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에서,
가을을 떠올리면 따라 생각나는 것이 있지요.
드넓은 들판에 황금빛으로 물든 이삭들이 바람에 물결처럼 일렁이고,
높고 파란하늘에 파도처럼 밀려왔다 물거품처럼 흩어지는 새털구름,
아, 또 있다.
땡볕 쏟아지는 한적한 시골 길가에,
엄마 아빠 들에 일 나간 오후 한 낮
텅빈 소담한 농가마당 한 켠에,
빨강, 하양, 분홍으로 그린 수채화처럼 물이 든 코스모스..
나는 보았네
풀과 나뭇잎 짙푸르고, 뜨거운 열기가 아롱다롱 한 여름에 수 놓은 듯 울긋불긋 아름다운 둔치를...
자전거를 타고 나선 길은 한강지류인 왕숙천, 잘 닦아 놓은 왕숙천邊을 달리다가 나도 모르게 화들짝 놀라 급히 가던 길을 멈췄습니다. 세상에 가을에나 볼 수 있을거라 생각한 코스모스가 온 둔치를 덮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랑빛 유채꽃이 만발했던 자리를 온통 차지하고 수줍게 또는 간들어지게 웃고 있습니다.
청순하고 맑은 너를 보니 바람처럼 옛 생각이 솔솔 타래를 푼다. 가을이면 꽃잎을 책갈피에 곱게 넣어 말려서 예쁜 시전지에 붙여놓고 너의 면면에 고운 글씨를 넣어 예쁜 봉투에 담아 우표 한 장 붙여 그니에게 보내던 일들이 아롱거린다.
코스모스,
바람도 그냥은 못지나가겠나 보다. 여린 꽃을 간질리듯 스치고 가니 나부끼듯 간들거리는 코스모스, 가녀린 소녀를 보면 괜스레 설레이는 소년처럼 꿈이 사락사락 피어나는 꽃, 코스모스...
너를 보며 네 곁을 서성이며 떠날 줄 모른다. 가을도 아닌데..
"이쪽으로 가면 어디죠? '왕숙천," 그럼, 저쪽으로 가면 어디죠? '왕숙천'. 이정표가 꽃에 취해 얼이 나갔나봅니다.
코스모스만 보지마세요. 저도 있어요! (개망초)
앞을 봐도, 뒤를 보아도 온 세상이 너뿐이구나.
<삼엽국화>
<도라지>
나는 도라지 꽃을 좋아한다. 다섯 장의 넓직한 꽃잎은 통처럼 하나로 붙어 있고 외곽선만 별모양으로 구분된 단조로운 구조는 단순하지만 화려하지 않으나 깨끗하고 순수한 아름다움을 지닌 윤각이 분명하고 특히 보라색 꽃은 청순하고 진취적인 희망을 느끼게 한다. 선산 아버지 묘에 이슬을 머금고 피어 있던 보랏빛 도라지 꽃을 잊을 수가 없다.
도라지 꽃봉우리는 꿈을 담고 한껏 부푼 모습이다.
보라색 도라지꽃과 화초양귀비.
<솔잎국화 / 사철채송화>
나는 내를 끼고 꽃밭을 끼고 바람을 가르고,
꽃과 내는 나를 떠나 뒤로 달음질을 친다.
모두가 달린다.
저 피안의 뒤안길엔 무엇이 있기에..
세월을 타고 달릴까..?
2013년 6월28일 왕숙천 둔치에서 <鄕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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