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잔은 소나 코뿔소 등 짐승의 뿔을 잘라 술과 같은 음료를 마시던 습관에서 유래된 용기로 처음에는 실제로 뿔을 이용하였겠지만, 점차 상아나 금속, 옥 등으로도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각배가 처음으로 만들어진 것은 기원전 2000년경 이란 아케메네스(Achaemenid)조에서부터 였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릇의 모양은 짐승뿔을 총실히 모방한 것과 하반부에 짐승의 머리모양을 표현한 것, 받침을 붙인 것 등으로 다양합니다. 그리스어의 류톤(Rhyton)은 짐승뿔과 이를 모방한 그릇을 의미하며, 오래된 형식의 그릇일수록 뿔의 모습을 잘 남기고 있다고 합니다. 이후 각배는 스키타이, 사산조 페르시아, 漢代의 벽화 등에서 그 사용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편 중국의 청동기에도 고(고), 치(치), 각(角) 등짐승뿔과 관계가 있는글자로 표현한 그릇이 있어 처음에는 이러한 것이 처음에는 이러한 것이 짐승뿔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릇의 형태는 이미 뿔의 모양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변화한 것이 었습니다. 그 이후 수(隨), 당(唐)대에 이르러 서역문화가 전래되면서 원래 모습에 가까운 각배가 도입되었습니다.
한편 한반도에서는 신석기시대의 유적인 부산 동삼동 조개더미에서 뿔모양의 토기잔이 출토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크기가 10cm 전후이며, 그릇의 모양이 통통하여 이후 삼국시대에 보이는 뿔잔과는 약간 다른 형태이며, 정확히 어떠한 용도의 그릇이었지도 불분명합니다.
이와 같이 뿔잔은 원래 짐승뿔을 잘라 용기로 사용하였던 것으로 출발하여 점차 토기로 만들어지게 되었으며, 간혹 칠기나 청동, 금동제의 것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이러한 형태의 뿔잔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등장하는 것은 삼국시대부터라고 할 수 있는데, 신라의 돌무지덧널무덤인 천마총에서 칠기제 또는 금동제의 각배형용기와 함께 20개의 쇠뿔이 실물로 출토되어 우리의 뿔잔이 북방 유목민계 민족들이 사용하였던 원래의 뿔잔에서 유래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한편 「삼국유사」에는 신라 제4대왕인 석탈해가 아직 왕위에 오르지 않았을 때 토암산에서 내려오면서 심부름꾼을 시켜 마실 물을 떠오게 하였는데 심부름꾼이 몰래 먼저 물을 마시자 뿔잔이 붙어 떨어지지 않아 이를 꾸짖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에 이미 실제 뿔로 만든 잔이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지금까지 삼곡시대에 해당하는 토기 또는 청동, 금동, 칠기제의 뿔잔은 출토지가 알려진 것이 그리 많지 않지만, 대체로 경주를 중심으로 신라에 편입되어 문화적영향을 많이 받았던 김해, 부산, 창녕, 달성, 등지에서 출토된 것이 대부분입니다.
이러한 뿔잔에도 여러가지 형식이 있습니다. 가장 간단한 형태로는 단순히 뿔의 모양을 흉내내어 만든 것과 잔의 아가리 바로 아래에 좁은 문양대를 두른 것이 있으며, 이러한 단순한 형태의 것은 바로 세워 놓을 수가 없기 때문에 끼워 세울 받침이 필요합니다. 받침은 굽다리접시 모양 토기의 접시부분에 구멍을 뚫어 ㅣ우게 만든 것과 고리를 만들어 끼운 것, 굽다리에 납작한 판을 붙이고 그위에 고리를 만든 것 등이 있습니다. 이와는 달리 굽다리 위에 바로 뿔잔을 붙인 형태도 있으며, 굽다리 위에 동물 등을 만들고 그 위에 뿔잔을 붙인 형태도 있습니다. 또한 동래 복천동 1號墳에서는 뿔 끝부분에 말을 조각한 뿔잔 한쌍이 출토되어 독특한 형태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사산조 페르시아나 중국 등지에서 비슷한 형태가 나와 뿔잔의 문화적 연원을 추정하는데 좋은 자료가 됩니다. 이외에도 경주 금관총과 창녕 교동에서는 끝이 잘린 특이한 형태의 청동제 뿔잔이 출토된 바 있습니다.
이 뿔잔은 단순히 짐승의 뿔 모양의 각배에서 한층 발전한 것입니다. 단순한 뿔모양의 각배는 바로 세워 놓을 수가 없는 불편함을 보완한 것입니다. 굽다리 위에 편평한 臺를 구현한 그 위에 뾰족한 끝을 말아감아 처리한 각배를 붙였습니다. 동래복천동(東萊福泉洞) 고분군(古墳群)중 제7호분에서 한쌍으로 출토되었으며 이와함께 여러 형태의 토기류와 철제장검(鐵製長劍) 등의 무기류, 금제세환이식(金製細環耳飾), 은팔찌, 구슬류 등 많은 양의 유물이 출토되었습니다. 각배 2점은 크기는 서로 다르지만 전체적인 형태나 제 작수법은 거의 동일합니다. 동아대학교 소장품이 한쌍 중 크기가 큰 것이고 나머지 한 점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마상각배(馬上角盃)
伽倻 5世紀 / 동래복천동고분군(東萊福泉洞古墳群)중 제7호분 출토 / 左高14.4cm, 長20.8cm, 口徑8.7cm / 국립중앙박물관所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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