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유물들은 국립중앙박물관 신라실에 상시 전시되어 있으며 실물을 보시면 표정과 자태의 모습이 너무 사질적으로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어 옛 사람들의 감정이 지금 보다 더 진솔 솔직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性嬉의 여러 자세의 토우들이 수십 점이 넘어 토우로만 특별전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러한 토우들은 작난감이 아니라 항아리나 합같은 그릇에 부착되어 있던 것으로 어떤 바램이나 염원적인 것에 쓰인 주술적 의미가 있는 그릇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신라토우는 5~6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것으로 신라인의 삶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 줍니다.
고구려벽화에서 처럼 회회로서가 아니라 조형물로써 표현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중요성이 있습니다.
신라토우는 사람들의 갖가지 행위들과 온갖 동물들(포유류.곤충류.양서류.조류.어류)의 형태를 망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라토우는 역사학.고학.민속학.음악사.복식사.사회사.종교사.생물학 등 모든 분야에 걸쳐 매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합니다.
이러한 신라의 토우는 생생한 삶의 모습을 보이며 어느 다른 나라의 영향인지 섣불리 언급하기 어려울 만큼 자유분방한고 자생적 성격이 강합니다. 그러나 통일신라의 토우들은 중국과 중앙아시아사람의 모습입니다.
신라의 토우는 토우(土偶)라 쓰고 통일신라의 것은 토용(土俑)이라고 봅니다. 원래 우(偶)는 허수아비, 인형등의 의미로 쓰이며.
용(俑)은 殉葬하는 사람 대신으로 만들어진 人形을 말합니다. 복식(服飾)에서도 토우는 신라의 일상 복식(服飾)이고, 토용은 완전히 중국식 복장(服裝)입니다.
양식(樣式)에서도 신라토우는 자유분방한 솜씨로 빚어 만든 까닭에 만듬새가 모두 다르며 꾸밈새가 없이 소박한 자연스러운 모습이지만, 통일신라 토용은 틀에 떠다 만든 것 처럼 획일적입니다.
또한 토우는 토기에 부착된 것이지만, 통일신라토용은 토기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아 신라의 토우와 통일신라의 토용은
완연히 구분되며 토우는 그 당시 신라의 생활상을 적나라하게 생동감있게 사람.동물.어류.조류 등은 물론 생태까지 다양하게 보여 주지만, 통일신라 토용은 중국의 唐나라의 官人과 宮女뿐인데서 구분지어 이해됩니다.
* 이 토우는 전체적으로 엉거주춤하게 앉은 자세의 여자 토우입니다.
가슴과 성기가 표현되어 있는데 가슴을 따로 만들어 부착한 후 마무리 손질을 하지 않았습니다.
왼팔은 위로 치켜들고 오른팔은 배를 향하고 있고 얼굴 표정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입을 벌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성행위를 하는 여인의 모습을 표현한 것 같습니다.
여자토우(女性土偶)
한국(韓國)-신라(新羅) 《5-6세기》/ 점질토제 (粘質土製)/크기 6.8cm /경주시 황남동 출토 / 국립중앙박물관 所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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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을 뒤로 젖혀 두 팔을 버티며, 두 발을 벌리고 앉아 남근을 크게 강조하고 있는 토우 입니다.
귀가 크고 눈과 입은 쭉 찢어져 있고, 두 개의 점을 찍어 코를 표현하였습니다.
남자토우(男性土偶)
한국(韓國)-신라(新羅) 《5-6세기》/ 점질토제 (粘質土製)/크기 3.8cm /경주시 황남동 출토 / 국립중앙박물관 所藏
* 여성과 남성이 성행위를 하는 장면입니다.
여성은 누워서 오른손은 머리 뒤에 대고 왼손은 아래로 내리고
동그란 두 눈과 입은 환희의 감정을 잘 표현하고 있으며, 두 다리는 남자의 허리춤을 감고 있습니다.
남성은 머리가 떨어져나갔지만 앉은 자세로 성행위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이런 성을 표현한 토우들이 많이 있는데 이는 풍요와 번성을 위한 呪述的의미가 있는 껴묻거리입니다.
사랑을 나누는 남여토우(性愛土偶)
한국(韓國)-신라(新羅) 《5-6세기》/ 점질토제 (粘質土製)/크기 6.1cm /경주시 황남동 출토 / 국립중앙박물관 所藏
* 몸을 뒤로 누운 자세를 취하고 있는 여인의 모습으로 부른 배와 젓가슴, 성기가 滿開되어 있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아이를 낳고 있는 모습을 나타낸 것 같습니다. 동그란 두 눈과 입은 출산의 고통을 사실적으로 실감있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출산 직전의 여자토우(女性土偶)
한국(韓國)-신라(新羅) 《5-6세기》/ 점질토제 (粘質土製)/크기 7.8cm /경주시 황남동 출토 / 국립중앙박물관 所藏
* 젖가슴이 길게 표현된 여인이 무언가를 부여 잡고 고개를 떨군 채 슬퍼하는 장면을 묘사한 토우입니다.
여인이 부여잡고 있는 것은 짧은 다리에 얼굴에는 천을 덮고 있는 죽은 자의 시신입니다.
어느 전쟁터에 나가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온 아들이나 사랑하는 남편을 부여잡고 슬퍼하는 어머니나 아내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주검 앞에서 슬퍼하는 여인 토우(哀悼土偶)
한국(韓國)-신라(新羅) 《5-6세기》/ 점질토제 (粘質土製)/높이 3.2cm /경주시 황남동 출토 / 국립중앙박물관 所藏
*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모습의 토우입니다. 오른발은 떨어져나갔으며 두 팔은 앞으로 모으고 있습니다.
머리칼은 정수리와 뒤통수에서 동그랗게 말아 위로 올려 마무리하였으며 얼굴에 큼직한 코, 눈과 두 귀를 덧붙였고 입을 동그랗게 하여 노래를 부르고 있는 듯한 모습입니다. 옷차림새는 표현되어 있지 않은데, 이렇게 무릎을 꿇거나 엎드려 절하는 모습은 중국의 도용(陶俑)이나 일본의 하니와(埴輪)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토우(土偶)
한국(韓國)-신라(新羅) 《6세기》/ 점질토제 (粘質土製)/ 높이 9.2cm /경주시 출토 / 국립중앙박물관 所藏
이 유물들은 국립중앙박물관 신라실에 상시 전시되어 있으며 실물을 보시면 표정과 자태의 모습이 너무 사질적으로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어 옛 사람들의 감정이 지금 보다 더 진솔 솔직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토우들은 작난감이 아니라 항아리나 합같은 그릇에 부착되어 있던 것으로 어떤 바램이나 염원적인 것에 쓰인 주술적 의미가 있는 그릇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외에도 性嬉의 여러 자세의 토우들이 수십 점이 넘고 그외 더욱 많은 동물들의 토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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