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약속이나 일찍 일어나야 할 일이 있으면 핸드폰에 알람을 해 놓으면 편리한 줄 알면서도 나는 그 일을 외면합니다. 약속! 그 약속이 이루어질 때까지 마음에 두고 생각하자는 조금은 피로한 일이지만.. 약속이란 중요한 만큼의 나의 정성도 있어야 한다는 한결같은 나의 억지 때문이지요. 11일 곰배령 산행날도 전날부터 몇 시에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뇌리에 담고 긴장을 주었기에 아침에 눈을 뜨니 정확히 예정된 시간이었습니다. 배낭을 메고 정류장에 도착하여 10분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 버스... 그로인해 모임 장소에 도착하니 07시23분 3분 지각 덕분에 모든 분들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제일 높은 자리에 앉는 영광을 누렸으니 예쁜 님 옆에 두고 애간장 졸이는 일 없이 모든 님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높은 자리에 앉아으니 그야말로 복 터진 날이죠. 자리란 원래 자신의 그릇보다 높은 곳을 택하여 환영 받지 못함보다는 조금쯤 낮을 곳을 택하여 환영받음이 좋은 것이지만, 오늘의 이 높은 자리는 저의 뜻이 아닌 만큼 흔쾌히 앉아도 될 자리였음에 즐겁습니다. 비록 님들의 뒤통수지만 내 마음껏 볼 수 있고 생각을 키울 수 있으니 말입니다.ㅋㅋ
자리덕분에 다른 이 즐길 수 없는 바깥풍경을 눈동자시리도록 담을 수 있었음도 행복입니다.
굽이굽이 계곡을 끼고 휘돌아가는 길은 오르고 내리고 아슬아슬 잘도 넘지만 내다보는 내 심장은 새가슴처럼 뛰건만, 님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밤새 아쉬웠던 꿈속의 기쁨을 이어가고 계셨죠? 고백하세요 그 기쁨이 무엇이었는지~~,
그리 도착한 "하늘아래 첫집" 들머리에 버스는 열 달 만에 출산하는 산모처럼 우리를 줄줄이 쏟아내니 갓 태어난 아이마냥 한껏 기지개로 몸을 추스르고 "사랑방"님의 정성으로 가져온 따끈한 오뎅국물로 몸을 따습게 데우고 산을 향해 올랐습니다.
두 번째 맞이한 개울물 속은 꽁꽁 얼었는데 겉은 빙수처럼 질척이는 그곳에서 먼 훗날을 내다보고 액땜으로 투자했습니다.
뒤에 오시는 산장님 버스에서 이 빈터 칠삭동이 될까봐 양분 먹여 열달 채워 주느라 끝자리까지 오고가고 하셨지요. 고맙습니다.
낙엽송 울창한 자리에서 님들의 한 순간을 잡아봅니다.
보일 듯 말듯 한 미소가 햇살처럼 곱습니다. 이 순간을 다시 재현할 수 있는 세월이 있을까요? 생각하면 엄숙해야할 찰라 입니다.
누구를 위한 고움인가요. 보는 이의 가슴에 기쁨을 주시니 고맙습니다.
누가 꽃을 아름답다고 했나요. 밝은 미소, 은은한 미소, 해말간 미소, 스며드는 미소, 감추고 싶은 미소 이 아름다움을 그 어떤 수사로도 표현할 수 없음에 가슴이 미어져 내립니다. 참 고움을 감사합니다. 여인은 율동이요 오선지의 음표요 노래입니다.
님들의 그릴 수 없는 고운 표정에서 감미롭고 고혹적 자태에서 참 아름다움을 봅니다.
형제들이시여, 위에서 좀 배우세요. 자세가 그게 뮙니까 작대기가 따로 없군요. 그래도 福은 있어서. 예쁜 자매들이 함께 이시네.
참 힘든 산행이었지요.
눈이 차가운 바람에 모래알처럼 고운입자의 결정체로 변해 손으로 움켜쥐면 뭉쳐지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틈새로 모두 새나가는 그런 눈이 정강이까지 차는 곳을 이리 미끌 저리 뒤뚱거리며 오르고 내리는 눈 덮인 산길에 살이라도 베어낼 듯 몰아치는 칼바람에 얼굴을 파랗게 질렸어도 여기까지 오른 나 자신의 도전적 면모가 섬뜩하기도 했던 순간이었습니다.
너무 많은 시간을 요구하는 상황에 체력소모를 행동식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던 어려움에 버스 두 대의 80여명은 이미 모두 어디로 흩어져갔고 산등성이님들의 대열만 질서 정연하게 이끌어 주고 잡아주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습니다.
나 잘하고 있어요. 사랑해~~~, 그 사랑은 어찌 두고 오셨을까!
마음이 풍요로운 이는 福이 있나니.. 누군가 말씀하셨지요. 은은한 미소 짓는 표정과 몸짓이 福을 짓고 있음에 참 보기에 좋습니다.
지친 저에게 말씀도 없이 웃으며 행동식(行動食)을 내밀어 주시던 제 앞에 가시는 분이 계셨어요. 아무리 앞서려 해도 따를 수없는 그 걸음의 비결만은 알려 줄 수가 없으신가봅니다. 어느새 보이질 않으시던 모모님 고맙습니다.
나무들이 삭풍에 몸부림치며 고통으로 울부짖을 때 멀리 우리가 가야할 곰배령 가도가도 끝도 없을 것만 같이 황량한 능선을 줌으로 당겨봤어요. 사진 속엔 파란하늘만 시리도록 서늘하기만 합니다. 여기서 부터는 춥고 힘들어 뒤처지면 님들에 행여 누될까싶어 부지런히 앞으로 달렸습니다. 떨어지는 체온을 활동으로 채워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앞서간 님들의 발자국 따라가는 길에 아취모양으로 쓰러진 나무에 하얗게 눈이 덮여 한겨울의 풍치를 더해줍니다.
누군가에 잘려나간 나무 밑동에 하얀 눈송이들이 소복이 쌓아 나무의 아픔을 덮어 달래고 있습니다. 마치 포근한 초가지붕처럼..,
수백 년은 되었을 향나무가 바람에 부러지고 틀어져 기묘한 형상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자연의 힘은 이렇듯이 사람이 모방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능력자입니다.
드디어 곰배령 정상에 도착하여 멀리 대청봉(어느 님의 말씀)을 바라보니 이 추운 산상에 홀로선 고립감이 밀려듭니다. 아 그립습니다. 분결같이 고운 시악시의 품이~~
태고의 저 산들은 늘 우리의 설렘이요 늘 다가가고 푼 충동이며 끊임없이 생명을 잉태하는 키우고 성스러운 자궁입니다.
완만하고 넓은 곰배령의 능선은 넉넉하고 푸근한 모습이지만, 모진 바람 매섭기가 비할 곳 없고 잠시나마 피할 곳 없이 황량하기 그지없네.
펑퍼짐하고 넉넉하게 잘 생긴 여인의 엉덩이처럼 완만한 능선이 마음에 평화를 줍니다.
이렇게 흔적을 남기고 싶은 것이 빈터의 마음 뿐은 아니겠지요. 지나는 어느 님의 손을 빌려...
앞서가던 어느 님이 우리 등성이님들 길 잃지 말고 보시라고 이정표에 이정표를 붙혔습니다. 랜턴과 함께.. 고맙습니다.
이 사진을 찍고 나니 밧데리가 수명을 다했습니다.
모두 내 생의 한 인연이겠기에 소중함에 고마움을 드립니다.
더욱 건강하시고 바람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