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우리나라에는 산후에 胎를 잘 처리하면 그 태의 주인은 건강하고 좋은 운명을 맞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왕실에서는 큰산에서 내려온 작은 산 가운데 뾰족하고 경사가 가파른 산을 골라 그 정상에 태를 묻었는데, 이후 이산은 胎峯山이라 불렀습니다. 태는 태항아리에 담아 땅속 석실石室에 묻는데 이를 태실이라 하였습니다. 태항아리 곁에는 태 주인의 생년월일시와 태를 묻은 연월일시가 새겨진 胎誌와 함께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약간의 銀과 銅錢 등도 함께 놓았습니다. 지하 태실 위 지표에는 胎碑를 세웠는데, 여기에도 마찬가지로 태 주인의 생년월일시와 태를 묻은 년월일시가 새겨져 있습니다. 태봉산 아래에는 일반 사람의 접근을 금지하는 禁標라는 글씨를 쓴 작은 비석을 세우고 태실을 지키는 사람도 두었습니다. 한편 왕자 또는 세자가 왕으로 즉위하면 본래의 태실 위 지표에 사찰의 부도와도 같은 시설을 만들고 그 주변에 팔각 돌난간으로 둘렀으며, 원래의 태비 옆에 크고 화려한 태비를 또 세웠습니다. 이는 왕의 태실이므로 크고 화려하게 꾸민 것인데, 이 일련의 작업을 加封이라 하였고 가봉을 마친 태실은 胎峯이라 하였습니다. 이 胎峯圖는 순조임금의 태봉 위치를 그린 것입니다.
조선 순조 태봉도(純祖大王 胎峯圖)
조선/1800년순조즉위년경/129×76cm/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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