.5km)←정방사→(1시간20분-2km)←미인봉→(3시간20분- 4km)←신선봉 ~~ 원점회귀. 오전 11시10분에 들머리를 출발하여 원점회귀시각은 오후7시40분. 총 8시간30분 걸렸습니다.
이 안내도를 보고 능강계곡을 거쳐 금수산 정상을 보고 망덕봉을 거쳐 한양지갈림길에서 얼음골로 해서 원점 회귀할 목적으로 나섰는데.. 안내문도 없었고, 눈여겨 보지도 않은 길을 막연히 길있음에 금수산정상에 이르겠지 하는 도시식 발상이 참으로 무모한 산행이 되고 말았습니다.
금수산은 산세가 수려하고 우아하며, 골이 깊고 기암절벽이 절경을 이루고 있으며, 경치가 빼어난 암산으로 이 산을 바짝 끼고 청풍호반의 푸른물이 감싸고 돌기 때문에 주변경관도 아름답지만 이름 그대로 마치 비단에 수를 놓은 듯 아름다운 산세가 눈길을 잡는 곳입니다. 주봉인 망덕봉이 위엄을 보이며, 이 산 기슭 백운동에는 높이가 30m의 용담폭포가 용태를 자랑하고 있으며, 금수산 심곡의 한양지(얼음골)유곡 양편에는 기암괴석과 청산이 있고 청솔로 우거지 숲 사이 십리계곡에 차고 맑은 계류가 굽이치고 돌아 흐르면서 절경을 이룬다고 합니다.
얼음골(한양지) : 금수산 칠부능선 1천여㎡의 돌밭 얼음골은 삼복더위에 30~40cm가량 돌무더기를 들추면 밤톨만한 크기의 얼음이 나오는데, 위장병에 특효가 있다고 합니다.
1. 코스 : 능강계곡입구 →(6km-180분)←얼음골 →(1km-20분)←한양지갈림길→(1km-40분)←정상→(40분-1.5km)←795봉→(60분-3.3km)←상천버스정류장. : 5시간40분소요.
2. 코스 : 상천버스정류장→(15분-0.7km)←용담폭포→(30분-1kn)←독수리바위 →(80분-2.5km)←한양지갈림길→(40분-1km)←정상→(40분-15km)← 795봉→(60분-3.3km)←상천버스정류장.(원점회귀) : 4시간25분소요.
산세도 크고 골도 깊어 계곡에 물이 있을 법도 한데, 너무 가물은 탓인지 물은 찾아볼 수도 없습니다.
한참을 이런 콘크리트길을 걸어가지만, 얼마를 더 걸어야 할지... 지루하고 힘이 듭니다. 초입에 이런 줄 알았으면 차를 가지고 가는데 까지 가볼 걸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족히 35분은 걸어 올라왔더니, 정방사주차장이 있습니다. 제가 주차한 들머리에서 여기까지 2.5km라고 표시판은 말했습니다만, 콘크리트로 포장된 길을 30분 넘게 걸어오는데, 많은 기력이 소모되었습니다. 미리 알았다면 여기까지 차를 가지고 왔어도 되돌아오는 길에 탈수로 기진하진 안았을 것을...
자동차 앞쪽에 돌계단이 있습니다. 이곳을 오르면 '정방사'라는 절이겠지요.
작은 사찰인 듯 일주문이 아닌 解憂所가 맞아 줍니다. 작은 근심이라도 덜고 가라는 부처님의 혜량이시겠지요.
"南無阿彌陀佛 觀世陰菩薩"
정방사(淨芳寺) 이절은 (제천시 수산면 능강리) 신라 문무왕2년(882년)壬戌에 의상대사가 창건하고 그 후 몇 차례의 重修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설화로는 의상대사 문하에 淨圓이라는 제자가 십여 년이나 천화를 두루 다니며 공부하여 세상사가 모두 무상함을 깨닫고 부처님의 법을 널리 펴고자 원주의 어느 토굴의 반석에 앉아 정진하고 계신 스승(의상대사)을 찾아 절을 올리고 여쭈었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펴고자 하옵니다." 스승은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이에 정원이 다시 여쭈었답니다. "십여 년간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수행을하여 보니 부처님의 가르침은 서간을 떠나지 않았고,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펼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정원이 이렇게 말씀 드리고 다시 삼배 합장하니, 그제야 스승인 의상대사께서 ' 너의 원이라면 이지팡이의 뒤를 따라가다가 멈추는 곳에 절을 지어 불법을 홍포하여라. 산 밑 마을 윤씨 댁을 찾으면 너의 뜻을 이루리라." 하셨다. 정원이 고개를 들어 자리에서 일어나니 스승께서 던진 지팡이(석장)가 하늘에 둥둥 떠서 남쪽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며칠동안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뒤를 따르니 지금의 정방사 자리에서 멈추어서는 것이 아닌가, 산세는 신령스러워 흡사 범왕궁(梵王宮)의 자리와도 같았다. 정원은 즉시 산 밑 마을의 윤씨댁을찾아 그 뜻을 전하니 주인은 " 어젯밤 꿈에 의상이라는 스님이 흰구름을타고 우리집에 오셔서 '내가 그대의 전생을 잘 알고 있소 불연(佛緣)이 있어 말하는 것이니 내일 어떤 스님이 오거든 절 짓는데 도와 주길 바라오" 하더니 구름을 타고 가셨습니다. 하여 이러한 인연으로 創建된 이 사찰은 정원스님의 '淨'字와 아름다운 산세를 지녔다는 '芳'字를 써서 淨芳寺라고 하였다.고 전합니다.
금수산(1016m) 산자락 신선봉(845m)에서 청풍 방면 도화리로 가지를 뻗어 내린 능선 상에 있는 정방사는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한 전통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속리산 법주사의 末寺로서, 경내에는 법당과 칠성각 . 유운당 . 석조관음보살입상 . 석조지장보살상 . 산신각 . 종각 등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법당은 팔작지붕에 앞면6간, 옆면2간의 보기 드문 법당으로 1825년에 중수되었고, 주존불로는 숙종25년(1889년) 조성된 목조관음보살좌상과 후불탱화 . 신중탱화가 모셔져 있으며, 외부 처마 밑에는 석정(石丁) 안종원(安鐘元)의 글씨로 된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칠성각은 앞면3간, 옆면2간의 맞배지붕 건물로 법당과 같은 시대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16나한탱화, 칠성탱화,독성탱화가 모셔져 있습니다.
기암 절벽아래 자리한 山寺에 그린 듯 앉아 있는 팔작지붕 . 맞배지붕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법당의 주련에는 "고무고천환반저(高無高天還返底), 담무담수심환묵(淡無淡水深還墨), 승거불지소무욕(僧居佛地小無慾), 객입선원노불비(客入仙源老佛悲), 높음이 하늘보다 높은 것 없으나 도리어 밑으로 돌아가고, 담수보다 맑은 것 없으나 깊으니 도리어 검도다. 스님은 불국정토에 있으니 조금도 욕심이 없고, 객이 신선사는 곳에 들어오니 늙음 또한 슬프지 않구나." 라는 글이 있고,
유운당 주련에는, " (山中何所有 . 산중하소유) . (嶺上多白雲 . 영상다백운) . (只可自怡悅 . 지가자이열) . (不堪持贈君불감지증군) "
'산중에 무엇이 있을까 산마루에 흰 구름 만 머물러 있구나 다만 나 홀로 즐길 수 있을 뿐, 그대에게까지 바칠 수가 없구나. ' 라는
詩句가 있습니다.
절 옆 모퉁이에 등산로 팻말이 산행을 독촉하는군요.
이 등산로는 등산객이 드문 곳인지 소로였습니다. 그래도 요로마다 산악회 리본이 이정표가 되어줍니다.
혼자 가는 길은 바쁠 것 없이 내려다보고 올려다보고 우측을 보니 아스라이 보이는 산 . 산 . 산 그 아름다운 포물선은 여인의 봉긋한 젖무덤처럼 포근함으로 다가옵니다.
얼마 오르지 않았건만 땀이 비 오듯 합니다. 바윗길에 햇살이 하얗게 부서져 무수한 파편이 되어 동공을 찌릅니다. 아파요~
다른 산에서 못 보던 나무 꽃, 그 이름은 모르고요.
진달래나무 크기지만 꽃은 앙증스레 작고 하얀 꽃이 소복하니 모여 피는데 진달래처럼 무리져 있습니다.
절에서 300m 오르니 첫 등성이입니다. 이제부터 능선길이니 좀 수월하지 않겠어요.
얼마쯤 가니 하얀 바위능선입니다. 재미야 있지만, 복사열 때문에 온도의 느낌은 두 배 그래도 큰 소나무들이 그늘을 내주며 쉬어가게 합니다.
무덥고 나무그늘조차 없는 뜨거운 바윗길은 땡볕과 복사열에 숨이 막히지만 어느 정도 지나면 이런 숲길이 나오기에 그나마 버틸 수가 있습니다.
숲길을 지나면 어김없이 벼랑 같은 바위가 앞을 막아섭니다. 양손으로 틈새를 붙잡고 넘어야겠습니다.
우회도 없는 바위들 기를 쓰고 오르면, 다시 길은 묘연합니다. 다행히 어느 산악회 나뭇가지에 매어놓은 노란 리본이 등산로임을 알려줍니다.
님은 이 사진에서 길이 보이시
온전히 바위로 이루어진 산임에도 불구하고 흙산에 숲을 이룬 나무보다 바위 틈새에 띄엄띄엄 뿌리내린 나무들이 오히려 더욱 건강하고 싱그럽습니다.
넘어온 바위산을 뒤돌아보니 푸른 나무로 그 날카로운 등을 가린 채 '나 부드럽고 유려하지?' 하며 웃네요.
저 아래 청풍호의 쪽빛처럼 맑은 물이 더위에 절은 가슴을 시원하게 씻어줍니다. 한줄기 바람에 소금기 짭짤하고 끈적이는 땀을 식히는 시간에도 하늘빛은 한 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습니다. 청풍호 물빛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맑고 투명한 빛깔의 하늘은 도술을 부리듯이 낮의 빛바랜 뽀얀 색깔로 변신하더니 어느 새 서쪽하늘에서 뭉게구름을 몰아오고 해를 그 구름으로 덮어 은은한 등불처럼 마치 창호지에 스며드는 달빛마냥 교교하게 미소를 짓게 하다가 어느새 다시 살촉 같은 빛살로 살을 콕콕 찌릅니다.
크지도 않고 아담하기 보다는 좀 버거운 바위들이 갈참나무와 소나무에 숨어서 불쑥불쑥 나타나 길을 막아서니 어쩔 수 없이 아슬아슬한 벼랑길로 우회하는 곤욕을 치르게 합니다.
넘을 수도 기어오를 수도 없는 바위 옆으로 우회하고 보면,
바위가 길인지, 길이 바위인지 분별도 안 되는 길을 찾아 헤매다보면 길은 저만치서 손짓합니다.
부부가 뽀뽀를 하려는데, 철부지 어린 딸아이가 시샘이 나서 엄마의 얼굴을 막고 훼방을 놓습니다. ㅎㅎ
그렇게 가다 이른 곳이 미인봉이란 곳입니다.
정방사에서 2km의 거리를 1시간 20분이 걸렸습니다. 쉬지 않고 왔건만, 시계를 보니 13시 입니다.
신선봉을 지나 금수산 정상까지가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지만 회귀점인 정상에서 점심을 먹을 생각인데, 이정표가 없군요.
잠시 주변을 보며 금수산정상을 가름해 봅니다. ⊂形으로 휘돌아 건너 보이는 저기가 거긴지 에휴 아득하기만 합니다.
이곳에서 요기를 할까 생각하다 식후엔 더 이상 못갈 것 같은 생각에 다시 출발합니다.
고래등처럼 엄청난 크기의 이 바위 앞에 수림이 울창한 저 푸른 산을 오르면 거기가 신선봉일까 싶어 걸음을 재촉합니다.
14시30분 안에는 요기를 하고 금수산 정상에 도달해야한다는 생각입니다.
졸참나무 숲을 들어서가는데, 그렇게도 간구하던 이정표가 있습니다. 구세주도 이리 반가울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여기저기 달린 리본이 더없이 반갑습니다. 사람의 흔적이 이리 그립기는 처음입니다. 신선봉이 3.5km라고 팻말은 말합니다.
그런데 금수산 정상 표시는 없습니다. 이런 길이라면 1시간이면 갈 수 있겠다 싶어 다시 신선봉을 향해 걸음을 재촉합니다.
산참나리가 참 귀엽고 아릅답습니다. 집에서 키우는 참나리 보다는 꽃이 작지만 오히려 소담하고 색깔도 곱고 더 예쁩니다.
길가에 한 송이 나리꽃 잠시나마 피로를 잊게 해줍니다.
숲을 벗어나니 다시 바위길이 이어집니다. 꼬불꼬불 휘어 틀어진 바위고갯길...
오르락 내리락 기어오르고,
요로처럼 요리조리 돌아 빠지고,
나뭇가지에 매달려 바람에 나부끼는 리본이 외지의 낮 섬을 달래주는데, 햇살은 수많은 바늘이 되어 피부를 콕콕 찌릅니다.
바위와 기기묘묘한 소나무에 정신 못 차리다가 앞이 탁 트인 앞에 멈추어 서서 바라보니 뾰족뾰족 날카로운 바위로 된 봉우리가 내 앞에 버티고 있습니다. 저기를 오르면 신선봉일까!
암벽능선 끝에 솟은 저 봉우리는 금수산정상이 아닐까 ! 배도 고프고 더위에 시달리다보니 기다려지는 것은 오직 목적지 입니다. 정상을 밟고 되돌아 가야하니 시간이 촉박할 것 같아서..
앞에 우뚝 솟은 바위로 가는 길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비바람에 삭고 바위에 할퀴어 낡을 대로 낡은 줄과 나무를 부여잡고 오르고 내리면서..
어디를 잡고 어떻게 올라가야 할지.. 저승 가는 길이 따로 없습니다. 어쩌자고 이런 고생을 왜 하는지 모르지만, 하루만 지나면 다시 궁금한 것이 산입니다.
지형상으로는 저기를 올라서면 그대로 벼랑인데, 좌측의 바위로 톱날같은 능선이 이어져 있는데, 길 같은 흔적은 보이지도 않습니다.
하늘을 향해 올려다보는 뜻한 얼굴을 떠올리게 하는 바위를 끼고 오르니 딛고 설 수 없도록 바위가 좁고 날카로워 다리가 후들거리는 바위 뒤로 청풍호와 산들이 연무에 덮여 희슴프레합니다.
보조 장치도 없이 바위 면과 바위 틈새를 손으로 잡고 간신히 기어 오르고 타고 넘어 올라서서 펼쳐진 경관을 바라보니 神仙이 따로 없다 싶습니다.
가슴을 쓸어내리고 바위봉우리를 넘고 보니 소나무 울창하고 오밀조밀한 바위에 발길의 흔적이 보입니다.
연무가 뿌옇게 서린 먼 산의 희미한 능선아래 청풍호가 비취처럼 아름답고 굽어 휜 푸른 청솔가지와 솔잎에 선비의 단아하고 의연한 풍모가 엿보입니다.
소나무숲과 어우러진 바윗길이 한낮의 열기를 잊게 합니다.
우리의 소나무는 보고 보아도 참 멋이 있습니다. 품위 있고 의연하고 기백이 있고 ..
그러나 그런 감격도 잠시 질리도록 날카로운 바위들이 이어져 끝이 안 보입니다.
톱날처럼 생긴 능선에 좌우가 벼랑인데 소나무와 소나무 사이로 얼기설기 엮어 놓은 줄을 잡고 곡예 하듯 가야할 저 길을 보니 오금이 저립니다, 도와줄 이도 없는 아차 싶은 곳을 왜 가야하는지 어차피 다시 되 돌아가야 하는데... 금수산 정상은 묘연하고 신선봉도 얼마나 더 가야하는지 알 수 없으니..
한쪽으로 기울어진 이 벼랑이 두려웠습니다. 바르게 직선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벼랑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어서 줄을 잡고 바르게 몸을 가누고 오르려 해도 기울어진 벼랑으로 자꾸 몸이 쏠리는 바람에...
바위와 바위사이 2.5m정도 벌어진 벼랑입니다. 나무와 나무에 엮은 줄을 타고 유격 훈련하듯 가야하는데, 줄도 오래되어 하얗게 바랬고 일부 삭았어요. 동화 속 자매의 심정이 되어봅니다. '하느님 저를 살리시려거든 새 동아줄을 내려주세요.'
소나무와 소나무에 묶은 줄 중간에 버티고 있는 바위로 된 벼랑 허리를 가로 질러가는 구간입니다.
큰 바위들이 길게 쌓여 등성이를 이룬 양 옆은 보기만 해도 아찔한 벼랑길입니다. 다만 바위사이사이 부토가 생성되어 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어 벼랑이 주는 두려움을 느끼지 못할 뿐입니다.
사람하나 겨우 곡예 하듯 걸어갈 수 있는 오르고 내려가는 바위 길에 오로지 나무가 수호신입니다.
여기는 흙이 좀 있어 길 모양을 하였지만,
그 길이가 5m정도 밖에 안되는군요. 이런 가파르고 험한 바위산 높은 곳에 흙이 있다는 그 자체가 신비합니다.
이사진들은 풍경을 찍은 것이 아닙니다. 제가 가는 앞길을 찍은 것입니다.
거침없이 내리 쏘는 햇살에 정신은 하얗게 바래가고 폭염으로 온몸에 땀이 솟아 옷과 배낭은 물기가 흥건하고 몸은 지쳐 가는데,
이 바윗길은 끝날 줄 모르네. 그냥 돌아서고 싶은 생각에 지나온 곳을 되돌아보니 돌아갈 일도 아마득합니다.
임이 옆에 계셔도 이리 힘들었을까! 그건 아닐 테지요. 함께라면 의당히 지옥이라도 기꺼이 즐겁게 가야 할 테니까요. ㅎㅎ
앞을 봐도 뒤를 봐도 온통 바윗길 , 어떤 것은 남녀의 거시기 같고..
때로는 공룡의 등판 같고...
때로는 악어의 등때기 같고,
칼처럼 날카롭고 섬뜩한 능선에도 휴식처마냥 제법 너른 바위가 있어 물로 목을 적시고는 그만 여기서 주저앉고 싶었습니다. 기념을 하고 싶은데, 찍어 줄 사람 없어 배낭이라도 담아봅니다. 잠시 넋을 놓고 있는데, 저 만치 앞에서 사람들의 도란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어찌나 반가운지 서둘러 소리를 쫓아갑니다.
산악회리본만 봐도 반가운데 푯말이라니 부둥켜안고 싶은 반가움입니다.
사람들 말소리에 언제 힘들었는가싶게 달려가건만, 보일만도 한 그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눈치 없는 바위만 앞을 막아섭니다.
어느 예술품이 이보다 자연스럽고 아름다울 수 있을까요. 자연은 인간의 생각과 추상을 넘어 모든 사물들을 베일 속에서 다듬고 있습니다.
연록의 이파리 사이로 하얗게 드러낸 바윗길이 다이아몬드처럼 빛을 냅니다. 그 빛을 따라 몸이 흐느적입니다.
모처럼 제법 산길다운 길에 노란리본이 웃자며 Let's Go 랍니다. 그럼 가야죠!
아이고, 육산이다 싶어 달려온 수림 속에 숨어 있는 돌산은 온전히 깎아 벼랑에 높기가 12m 는 족히 되는데, 낡은 밧줄이 거북등짝무늬로 얼기설기 엮어있네요. 밧줄을 믿느니 차라리 맨손을 믿어야 할 것 같습니다. 쌀 포대나 건축폐기물 담는 포대를 짜는 비닐 같은 섬유로 짠 줄인데 올이 너덜너덜 합니다. 여길 오려면 개인용 자일이 필수겠어요.
위를 쳐다보니 한 사람이 오르고 있었습니다.
그 분을 따라서 올라서니 먼저 오른 일행 5명이 기다고 있더군요. 모두 천호동에 근거를 둔 '토성'이란 산악회서 왔다는데, 40명중 꼬리랍니다. 얼마나 반가운지 그것도 내 고향 같은 천호동이라니.. ㅎㅎ 이제 얼마남지 않았을 신성봉을 향해 이들을 뒤로 하고 앞서갑니다.
벼랑을 오르고 나니 그 험악한 능선이 끝나고 폭신한 융단은 아니지만, 비록 듬성듬성 바윗돌이 있지만, 더없이 반가운 숲이 있는 흙길에 아담한 봉우리가 기다립니다. 아직도 신선봉이란 표지조차 묘연합니다. 도대체 신선봉은 어디 있을까! 앞을 보니 한 폭의 풍경화가 있을 뿐입니다
얼마를 가다보니 여린 가지에 묵직한 안내판이 걸렸습니다. 신선봉은 1.2km를 더 가야 된다고요. 그럼 이제까지 고군분투하며 온 그 고행길은 얼마나 될까..
완만한 능선 숲길을 따라 오니 그 신선봉은 너무도 어쩌구니 없는 모습으로 나를 슬프게 합니다. 준엄하고 기세 좋은 뫼 인줄 알았는데, 그만 더 갈 의욕도 힘도 시간도 다 소진된 상태에 넋이 나갑니다. 금수산정상은 아직도 2.5km의 거리를 가야합니다.
뒤에 오던 그 '토성' 사람들에게 부탁하여 남긴 내 모습입니다. 가득이나 바짝 마른 북어가 한결 더 눈이 오목 들어갔지요. 시간을 보니 15시20분 여기서 금수산정상을 거쳐 다시 주차장까지 가기에는 거리로나 시간적으로도 무리가 되겠습니다. 우선, 서둘러 요기를 하고 일어서야 겠습니다.
잡석더미와 검은 비석만 휑한 이곳을 보니, 지옥 길 같던 과정이 광채를 냅니다.
빼꼼이 보이는 저 길이 금수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랍니다. 저길은 또 어떤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르거니와 되돌아갈 길이 구만리 지옥처럼 기다리고 있는데... 마음은 다음을 기약하고 그만 돌아서야 했습니다. 여기서 좌측으로 2.8km 정도만 하산하면 학생야영장과 단양가는 도로라는데, 차를 주차한 곳과는 120˚ 방향이니 이제까지 오던 길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오던 길을 다시 되짚어갑니다. 저 보이는 봉우리가 금수산정상이 틀림없으련만...
다시 절벽을 바들바들 기어 내려가고...
모진 비바람을 견디기 위해 몸통처럼 키운 뿌리로 바위를 휘감아 버티는 소나무의 경이로운 지혜로움에 잠시 넋도 주고...
흘린 손수건을 되찾기 위해 오던 길을 되돌아가기도 하며...
예쁜 야생화의 위로에 미소도 짓고...
草本이 아닌 나무가 피어 낸 이름도 모를 꽃에게 찬사와 고마움에 인색치 않으며..
등산객 손길과 풍우로 낡아 비록 네 의미를 상실하고 빛바랜 너(rope)지만,
그래도 본분을 지키려고 비바람 풍화에 온몸을 내주고 있는 네게 고마움도 가지며..
초행길에 방황하는 내게 이정표가 되어준 아름다운 리본들, 너의 진의가 이정표든 홍보였든 그 무엇이었든 내게는 힘이 되는 고마움이었다.
내 기진한 몸 잠시 쉬는 곳에 홀연히 날아와 너의 아름다움을 내게 보여 준 그 고움을 내 어찌 잊으리...
들머리에서 앞만 보고 무심히 지나쳤던 너의 멋진 면면을 지금은 너무 지쳐서 또 그냥 지나친다.
난생처음 길을 잘못 들어 예상치 못한 코스를 밟아 되돌아 올 때는 탈진되어 죽을 고비를 넘긴 신선봉으로 가는 능선이 지옥 길이었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던 산행이었습니다. 그런대도 다시 가고 싶은 길입니다.
2009/6/24 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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