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朝鮮時代)/조선 유물( 遺物)

해시계(仰釜日晷)

鄕香 2009. 3. 9. 15:11

 

 

이 해시계는 반구형의 솥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오 '앙부일귀'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동지에서 하지에 이르는 24절기를 13개의 계절위선(季節緯線)으로 나타내고 이에 수직으로 시각자오선(時刻子午線)을 그었으며 구심(球心)을 꼭지로 하는 꽃봉오리 모양의 푯대를 북극성 고도에 맞춰 세웠습니다. 또 네개의 다리 밑은 바닥을 십자형 홈통으로 연결시켜 이곳에 물을 담아 수평을 가늠하도록 하였는데 볕이 잘 드는 곳에 설치하면 푯대의 꼭지 그림자가 시계 안바닥의 눈금을 가리키게 되어 언제든지 시각과 절기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앙부일귀'는 조선 세종16년 (1414년) 장영실(張英實)이 왕명으로 제작하여 흠격각(欽敬閣) . 혜정교(惠政橋 . 종묘(宗廟) 남쪽거리 등에 설치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공중시계 역활을 하였습니다. 元나라의 곽수경법(郭守敬法)에 의하여 제작된 이 시계는 '임진왜란'으로 모두 그 후 현종(顯宗)과 숙종(肅宗)때 다시 만들어 졌는데 문자와 線이 은입사(銀入絲)되고 형태 또한 우아하여 궁중에 설치되었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해시계(仰釜日晷)

조선시대/17세기말/높이 19cm.지름37cm/국립중앙박물관所藏

 

우리나라에서는 세종 때 처음 만들었으며 이후 조선말까지 계속해서 만든 대표적인 해시계로 공중용으로 설치해놓는 것과 작게 만들어 휴대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이 오목형 해시계는 일본에도 전해져 많은 유물이 남아 있으나 중국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증보문헌비고 增補文獻備考〉 상위고(象緯考) 의상(儀象)에 의하면 세종의 명으로 정초(鄭招)·정인지(鄭麟趾) 등이 고전을 연구하고, 이천(李蕆)과 장영실(蔣英實)이 공역(工役)을 감독하여 1438년(세종 20)에 앙부일구를 비롯한 여러 천문의기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김돈(金墩)의 앙부일구명(仰釜日晷銘)에는 "무릇 시설 중에서 시간에 관한 것보다 더 중대한 것은 없다. 밤에는 경루가 있으나, 낮에는 시간을 알기 어렵다. 구리를 부어서 그릇을 만들었는데 모양이 솥과 같다. 지름에 둥근 송곳을 설치하여 북에서 남으로 마주 대하게 했으며, 움푹 팬 곳에서 휘어져 돌게 했고, 점을 깨알같이 찍었다. 그 속에 도(度)를 새겨서 반주천(半周天)을 그렸다. 시신(時神)을 그린 것은 무식한 백성을 위한 것이며, 시간이 정확하고 해 그림자가 명백하다. 길가에 놓아두니 구경꾼이 모여든다. 이로부터 백성도 이것을 만들 줄 알게 되었다"고 앙부일구에 대해 적고 있다. 공중용 앙부일구는 2개를 만들어 종묘 남쪽 거리와 혜정교(惠政橋)에 돌로 대를 쌓고 그 위에 설치하여 일반 백성들이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이때의 앙부일구는 현존하지 않는다. 다만 18세기 전후의 작품들이 현존하여 궁중유물전시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이 2기가 현재 보물 제845호로 지정되어 있다.

앙부일구의 재료는 보통 청동이지만, 자기나 돌을 깎아 만든 것도 있다. 공중용 앙부일구는 보통 30~40cm 정도의 크기이다. 앙부일구는 그림자를 만들기 위해 끝이 뾰족한 막대[影針]를 쓰는데 이것도 보통 청동으로 만든다. 영침의 길이는 앙부일구 지름의 절반이 된다. 영침의 끝을 앙부일구의 중심에 오도록 하며 그 방향은 천구의 북극을 향한다. 앙부일구의 안쪽면에는 절후선(節候線)이라는 13개의 위선이 있고, 시각선(時刻線)이라는 여러 개의 경선이 그어져 있다. 시각선과 절후선은 항상 서로 직교한다. 절후선의 가운데 있는 춘추분선은 천(天)의 적도면과 일치하는 대원(大圓)이 되며 나머지 12개의 절후선은 적도에 평행하다. 태양의 고도가 여름에는 높아지고 겨울에는 낮아지므로 절후선에 닿는 그림자의 위치로 시간뿐만 아니라 그해의 절기를 알 수 있다. 청동으로 만든 앙부일구에서는 절후선이나 시간을 나타내는 글씨를 칼로 홈을 파고 은으로 상감했다. 앙부일구의 영침의 위치는 관측 지점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대개는 윗면이나 옆면에 한양북극고도(漢陽北極高度) 또는 북극출지(北極出地)의 도수로서 표시하고 있다. 휴대용 앙부일구로 유명한 것은 1874년(고종 8)에 강건(姜健)이 납석(蠟石)으로 만든 것이 있다. 4~6cm 정도 크기의 직육면체 상자에 반구를 파고 그 안에 영침을 세웠다. 또한 방향을 쉽게 정할 수 있도록 자침을 설치한 것이 특징이다. 이밖에 청동제나 상아로 만든 앙부일구가 상당수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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